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인상, 환경·노동 규제 강화 예상… 기업 비용 부담 늘듯
신재생에너지 업종 수혜 예상… 국제유가 움직임도 관심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차기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국내 산업계는 긴장하는 모습이다. 개표 중반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유력한 듯 보이면서 세계 경제의 틀이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안도하는 기류가 있었지만 바이든이 당선되면서 예측 못 했던 불확실성이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폈던 트럼프노믹스(트럼프의 경제정책)에서 벗어나게 됐지만, 바이든의 경제정책도 미국우선주의, 탈중국 가속화를 핵심으로 하기 때문에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여전히 ‘고래 싸움에 낀 새우’ 신세라는 분석도 나온다. 게다가 바이든이 환경·노동 이슈를 강조하고 대기업 증세를 공약한 만큼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질 소지가 크다.

그래픽=이민경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은 "미국 정권 교체가 이뤄졌지만, 바이든 행정부 역시 코로나 위기에 대응한 경기 부양에 나설 것이고, 통상 정책에서는 중국에 대한 압박을 지속할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바이든 당선에 따라 각 업종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바이든이 대규모 재정 지출을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설 예정이고,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육성한다고 밝힌 만큼 관련 업종의 수혜가 예상된다.

◇ 미·중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 잡기’ 더 중요해질 듯

백악관이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면서 세계는 그동안 트럼프가 쌓아온 보호무역 장벽이 더 높아지는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도 이전과 같은 자유무역 환경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 확산으로 붕괴한 경제를 진작시키기 위해 바이든 역시 미국인 우선주의를 외칠 수밖에 없고 중국과도 계속 날을 세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세계 1~2위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에 제품을 판매하며 경제를 꾸리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갈등하는 양측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유지되는 셈이다. 법무법인 광장의 박태호 국제통상연구원장은 "바이든이 다자무역체제를 지향하고 있어 오바마 전 대통령이 꾸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복귀할 가능성이 큰데, 우리나라는 중국이 반대하는 이 협정에 가입할지를 결정해야 한다"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고민하는 일이 더 많아지고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동맹국과의 협력이 강조되면서 직접적인 통상 압박이 커지지는 않겠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늘어난 미국의 무역 규제 조치는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대한 수입규제는 역대 최대인 228건인데, 미국이 47건으로 개별 국가 중 가장 많았다.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수입규제는 지난해보다 8건 늘어, 가장 많이 증가했다.

바이든은 ‘적극적 재정 투입을 통한 중산층 재건’을 내세우며 구체적으로 최저임금 인상과 대기업에 대한 증세, 노동권 향상을 공약했다. 바이든은 현행 21%인 법인세율은 28%로 인상하고, 최저 법인세(15%)를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법인세 인상, 환경·노동 규제 강화 등으로 미국에 투자한 우리 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이민경

미국의 달라진 대북 정책이 통상 환경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크다. 전통적으로 대북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공화당과 달리 민주당은 대북 정책으로 ‘전략적 인내’를 강조한다. 안덕근 한국국제통상학회장(서울대 교수)은 "미국의 대북 기조가 달라진 상황에서 북한이 주의를 끌기 위해 도발에 나서면 한반도 불안감이 커져 통상 문제까지 꼬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업종별 기상도, 신재생에너지 ‘맑음’… 자동차·철강은 대비 필요

백악관의 주인이 바뀌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은 바이든이 가장 공을 들인 에너지 분야다. 바이든은 친환경에너지 인프라에 2조달러(약 2300조원)의 대규모 투자 공약을 밝혔는데, 이미 미국 시장에 진출한 태양광 업체 한화솔루션을 비롯해 현대에너지솔루션, 두산퓨얼셀 등의 사업 확대가 기대된다. 한진현 무역협회 부회장은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는 가운데 예측 가능한 룰에 따른 통상정책도 시행될 것"이라며 국내 기업에 기회 요인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친환경 정책을 내세우는 바이든은 연방 토지에서 프래킹(셰일가스를 분리하는 수압파쇄법)을 제한하거나 메탄가스 배출 기준을 강화할 방침인데, 이는 국제유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바이든의 에너지 정책이 정유·화학 등 국제 유가 움직임에 큰 영향을 받는 국내 기업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거나 생산할 예정인 LG화학(051910)SK이노베이션(096770)역시 수혜가 예상된다. 바이든이 전기차용 배터리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배터리 제품 자국 생산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바이든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5G·6G, 신소재,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 만큼 기술력을 갖춘 국내 기업에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다만 트럼프만큼 급진적인 방식은 아니겠지만, 바이든 역시 미국우선주의를 기치로 내걸면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높은 반도체 공급 안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려면 현지에 공장을 지어야 하는 등 기업 활동에 다소간 제약이 생길 전망이다.

국내 주요 수출 품목인 자동차나 철강, 전기·전자 업종의 경우 바이든의 당선으로 당장 직접 영향을 받을 요인은 없지만, 방심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시행된 수입 제품에 대한 규제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권 상근부회장은 "바이든 당선자는 경제 재건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적 보호무역정책을 계승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트럼프 행정부 들어 제재를 받았던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업종은 새로운 행정부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한미 간 긴밀한 협력, 경제 성장의 토대"

전문가들은 한미 간 협력을 강화해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는 국내 기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격변의 시기일수록 굳건한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상기하게 된다"며 "이를 기반으로 한국경제계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진현 무역협회 부회장은 "미국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무역 파트너로, (트럼프 재임 기간에도) 자동차 등 우리 기업은 미국에 투자하면서 크게 약진해 왔다"며 "미국 행정부의 통상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가든 한미 간 긴밀한 협력관계 토대로 경제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