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구 시지·사월·욱수·신매동 등은 최근 몇년 간 아파트값이 떨어졌어요. 범어동이나 황금동 같은 ‘부자 동네’와 같은 구(區)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투기과열지구에 이어 조정대상지역까지 묶였습니다. 억울하죠." (대구 수성구 시지동 A공인중개사)

조정대상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을 지정하는 방식을 동·읍·면 단위로 세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같은 시·군·구 내에서도 세부 행정구역별 편차가 큰데, 이를 반영하지 못해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9일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부산 해운대구 우동 마린시티 전경(왼쪽)과 반송동 다가구주택 밀집지역 모습.

2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 19일 경기도 김포시와 대구시 수성구, 부산시 해운대·수영·동래·연제·남구를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했다. 접경 지역인 김포 대곶면, 월곶면, 통진읍, 하성면만 예외로 뒀을 뿐, 나머지 규제는 모두 구 단위로 지정했다. 국토부는 현재까지 48개 투기과열지구와 75개 조정대상지역을 지정했는데, 대부분 시·군·구 단위로 묶은 것이다.

문제는 조정대상지역 내에서도 세부 행정구역에 따라 편차가 크다 보니 실제 주택가격상승률이 높지 않은데도 각종 규제 대상이 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 리브온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투기과열지구 및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대구 수성구 전체의 최근 한 달간 단위 공급면적(㎡) 당 아파트값 상승률은 2.23%였다. 같은 기간 중동(6.26%), 황금동(4.96%), 범어동(2.97%) 등은 상승률이 높았지만, 시지동(0.80%), 욱수동(0.58%), 두산동(0.18%), 파동(0.00%) 등은 집값이 많이 오르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대구 수성구 시지동 ‘노변다숲’ 전용면적 59.73㎡(3층)는 지난 1일 1억8700만원에 거래됐다. 앞서 2017년 7월 같은 면적(4층)이 1억9000만원에 거래됐던 것과 비교하면 3년 동안 가격이 오히려 소폭 하락한 셈이다. 반면 수성구의 대표적인 고가 아파트인 범어동 ‘두산위브더제니스’ 전용면적 129.02㎡(35층)는 지난달 21일 17억5000만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2017년 7월 21일에 동일 면적(34층)이 10억9500만원으로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3년 간 가격 상승률이 60%에 이른다.

대구 수성구와 함께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부산도 동별 편차가 높게 나타났다. 부산 수영구 전체의 최근 한 달간 단위 공급면적(㎡) 당 아파트값 상승률은 2.23%로 조사됐는데, 이는 구 전체 상승률을 주도한 수영동(13.27%)의 영향이 컸다. 같은 기간 광안동, 망미동, 민락동 등 나머지 동의 상승률은 0~1%대에 그쳤다.

유병규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부산 지부장은 "특정 신축 고가 단지 위주로 거래량이 폭증하고 가격이 상승하면서 구 단위 아파트값 상승률이 높게 나타났을 뿐, 구축 중·저가 아파트의 시세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면서 "광범위한 조정대상지역 지정으로 실수요자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정치권과 지자체 등을 중심으로 "규제지역을 보다 정밀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2일 광주광역시는 국토교통부에 투기과열지구 지정 단위를 시·자치구에서 동(洞) 단위로 낮춰달라고 건의했다. 김종호 광주시 건축주택과장은 "현재 남구 봉선동과 광산구 수완지구에 투기 자본이 몰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들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핀셋 지정’해야 시장 과열을 막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 국토부에 법 개정을 건의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제 개선에 나섰다.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 투기과열지구의 지정 단위를 읍·면·동으로 낮추는 주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어 김교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 ‘조정대상지역은 시·군·구 또는 읍·면·동의 지역 단위에서 그 지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범위로 지정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무 부처인 국토부는 실태를 파악하는 대로 후속 대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국토부 용역을 받아 규제지역 및 잠재 규제지역 내 읍·면·동별 주택 가격 동향을 조사하고 있다"면서 "오는 12월 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국토부 차원에서 규제지역 재조정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규제를 좀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현재 고분양가관리지역, 청약과열지역, 투기과열지구, 투기지역, 조정대상지역 등 엇비슷한 내용의 여러 규제가 난립한 상황인데, 이를 통폐합해 효율성을 제고하면 보다 정확한 ‘핀셋 규제’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