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화웨이 제재 기조 유지시 시나리오
스마트폰 중국 고가시장선 애플, 해외선 삼성 수혜
삼성, AP '엑시노스'로 오포·비보·샤오미 겨냥
해외선 '갤럭시A' 시리즈 이하 가성비폰 승부해야
삼성 파운드리도 기대해 볼 2021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화웨이 정책을 어떻게 이어가는가에 따라 한국 핵심 반도체·스마트폰 산업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화웨이가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 세계 2위 스마트폰 업체인데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반도체를 대량 구매하는 ‘큰손’이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는 바이든 당선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화웨이 제재 기조를 이어간다는 가정에 따라 정리했다.

그래픽=박길우, 사진=AP 연합뉴스

◇ 2021년, 격동의 스마트폰 시장… 삼성, 애플·오포·비보·샤오미와 반사이익

미국 제재와 이에 따른 중국 내 애국소비에 힘입어 올해 2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1위까지 치고 올라왔던 화웨이는 저가부터 고가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로 중국 내 점유율도 50%에 육박한다. 중국을 제외한 해외시장에서는 평균판매가격(ASP)이 230달러(약 25만원)로 저가를 주로 공략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GfK 예측 시나리오에 따르면, 중국 내 250달러 미만 저가 시장에서는 현지 스마트폰 브랜드인 오포·비보·샤오미가, 250~500달러 사이의 중가 브랜드에서는 오포·비보가, 500달러 이상, 그중에서도 전체 고가 시장의 52%를 차지하는 700달러 이상 시장에서는 애플이 독보적인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500~700달러 사이에서는 오포·비보가 혜택을 볼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화웨이 반사이익은 점유율 존재감이 거의 없는 중국보다는 해외 시장에서 기대해볼 만하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화웨이는 해외에서만큼은 주로 250달러 미만의 저가시장에서 주력한 편이다. 이런 빈자리를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유럽, 동남아시아, 중동·아프리카 등지에서 샤오미, 오포, 비보, 모토로라 등과 경쟁해 승부를 봐야 한다.

실제 미국의 추가 제재가 9월 15일부터 발효되고 3분기부터 화웨이가 역성장하며 주춤하기 시작하자 내수에 집중하던 오포·비보는 10월부터 글로벌 진출 확대를 위한 부품 주문을 본격 시작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10월 오포·비보·샤오미의 D램 등 주문이 많았다"며 "실제 화웨이 스마트폰 출시가 급격히 줄어들 시기가 내년 3~4월로 추정되는 만큼 2~3월부터 이들 기업의 칩 주문이 본격적으로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메모리반도체 사업 관점에서 본다면, 화웨이 빈자리를 다른 기업들이 대체해나가면서 내년에도 꾸준한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 전망이다.

◇ 공격적으로 화웨이 점유율 가져가려는 애플, 삼성의 과제는?

최근 업계에서는 애플의 공격적인 화웨이 점유율 뺏어오기 전략을 주목하고 있다. 현재 애플은 중국 고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와 양강 구도로 경쟁 중이다. 애플 입장에서는 이 시장을 완전히 흡수할 절호의 기회를 만난 셈이다.

이에 따라 애플은 안드로이드 진영에 있던 화웨이 소비자들이 기존 스마트폰을 쓰는 것 같은 사용감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안드로이드에서 가져온 7가지 기능을 지난 9월 16일 공개한 새 모바일 운영체제 ‘iOS 14’에 적용하기도 했다. 홈 화면에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른바 ‘위젯’ 설치 기능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간 심플한 디자인을 추구했던 애플로서는 파격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iOS와 안드로이드의 '서로 닮아가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돼 왔지만, iOS 14의 경우 특히 안드로이드와 유사하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애플이 안드로이드 기기 보상 등으로 싼값에 기기를 푸는 등 ‘이래도 안 올거야?’ 식의 공격 정책을 이어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삼성전자의 5G 성능을 갖춘 갤럭시A시리즈.

삼성전자는 해외시장, 갤럭시S 시리즈보다는 갤럭시A 이하 중저가 시리즈에서 반사이익을 볼 수 있는 만큼 다양한 가격대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폰을 내놓는 것이 중요할 전망이다. 화웨이 스마트폰이 주로 카메라에서 소비자 반응이 좋았던 만큼 이를 지원하는 이미지센서 경쟁력이 뒷받침된다면,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사업과 덩달아 수혜를 볼 수 있게 된다.

