개인사업자 이모씨는 지난해 9월 자동차 리스 지원 업체 ‘카메오’와 7000만원짜리 중고 벤츠를 2년간 사용하는 리스 지원 계약을 맺었다. 카메오는 이씨에게 보증금 2300만원을 주면 본 계약 대상인 A캐피탈에 내야 할 월 리스료 150만원 중 80만원을 2년간 지원해주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보증금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A캐피탈과의 계약은 비대면으로 카메오가 알아서 처리했다.

처음엔 매달 80만원씩 꼬박꼬박 들어왔지만, 올해 초부터 리스료 입금이 지연되기 시작하더니 결국 지난 여름부터 카메오와 연락이 두절됐다. 이씨는 현재 보증금을 잃은 것은 물론 고액의 리스료를 부담해야 하는 처지다. 설상가상으로 카메오 측 설명과 달리 A캐피탈과의 계약은 4년으로 돼 있었고, 계약을 철회할 경우 2000만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내야 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중고차 리스 사기로 개인들이 피해를 보는 가운데, 캐피탈 업체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제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상황에서 고가의 수입차 리스 계약을 덜컥 맺은 ‘카푸어(Car Poor·비싼 차를 사 가난해졌다는 말)’가 피해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다보니, 지원이 끊어진 이후 리스료를 제때 내지 못해 캐피탈사 전체의 연체율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캐피탈사도 도의적 책임을 져야한다고 요구하는 등 민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인천 연수구 옥련동 옛 송도유원지 자리에 모여있는 중고차. 중고차 리스 이면계약 사기에 따른 피해 구제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캐피탈 업계로 민원이 몰리고 있다.

◇국산차 탈 돈으로 수입차 가능하다는 점에 현혹

25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올해 1~10월까지 자동차 리스 관련 소비자 상담건수는 546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357건이 접수된 것과 비교하면 53%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이중에서도 자동차 리스 지원 업체의 연락 두절로 약속된 지원금과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피해가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소비자원은 분석하고 있다.

자동차 리스 지원 업체는 일정 금액의 보증금을 내면 캐피탈사, 카드사 등 자동차 리스 업체에 내야 하는 리스료의 일부를 지원해주겠다며 유인한다. 금융회사와의 리스계약과 별도로 리스료 지원에 대한 이면 계약을 맺는 셈이다. 처음 몇 개월은 약속한 리스료를 지원해주지만, 이후 지원을 중단하고 잠적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까지 문제가 발생한 업체는 카메오와 ‘자동차서점’ 등으로, 이 업체들에 당한 피해자는 200명이 넘는다. 이들은 돌려받기로 했던 보증금을 날린 것은 물론, 고액의 리스료 부담도 떠안게 됐다. 이씨는 "현재 피해자 모임에 들어와있는 이들 절반 이상이 카푸어"라며 "국산차 탈 돈으로 수입차를 탈 수 있다는 생각에 리스료 지원 계약을 맺었지만, 이후 지원이 끊기자 가정까지 파탄난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업체 대표가 구속되는 등 수사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이미 업체의 자산이 거덜난 만큼 보증금 회수는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에 그 불똥이 캐피탈사, 카드사 등으로 튀고 있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잘못은 인정한다’면서도 계약의 한 축인 금융회사도 도의적 책임 차원에서 리스료나 위약금을 낮춰줘야 한다는 민원을 제기 중이다.

자동차 리스 지원 계약 구조.

◇캐피탈·금감원 "정상 계약, 피해 구제 어렵다"

캐피탈 업계는 정상적으로 진행된 계약인만큼 피해 구제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캐피탈 업계 관계자는 "캐피탈사는 고객이 리스료 지원 업체를 중간에 끼고 계약을 진행하는지 알 길이 없다"며 "비대면으로 계약을 진행할 경우 계약 내용을 고객이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지, 이런 이면 계약을 맺지는 않았는지 등을 묻는 해피콜을 진행한 뒤 계약을 최종적으로 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피해자들은 해피콜에서 이면 계약을 맺은 사실이 있는지 등의 질문을 받지만, 모두 ‘그런 일은 없다’는 대답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카메오에서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고 세세히 알려준다"며 "자신들이 알려준대로 대답하지 않을 경우 차를 내줄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민원이 계속되면서 캐피탈 업계는 몸살을 앓고 있다. 고객이 사기 당한 것을 인정하고 원래대로 리스료를 납부하면 다행이지만, 피해자 상당수는 리스료 납부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으로 전해졌다. 캐피탈 업계 관계자는 "리스료 납부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결국 부실 채권으로 분류돼 전체 연체율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며 "추심을 위해 차량 압류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 비용 자체도 만만치 않은데다 번호판을 떼고 잠적해버리는 고객들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중고차 리스료 대납 사기 관련 민원이 빗발치자 지난 여름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지만, 이 이상 손쓸 방도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면 계약에 따른 보증금은 캐피탈 등 금융회사에 반환을 요구할 수 없고, 리스 이용자가 소송 등을 통해 회수해야 해 금감원의 분쟁조정절차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사가 계약 절차를 정당하게 진행했다면 보증료를 대납해줄 의무가 없다"며 "조만간 접수된 민원에 이같은 상황을 담아 회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