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 정치·교육·사상가로서 유교적 이상주의를 펼친 공자. 지덕을 갖춘 군자의 삶을 목표로 인(仁)을 정치와 윤리의 이상으로 여겼던 그도 말만 번지르르한 것은 인간적으로 참기 힘들어했던 것 같다. 공자의 가르침을 담은 유학경전 논어(論語) 선진편(先進編)을 보면 그런 그의 속내가 읽히는 대목이 나온다.

내용은 이렇다. 공자 문하생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자로(子路)가 자신이 가신으로 모시는 노나라 실세 가문의 대부(大夫)에게 동문수학 중인 후배 자고(子羔)가 영지(領地) 한 곳을 다스릴 수 있도록 청하려 했다.

그러자 공자는 "아직 학문을 익히고 있는 자고에게 그리 하는 것은 남의 귀한 자식을 망치는 일"이라며 나무랐다.

이에 자로는 "그곳에도 사람이 있고, 돌볼 일이 있는데, 어찌 책을 읽는 것만이 배움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맞받아쳤다.

공자의 ‘인간미’ 넘치는 말이 이어진다. "이래서 내가 자네처럼 말을 교묘히 잘하는 사람을 싫어하네.(是故惡夫佞者)"

요즘 말로 풀면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정도쯤 되겠다. 옛날 옛적 공자도 이런 말을 남겼을 정도인데, 지금처럼 언로가 활짝 열려 있고 말 잘하는 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선 오죽할까.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못하고 쏟아지는 곳이 정치판이라고 하지만 요즘 유독 부동산 실정(失政)을 덮으려는 어처구니 없는 정부와 여당 정치인들의 실상과 동떨어진 잇단 언사가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지난 19일 전세대책을 발표하면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셋값 급등과 전세난의 원인을 임대차 3법이 아닌 저금리와 가구수 증가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전셋값은 7월 말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급등했다. 한국감정원 월간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전국 전셋값은 5~7월엔 0.67% 올랐는데, 8~10월엔 1.44%로 오르며 상승폭이 두 배 이상 커졌다. 서울의 경우 같은 기간 0.48%에서 1.19%로 상승폭이 커졌다.

윤성원 국토교통부 1차관은 대책 발표 이튿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임대차 3법은 국민소득이 1인당 3만달러를 넘어가는 우리 경제가 한 번은 겪어야 될 성장통"이라고 했다. 3만달러 국민소득과 전세난에 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전선미 의원은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 임대주택으로도 주거의 질을 마련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는 말로 전세난을 겪는 임차인들의 공분을 샀다. 더불어민주당의 미래주거추진단장까지 겸하고 있는 진 의원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공임대 중인 매입임대주택 현장을 둘러보고 "방도 3개가 있고, 내가 지금 사는 아파트와 비교해도 전혀 차이가 없다"고 했는데, 정작 본인은 강남4구의 하나인 강동구 명일동에 대형 건설사가 새로 지은 1900가구짜리 아파트를 임차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온라인과 포털 커뮤니티에서 뭇매를 맞았다.

서울 강동구 LH 매입임대주택 서도휴빌(왼쪽 사진)과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미래주거추진단장 겸 국토교통위원장이 소유한 강동구 명일동 래미안 솔베뉴 신축 아파트.

진 의원이 말하는 아파트에 대한 환상은 대체 뭔가. 통계청 기준 지난해 11월 1일 현재 우리나라 전체 주택 1813만호 가운데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62.3%(1129만호)인데, 국민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단독이나 빌라에 살면서 아파트 전세 살기를 희망하는 이들은 모두 환상에 빠졌다는 뜻인지.

이뿐 아니다. 현 정부 초기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내가 강남에 살아봐서 아는데,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는 말로 공분을 샀고, 임대차 3법이 속전속결로 통과된 날 여당 의원들은 "전세난민이 사라질 것이다" "국민이 집의 노예에서 벗어난 날"이라며 자화자찬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다시 들어도 이해가지 않지만 "왜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로 서민들이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 "전세제도는 소득수준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운명을 지닌 제도다" "여당이 주도한 부동산 개혁입법으로 전세제도가 소멸되는 것을 아쉬워하는 분들이 있다. 이분들의 의식수준이 과거 개발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주장한 소병훈·윤준병 민주당 의원들의 발언도 논란이 됐었다.

스무 차례가 넘는 실패한 부동산 대책으로 내 집 마련이 더 멀어진 이들과 전세 살기도 더 힘겨워진 세입자들의 가슴에 멍이 든 것은 아는지 모르는지. 정책이 빗나갔으면 제발 조용히나 계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