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는 코로나에, 하반기는 선박부족에 수출업계 도산위기
중고차 수출길 막혀 매출 급감했는데 주차 임대료만 눈덩이

"배가 없으니 차를 싣어 수출하지도 못하고, 차를 못 파니 공간이 없어 다른 차를 들여올 수도 없습니다. 사실상 마비 상태죠."

인천 연수구 중고차수출단지에서 수출업을 하고 있는 소상공인 이모(56)씨는 이번달 장사는 ‘해운 대란’ 때문에 완전히 망쳤다고 호소했다. 연말은 중고차 매물이 많이 나와 좋은 가격에 중고차를 많이 들여올 수 있고 매매량도 많은 시기인데, 배가 없어 수출길이 막히면서 사업이 올스톱 상태라는 설명이다. 이씨는 "코로나 확산 때문에 매매가 끊긴 상반기도 겨우 버텼건만 하반기에는 정말 도산할 것 같다"고 했다.

25일 인천시 중구 인천항 야드에 수출되지 못한 중고차들이 주차돼있다.

물건을 실을 배를 구하지 못하는 해상 물류대란이 중고차 업계를 덮쳤다. 중고차 수출은 항만 근처 수출단지에서 외국인 매매상들과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해당 차를 배에 실어 수출하는 형태로 이뤄지는데, 계약 후 차량을 보낼 배가 없어 수출단지가 포화상태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영세업자들은 매매가 끊겨 수익은 내지 못하는데, 내보내지 못한 차들이 차지한 주차 공간의 임대 비용이 눈덩이 처럼 불어나 적자를 내는 상황이다.

상하이해운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아시아~중동 노선의 운임은 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1374달러를 기록했다. 리비아와 오만을 비롯한 중동지역은 국내 중고차가 가장 많이 팔리는 지역이다. 중동 노선의 운임은 1주일만에 8.4%(107달러) 올라 올해 최고치를 찍었다. 이 노선 운임은 지난 6월까지만 해도 400달러대였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컨테이너선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서 9월 1000달러를 넘어선 이후 계속 오르고 있다.

국내 중고차 수출시장은 1조원대의 작지 않은 시장이자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시장이다. 한국무역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차 수출대수는 전년대비 30.4% 증가한 46만9876대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해운 대란의 여파로 올해 중고차 수출 실적이 예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상반기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외국인 매매상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매매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이후 코로나가 한풀 꺾였던 여름부터 그동안 진행되지 못했던 매매가 활발하게 이뤄질 때 쯤 선박 부족 사태가 터진 것이다.

실제로 올해 10월까지 중고차 수출 실적은 지난해에 비해 크게 쪼그라들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중고차 수출실적은 9억5072만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실적 13억8180만달러에 비해 31.2% 줄어든 수치다. 하반기 해운 대란의 영향을 감안하면 연말까지의 실적은 더 나빠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25일 인천시 연수구 중고차 수출단지가 수출용 차량이 가득차 있다.

이날 해양수산부는 해상 운임 급등과 선박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수출업체들을 위해 선박을 긴급투입하기로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미주와 동남아지역에 집중돼있어 중동지역과 주로 거래하는 중고차 수출업계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서 중고차 수출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인천 중고차 수출단지의 영세업자들은 이번 주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해 다음주 인천시와 항만공사에 임대부지를 요구할 계획이다. 매매할 중고차량을 들여올 공간이 없으니, 일단 수출되지 못한 차량들을 다른 곳에라도 옮겨놔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이다.

인천 중고차 수출업 비대위 관계자는 "시와 공사에서 당장 부지를 빌려준다고 해도 연말까지는 정상적인 매매가 어려울 것"이라며 "이쪽 종사자들이 전부 영세업자들인데 이 상황이 12월까지만 지속되면 중고차 수출업계의 5분의 1은 도산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