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부는 보조금 확 늘렸는데, 지방정부는 '돈 없어'
세종 83%, 제주 76%, 서울 47% 예산 남아돈다
"전기차 보급 목표 지나치게 장미빛"…2021년 예산은 1조원 넘어

올해 전기자동차 구매보조금 책정된 예산 가운데 1~9월 집행된 금액이 예산의 50.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가량의 예산이 쓰이지 않고 남았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 부산, 세종, 제주 등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집행율이 낮았다.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지급하는 보조금 지급 예산이 부족해 구매보조금 신청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기차들이 충전소에서 전력을 충전하고 있다.

2021년도 환경부 예산안에 대한 국회 예비심사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9월 전기차 구매보조금으로 쓰인 예산은 총 4200억원으로 당초 책정된 보조금 8300억원 대비 50.8%에 불과했다. 3개월 정도를 남기고 당초 계획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 남아돌았다는 얘기다. 10~12월에 전기차 판매량이 큰 폭으로 뛴다 해도 상당수 금액은 불용 처리될 전망이다.

올해 정부는 승용차 6만5000대, 화물차 1만3000대, 버스 650대, 이륜차 2만1000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300대 등 9만9950대의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승용차에는 5200억원, 화물차에는 2100억원, 버스에는 700억원, 이륜차에는 240억원, PHEV에는 15억원의 보조금을 각각 지급한다는 계획이었다. 총 8200억원이다.

이 같은 보조금 규모는 본예산(7100억원)에 추가경정예산 1100억원이 더해진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 집행 내역을 따지고 보니, 본예산에 편성된 금액도 다 못쓴 것으로 나타난 셈이다.

전기차 보조금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 이유는 서울, 부산, 세종, 제주 등 일부 지자체에서 보조금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과 세종 등에서는 환경부 보조금과 별도로 지급하는 자체 보조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보조금 신청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기아자동차 니로 전기차는 노블레스 트림 기준 4980만원인데, 중앙정부(환경부) 구매보조금 820만원을 지급받고 여기에 더해 각 지자체별로 보조금을 더 받는다. 지자체 보조금은 각각 서울 450만원, 부산 500만원, 세종 400만원이고 전북 같이 많이 지급하는 지자체는 900만원에 달하기도 한다. 가령 서울의 경우 니로 구매자는 1270만원의 보조금을 받아 3760만원에 차량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서울과 세종 같은 경우 지자체가 보조금을 충분히 편성하지 않아 미리 타낸 중앙정부 보조금도 쓰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서울은 1520억원이 편성됐지만, 실제 집행된 금액은 800억원에 불과했다. 47%에 해당하는 예산이 남은 것이다. 부산도 350억원의 보조금을 요구했지만, 실제 부산에 거주하는 전기차 구매자에게 지급한 금액은 170억원에 불과했다. 48%가 쓰이지 않았다. 세종시의 경우 50억원의 예산이 책정됐지만, 집행된 금액은 9억원에 불과했다. 집행률은 17%고 불용률은 83%에 달한다. 제주도는 1900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았는데, 집행된 금액은 500억원에 불과했다. 76%의 예산이 고스란히 남은 셈이다.

국회 환노위는 "서울, 세종 등 일부 지자체의 경우 수요가 충분함에도 지자체 예산 부족 등을 사유로 보조금 신청접수를 조기 마감하면서 집행실적이 부진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또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전기차 수요가 미진한 것도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전기차 보급 목표만 늘려잡고 예산을 배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기존 내연기관차 대비 전기차의 상품성이나 전기차 충전 인프라, 가격 경쟁력을 고려했을 때 올해 전기 승용차를 6만5000대 보급하겠다는 목표는 과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의 전기차 모델은 코나, 니로 등 소형 SUV 형태가 많은데, 시장 수요가 협소할 수 밖에 없다.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모델3가 올 상반기(1~6월) 전체 보조금의 43.2%를 가지고 간 데에는, 국내 전기차 판매가 부진한 것도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문제는 2021년 전기차 보조금을 책정된 예산이 1조200억원으로 올해(8300억원)보다 22.9% 늘어난다는데 있다. 특히 화물차 지원 예산은 2100억원에서 4000억원으로 2배가량 늘어난다. 보급 목표도 1만3000대에서 2만5000대로 증가했다. 승용차는 5250억원으로 올해보다 50억원 늘어나는데 그치지만, 1대당 평균 800만원씩 6만5000대를 지원한 데에서 대당 평균 700만원씩 7만5000대를 지원하는 것으로 바뀐다. 실제 보급 목표치는 1만대 늘어난 셈이다.

이렇게 보급 목표는 공격적으로 세웠지만, 실제 올해도 예산이 남아도는 상황이다. 따라서 내년에도 대규모 예산 불용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그린 뉴딜을 내세워 전기차 보급을 늘리겠다고 하는데, 실제로 시장 여건이 받쳐주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일색인 서울이나 세종에서도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상황이라 중앙정부의 전기차 확대가 공염불로 보이는 구석마저 있다"고 이 관계자는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