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톡톡]

세계의 관심이 쏠렸던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리한 가운데 우리 기업들이 바이든 시대에 대비해 ‘인맥 찾기’에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역대 미 대통령들과 국내 재계 총수들 간에 직간접적인 인연이 많았던 것과 달리 바이든 당선인과의 인연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 방한한 바이든 당선인은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위원장까지 지낸 ‘외교통’입니다. 그는 1998년 11월 미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로, 2001년에는 상원 외교위원장, 2013년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부통령 자격으로 각각 한국을 찾았습니다. 정치·외교 분야에서 36년간 활동한 만큼 김대중(DJ) 전(前) 대통령을 비롯해 국민의힘 박진 의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국내 정치권 인사들과 꽤 인연이 깊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이 미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인 2001년 8월 방한, 청와대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는 모습.

그런데 재계 쪽 인맥을 보면 다소 얘기가 달라집니다. 가장 최근 한국을 찾았던 2013년 12월만 봐도 당시 바이든 당선인은 국내 기업인들과는 만나지 않았습니다. 연세대에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연설을 하고, 15세이던 손녀 피네건양과 비무장지대(DMZ)와 용산 전쟁기념관 등을 방문했을 뿐이었습니다.

재계에서는 바이든 당선인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한국 기업인이 잘 보이지 않는 원인으로 나이 차이를 꼽습니다. 1942년생으로 78세인 바이든 당선인은 이재용 삼성전자(005930)부회장(1968년생·52세), 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1970년생·50세), 구광모 LG(003550)그룹 회장(1978년생·42세) 등 최근 경영 전면에 나선 국내 3·4세 총수들의 아버지뻘입니다. 1960년생인 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 1955년생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도 나이 차가 적지 않습니다.

학연이 닿는 기업인도 찾기 어렵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미 델라웨어대에서 사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후 시러큐스대에서 법학전문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같은 대학 출신으로 임준호 한성기업(003680)대표와 조인회 두올(016740)대표이사가 거론되는데, 걸림돌이 하나 있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들이 태어나기 전 이미 학교를 졸업해 동문인 점을 빼면 접점이 없는 셈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오른쪽)과 부인인 질 바이든 여사(왼쪽). 바이든이 ‘바이든 박사와 바이든 부통령이 이곳에 거주한다(Dr. & Vice President Biden Live Here)’는 표지를 들고 있고, 질 여사가 손으로 ‘부(Vice)’를 가리고 있다.

그나마 접점이 있는 기업인으로 김홍국 하림(136480)그룹 회장이 알려지고 있는데요. 바이든 당선인의 선거캠프의 주력 인물인 잭 마켈 전 델라웨어주지사와의 인연 때문입니다. 김 회장은 지난 2011년 미 델라웨어주(州) 소재 닭고기 가공 업체 알렌패밀리푸드(현 앨런 하림푸드)를 인수하면서 당시 델라웨어주지사였던 마켈과 연을 맺었습니다. 다만 하림은 김 회장과 바이든 당선인 사이에 직접적 관계는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한국 경제인들과의 인맥을 중요시해왔습니다. 미국도 경기 부양을 위해서 한국 등 해외기업 유치가 중요한 건 마친가지기 때문입니다. 기업인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도 우리나라 그룹 총수들과의 친분을 과시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6월 한국을 찾았을 땐 기업 총수들을 본인이 묵고 있던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로 불러 조찬 회동을 하며 ‘비즈니스 천재들’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국 기업인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 류진 풍산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허창수 GS 회장, 트럼프 대통령,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 허영인 SPC 회장,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 정의선 현대차수석 부회장.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미국에 투자를 많이 한 기업 대표들에 대해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당시 한국 경제인 간담회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이름을 언급하며 대미투자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신 회장이 루이지애나주 투자를 결정하자 그를 백악관으로 불러 집무실에서 독대하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기업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에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친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직접적인 인맥이 없더라도 사업을 해나가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특히 이미 미국에 반도체와 자동차 등 공장을 가지고 있는 삼성·현대차·LG 등 대표 기업들은 미국 입장에서도 중요한 고객이기에 쉽게 무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재계 관계자도 "트럼프 대통령도 특정 한국 기업인과 각별한 사이라는 소식은 거의 없었지만, 당선된 이후 국내 주요 기업인들과 만남을 이어갔다"면서 "앞으로 바이든 당선인도 대규모 투자 성사 등을 계기로 한국 재계 총수들과 직접적인 친분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