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자산운용의 펀드 사기 사건은 대규모 금융사기 사건에서 정·관계에 대한 로비 스캔들로 확대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건은 전혀 다른 인물들에 의해 벌어졌지만 세세하게 뜯어보면 비슷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 중 하나가 이른바 연예계 큰손들의 존재다.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연예계 대부로 불리던 이들이 두 사건 모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라임의 펀드 사기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인물 중 한 명이 김정수 리드 회장이다. 김 회장은 지난 7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2018년 리드 자금 44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잠적했는데 지난 7월 체포됐다. 리드는 올해 상장폐지가 결정됐다.

라임 사태의 몸통은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김정수 회장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는 게 라임 사태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라임 사태를 초기부터 지켜본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김봉현이 전주(錢主) 역할을 했다면 김정수는 설계자 같은 역할을 맡은 인물로 보면 된다"며 "이종필 라임 부사장이 김정수를 만나면서 라임의 사기 행각이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2017년 라임이 리드의 전환사채를 인수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수 리드 회장.

김정수 회장은 오랜 시간 코스닥 시장에서 활동한 이른바 '꾼'이지만, 20여년 전에는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매니지먼트사 대표였다. 그는 배우 박중훈의 매니저로 연예계에 입문했는데 이후 최진실, 안재욱, 김정은 같은 당대의 톱스타의 매니지먼트를 맡았다.

김 회장이 2002년에 설립한 매니지먼트사 '플레이어'에는 이병헌, 이정재, 신은경, 신하균 같은 배우들이 소속돼 있었다. 김 회장은 2003년에 배우 S씨와 결혼했다가 2007년 이혼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중반 연예계를 주름잡았던 대형 기획사 팬텀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을 지낸 적도 있다.

잠적한 이모 에스모 회장도 연예계 출신이다. 이 회장은 무자본 인수합병(M&A)에 잔뼈가 굵은 기업 사냥꾼이다. 이 회장이 경영권을 인수한 코스닥 상장사 에스모가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하면 라임이 인수하는 방식으로 라임 사기 사건에 얽혀 있다. 이 회장과 라임 이 부사장을 연결해준 인물이 바로 리드의 김정수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라임의 금융권 로비를 주도한 핵심 인물이지만, 아직 검찰은 이 회장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기업사냥꾼이지만 이 회장도 처음에는 매니저로 연예계 활동을 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배우 장동건의 매니저로 활동했다. 가수 비의 월드 투어를 추진했던 인물도 이 회장이다. 2007년 7월 비의 LA 공연이 시작 90분 전에 취소되면서 이 회장은 가수 비, JYP엔터테인먼트와 분쟁을 겪기도 했다. 이 회장은 배우 L씨과 2006년 결혼했지만 2011년에 이혼했다.

서울 강남의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무실.

옵티머스 사태에서도 연예계 큰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옵티머스 측은 정·관계 로비를 위해 여러 명의 로비스트를 활용했다. 그 중 한 명이 일명 '신 회장'으로 불리는 신모씨다.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는 신씨를 위해 서울 역삼동 강남N타워에 사무실을 제공하고 외제차인 롤스로이스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신씨는 평소 검찰과 정계 쪽 인맥을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검찰은 신씨를 통해 로비를 진행했다는 김재현 대표의 진술을 확보하고 관련 수사를 진행 중이다.

신씨도 한 때 연예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거물이었다. 그는 2000년대초 유명 개그맨이 여럿 소속된 연예기획사 대표를 맡았다. 이 기획사에는 강성범, 김준호, 김대희, 김숙, 문세윤, 심현섭, 황승환 등 당대 최고의 개그맨들이 소속돼 있었다. 하지만 연예기획사가 어려워지자 2000년대 후반부터는 다양한 사업에 뛰어들면서 로비스트로 변신한 것으로 보인다.

거액의 금융사기는 로비 없이 불가능하다는 게 여의도 증권가의 통설이다. 금융권과 기업, 정·관계를 하나로 엮으려면 강력한 네트워크가 필요한 데 연예계 관계자가 그런 역할을 주로 맡는다고 한다. '작전'에 동원되는 코스닥 상장사가 보통 주가를 띄우기 위해 엔터테인먼트업에 뛰어드는 것도 연예계와 금융사기의 연결고리가 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연예계 큰손이나 대부로 불리는 사람들은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사귀기 마련"이라며 "이런 인물들이 기업사냥꾼이나 로비스트로 변신하면 과거에 만든 인맥으로 사기 행각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