◇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도약할 원년… AP·파운드리서 ‘훈풍’ 기대감

전문가들은 시스템반도체 중에서도 모바일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이 내년 두자릿수 성장세를 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욜디벨롭먼트(Yole Develoment) 집계를 보면, 올해 17억대가량 출하된 AP는 내년 20억대를 넘어서며 20% 가까이 성장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화웨이 제재로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회사)계열사인 하이실리콘마저 제재를 받고 있는 점은 ‘엑시노스’라는 브랜드로 절치부심(切齒腐心)하고 있는 삼성전자에는 기회일 수밖에 없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집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AP 시장은 퀄컴(29%), 미디어텍(26%), 하이실리콘(16%), 애플(13%), 삼성전자(13%) 등 5개사가 경쟁하고 있다. 내년부터 화웨이가 스마트폰을 못 만드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하이실리콘마저 점유율이 곤두박질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4개사로 공급사가 재편되며, 전체 AP 시장 성장 수혜를 각각 누릴 수 있게 된다.

실제 최근 삼성전자가 최신 5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최신공정으로 만든 첫번째 중가형 AP ‘엑시노스 1080’을 오는 12일 중국에서 전격 공개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국 유명 IT 트위터리안 아이스유니버스는 자신의 트위터에 "삼성전자가 중국에서 엑시노스의 주목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나섰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이 칩을 현지 스마트폰 업체인 비보의 신제품에 탑재할 예정이다.

다만, 화웨이가 중국 현지에서 주력하던 고가시장에서 애플과의 양강구도로만 좁혀 본다면, 퀄컴이 가장 큰 수혜를 볼 전망이다. 화웨이가 하이실리콘 칩을, 애플이 자체 칩을 넣어왔던 것을 고려했을 때 화웨이를 대체할 스마트폰 업체들이 쓸 수 있는 AP 선택지는 퀄컴이라는 것이다.

김영우 SK증권 이사는 "퀄컴이 늘어나는 수요를 대만 TSMC뿐 아니라 삼성 파운드리를 통해서도 상당량 위탁생산한다면, 삼성 시스템반도체의 또 다른 한축인 파운드리 외부 수주가 크게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퀄컴이 삼성 파운드리를 통해 생산하는 칩의 후공정을 대만이 아닌, 국내에서 마칠 가능성이 큰 만큼 관련 부품·장비 업계가 덩달아 수혜를 볼 수 있다"고 했다.

◇ 파운드리가 주목해야 할 美 인센티브

현재 미국 의회에서는 미국 반도체 제조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이른바 칩스(CHIPS·Creating Helpful Incentives to Produce Semiconductors for America)법안이 계류 중이다. 그간 반도체 업계와 트럼프 정부가 미국의 반도체 제조 역량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내비쳐왔던 점, 대규모 정부 재정지출을 통한 미국 중심의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을 바이든이 내세워왔던 점 등을 고려할 때 통과 가능성에 주목해봄직하다.

미국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장 전경.

이 법안은 외국 파운드리라도 미국에 공장을 지을 경우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현재 미국 애리조나주에 5나노 첨단 공장을 짓고 있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업체 대만 TSMC도 미국 정부 지원을 어느 정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인텔, 퀄컴 등 미국 팹리스(설계전문회사) 기업들이 만드는 범용 시스템반도체는 EUV(극자외선) 장비를 활용한 최첨단 기술로만 만들 수 있다"며 "이를 할 수 있는 기업이 TSMC와 삼성전자 단 두 곳이라는 점, 최첨단 공정을 활용하는 고객사 절반가량이 미국에 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도 투자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삼성은 미국 오스틴에 파운드리 공장 ‘S2’를 두고 있는데, 증설 등 추가 투자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반도체 업계는 현지에 본사를 둔 기업이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의 전체 48%를 차지하면서도 제조 능력은 12%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해 왔다.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제조 75%가 대만, 한국, 싱가포르, 중국 등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제조역량의 외부화가 일반적인 산업과 달리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에서는 전체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정부가 500억달러(약 56조원)를 투자하면 향후 10년간 19개의 주요 반도체 제조시설, 7만개의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최근 내놓으며 의회를 압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