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전기동(전선·배선에 사용하기 위해 정련한 구리) 사업을 하는 풍산(103140), LS(006260)등 비철금속 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구리 가격이 경기와 밀접하게 움직이는 구조이다 보니 글로벌 경기가 코로나19 여파를 딛고 완연한 반등 추세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건설·장비·인프라·운송 등 산업 전반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구리는 실물 경제 흐름을 미리 짚어볼 수 있어 ‘닥터 코퍼(Dr.Copper·구리 박사)’라고 불린다. 구리에 대한 수요가 강해져 가격이 올라가면, 글로벌 경제의 활력이 살아나고 있다고 풀이될 때가 많다.

베트남의 케이블 공장의 구리 막대.

2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구리 가격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8일(현지 시각) 런던국제거래소에서 톤(t)당 구리 현물 가격은 7083달러를 기록했다. 구릿값은 코로나19 공포감이 극에 달했던 지난 3월 23일 t당 4617.50달러를 기록하며 연저점을 찍은 뒤 7월부터는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올해 3분기의 구리 평균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5% 오른 상태다.

구리 가격이 오르면 곧바로 실적에도 영향을 받아 ‘구리의 동행지표’로 평가받는 풍산, LS 등 비철금속 업계의 실적 또한 크게 개선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풍산은 올해 3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이 6337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2.4%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484억원으로 2만3853.5% 늘었다. 구리 가격이 전 분기 대비 20.4% 올랐고, 방산 매출액이 1562억원을 기록하면서 이익 개선을 견인했다는 설명이다.

LS그룹 역시 원자재인 구리 가격이 오를수록 실적이 좋아진다. LS의 자회사 LS니꼬동제련은 구리를 제련해 전선 재료가 되는 전기동을 만들고, LS전선은 이 전기동으로 전선을 만든다. LS는 올 3분기 연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이 3.2% 상승한 2조5698억원, 영업이익이 25.8% 증가한 1237억원을 기록했다. LS전선의 경우 올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3.64% 증가한 320억7400만원을 달성했다.

전기차 배터리 핵심소재인 동박.

업계에서는 구리 가격 상승세가 4분기를 넘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현재의 구리 가격 상승은 최대 수요처인 중국의 경기 회복과 친환경 인프라 투자 확대 등이 겹친 결과인데, 이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은 전 세계 구리 수요의 절반을 차지한다. 주로 전력 생산이나 반도체 등 전기·전자 업종에서 소비되는데, 중국이 빠르게 코로나19 여파에서 벗어나면서 경제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구리 수요도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지난 12일 국제경제 전문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중국이 내년에 올해 전망치(2.2%)보다 6.2%포인트(p) 오른 8.4%의 GDP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봤다.

전 세계 국가들이 너도나도 내세우는 친환경 정책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구리는 전통산업뿐만 아니라 전기차 생산·태양광 패널·풍력 발전·리튬이온 배터리 등 친환경 에너지 산업에서도 활용된다. 구리, 니켈 등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팔라듐은 자동차나 선박의 배기가스 저감장치에 활용된다. 특히 올해 미국 대선에서 친환경을 지향하는 조 바이든이 당선된 점이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최근 전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19 재확산이 발생하고 있는 점은 변수다. 하지만 제조업 경기 회복세는 계속되고 있다. 미국과 유로존의 10월 제조업 구매관리지수(PMI)는 모두 전달보다 상승했다. 유로존은 부분적 봉쇄에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지수가 기존 예상치(53)를 상회한 54.4를 기록했다. 코로나 재확산은 변수이지만, 각국이 전면적인 셧다운을 펼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금속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로 충격을 받은 글로벌 경기가 향후 회복되는 과정에서 구리 수요는 더욱 늘 것"이라며 "내년에도 구리를 이용한 사업을 하는 비철금속 기업들의 전망이 밝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