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 51분. 그 일이 일어났다. 하느님, 내 아들, 내 아름다운 아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2017년 펴낸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끔찍이 사랑했던 장남 보 바이든(Joseph Robinette "Beau" Biden III)이 세상을 떠난 2015년 5월 30일의 기록이다. 보는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을 앓다 이날 마흔 여섯의 나이로 사망했다.

바이든은 개표 결과 발표에 앞서 거주지인 델라웨어주(州) 윌밍턴으로 돌아갔다. 일생이 뒤바뀔 순간을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서였지만 보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컸다. 바이든은 아들의 묘소를 찾은 뒤, 고향이자 최대 경합지 펜실베이니아주로 향했다.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 당선인이 2013년 1월 21일 장남 보 바이든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전쟁영웅에 법무장관 연임까지…남부러울 것 없던 큰아들

보는 젊은 시절부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유망한 정치인이 될 것이란 기대를 받았다. 로스쿨 졸업 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연방검찰 검사로 일하는 등 성공가도를 밟아온 데다가, 남다른 군 경력을 가진 그에게 정치 입문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평가였다.

실제로 보는 2003년 델라웨어주 방위군에 법무관으로 입대한 뒤 단기간에 소령으로 승진하며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정치 신인인 그가 2006년 델라웨어주 법무부 보좌관을 역임한 페리스 와턴을 누르고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에 당선된 데에도 군 경력이 큰 역할을 했다.

2008년 속한 부대의 이라크 파병 결정이 내려졌을 때도 보는 한달음에 전쟁터로 달려갔다. 2009년 귀국할 때까지 업무를 부장관에게 전부 위임하다시피 했지만 영웅에 대한 시민들의 대접은 후했다. 육군은 그의 공적을 인정해 훈공장, 동성훈장을 내렸다.

보가 지역을 넘어 주요 언론의 주목까지 받게 된 건 바이든이 2008년 부통령직에 오르면서다. 언론은 연일 공석이 된 델라웨어주 연방 상원의원 자리를 아들이 채우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쏟아냈고, 그의 2010년 보궐선거 출마는 기정사실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보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장관직 재선 의사를 밝혔다. 당시 바이든은 그가 "공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앞으로 모든 직책은 스스로의 힘으로 얻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며 "미래에 상원 도전 결정을 내리더라도 출마와 당선은 온전히 아들의 몫이다"라고 설명했다.

보는 2010년 재선에 성공해 2015년 1월까지 장관직에 몸담았다. 자리에서 물러나며 2016년 델라웨어주 주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지만 병세가 5개월새 급격히 악화되면서 철회했다. 보는 같은해 5월 30일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월터 리드 육군 병원에서 향년 4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는 나의 영웅" 보, 병상에서도 바이든 대선 출마 응원

바이든은 1972년 첫 부인과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때문에 사고 당시 살아남은 두 아들에게 그가 갖는 애정은 각별했다.

특히 출신 학교부터 시작해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걷는 보에 대해서는 틈만 나면 자랑을 늘어놔 팔불출 소리를 들었다. 바이든과 보는 델라웨어주 클레이몬트에 있는 가톨릭계 사립학교 아키메어 아카데미를 나와 시라큐스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현재 아내인 질과 결혼을 결심한 것도 보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보는 생전 질을 ‘제 2의 어머니’로 부르며 따랐다고 한다.

바이든은 보를 잃은 충격으로 2016년 대선 출마 계획을 내려놨다. 그러나 시름에 잠긴 그를 다시 일으킨 건 보였다.

뉴욕타임스(NYT)의 머린 다우드는 2015년 8월 1일 칼럼에서 보가 바이든에게 남긴 마지막 당부는 바로 대선 출마였다고 전했다. 부통령 임기를 마친 뒤 주저앉지 말고 미국을 위해 옳은 일을 택하라고 격려했다는 것이다. 보는 마비로 오른쪽 얼굴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015년 6월 6이 장남 보 바이든의 장례식에 참석해 아들의 관을 내려다보고 있다.

바이든은 아들의 장례식에서 가족과 함께 ‘보라면 어떻게 할까’라고 적힌 팔찌를 찼다. 팔찌는 보가 가장 좋아한 푸른색이었다. 바이든은 5년 뒤인 2020년 대선후보직을 수락했다.

바이든은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지난 8월 20일 대선후보직 수락 연설에서 보를 언급하며 "매일 내게 영감을 준다"고 했다. 연설 직전에는 보가 과거 자신의 부통령 유세를 도우며 "나의 영웅, 조 바이든"이라고 소개하는 장면이 방송을 타기도 했다.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것도 평소 보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보와 해리스는 각각 델라웨어주 법무장관,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으로 있을 때 인연을 맺었다. 둘은 대다수 주 법무장관과 달리 금융권 규제법에 반대하며 하루에도 수차례 통화를 주고 받았다.

바이든은 해리스와의 첫 공동 회견에서 "보는 그녀와 그녀가 하는 일을 존경했다"며 "나는 그 누구보다 보의 의견을 믿는다. 솔직히 그게 이번 (러닝메이트) 결정에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바이든의 아픔은 그에게 국민적 연민을 불러일으키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바이든 선거진영은 그가 ‘상실을 겪어봤고 타인의 슬픔을 이해한다’는 점을 부각시켜 유세 전반의 테마를 공감으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