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출시 '아이오닉7'용 배터리 공급 사업
코나 전기차 화재에 '탈LG' 대안 필요한 현대차
현대차-삼성, 협력 시너지 높고 이해관계 맞아

삼성SDI(006400)가 현대자동차가 2024년 출시하는 대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 전기차 ‘아이오닉7’용 배터리 수주에 뛰어들었다. 아이오닉7용 배터리 공급 사업은 최대 30조원 규모로 2개 업체를 공급사로 선정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가 그동안 삼성그룹과의 소원한 관계를 청산하고 배터리와 차량용 전장 장비 분야에서 본격적인 협력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 입장에서 삼성과 협력하면, 전기차 분야에서 최대 파트너였던 LG그룹에 대한 의존도를 대폭 줄이게 된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3차 생산분 배터리 공급사 선정 입찰에 삼성SDI가 참여키로 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현대차는 2021년부터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아이오닉’ 브랜드의 전기차를 생산하는데, 모델별로 차량의 특성에 맞춰 배터리 공급사를 각각 선정하고 있다. 내년에 출시되는 준중형 SUV ‘아이오닉5’에는 SK이노베이션(096770)의 배터리가 들어가고, 2022년 출시하는 중형 세단 ‘아이오닉6’가 중심인 2차분 사업에는 LG화학(051910)과 중국 CATL제 배터리가 탑재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9월말 E-GMP 3차분 사업에 대한 입찰 공고를 냈다. 국내 배터리 3사를 비롯한 국내외 주요 배터리 회사가 대상인데, 회사를 특정해 보내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삼성SDI를 초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암묵적인 관례대로 삼성SDI는 현대차의 배터리 대량 발주에 응하지 않아왔다. 그런데 여기에 삼성SDI가 본격적인 참가를 결정하고 준비에 나선 것이다.

현대차는 지난 8월 전기차 전용 브랜드 아이오닉을 내놓으면서 향후 내놓을 아이오닉 브랜드 전기차 이미지를 공개했다. 가운데 차량이 2024년 출시할 아이오닉7이다.

3차분에 대해 업계 고위 임원은 "1차분과 2차분을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물량을 공급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1차분은 10조원, 2차분은 16조원 규모였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를 감안하면 30조원에 육박할 수 있다는 게 자동차업계의 시각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7월 "현대차, 기아차, 제네시스 브랜드로 2025년에 전기차 23종 100만대를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시장 점유율을 10% 이상을 기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11개의 전기차 전용 모델을 포함해 총 44개의 전동화 차량(수소연료전지차 포함)을 운영할 계획이다.

그동안 현대차와 삼성은 소원한 관계였다. 두 그룹이 오랫동안 경쟁관계 였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과거에 현대전자를 설립해 반도체 시장을 노렸었고, 삼성그룹도 삼성자동차를 설립했다. 재계 1, 2위 기업집단이라 사업영역이 겹친 데다, 양쪽 모두 상대방의 본진(本陣)을 공략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현대차 입장에서 삼성과의 협력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고, 삼성도 현대차에 대량으로 자사 제품을 납품한다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10월 초 대구 달성군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전소된 코나 일렉트릭.

분위기가 바뀌게 된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현대차의 소형 SUV 코나의 전기차 모델(코나 일렉트릭)이 배터리 결함으로 잇따라 불이나 10월 리콜을 하게 됐는데, LG화학제 배터리가 원인으로 지목됐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코나 전기차 리콜에 대해 "LG화학 중국 난징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 셀을 공급받아 (현대차와 LG화학의 합작사인) HL그린파워 충주공장에서 조립한 배터리팩이 탑재된 일부 차량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LG화학이 만든 배터리셀의 분리막 결함 때문이라는 게 현대차의 입장이다. LG화학은 여기에 자사 배터리셀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현대차의 시각은 단호하다.

자동차업계와 배터리업계는 이 사건을 계기로 현대차가 LG화학에 대한 의존도를 대폭 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안전성과 신뢰도가 중요한 배터리 특성상, 제조 공정에서 불량을 낸 업체 제품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당시 한국타이어)의 타이어 결함으로 신형 제네시스가 소음, 진동 문제를 겪자 이후 신차용 타이어에서 한국타이어를 사실상 제외했다"며 "신뢰가 중요한 자동차 산업 특성상 현대차가 강수를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가 공동으로 전기차용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는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카누가 내놓은 전기차 플랫폼 모형이다.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도 비슷한 형태를 띌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현대차의 고민은 LG화학을 공급사에서 뺄 경우, SK이노베이션과 CATL 정도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기차용 고품질 배터리를 대량으로 생산해 공급할 수 있는 회사가 몇 곳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복점(複占·두 공급자가 동일 상품을 경쟁적으로 공급함) 상황이 되는 터라, 현대차의 협상력이 약화되고 가격 등에서 배터리 제조사에 끌려다니게 된다. 3~4곳의 회사가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기 위해 삼성SDI를 ‘초대’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지난 14일 정의선 회장이 취임을 계기로 두 그룹이 구원(舊怨)을 떨쳐내고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 것도 또다른 배경으로 거론된다. 정의선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1970년생인 정 회장이 1968년생인 이 부회장을 사석에서 ‘형’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 회장은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례식에 주요 그룹 총수 가운데 가장 먼저 조문을 했고, 영결식에도 참석했다. 선대에 있었던 해묵은 갈등 관계를 두 사람 간의 개인적인 인연을 발판 삼아 정리하기 용이한 셈이다. 실제로 정 회장은 지난 5월 배터리 3사 중 삼성SDI를 가장 먼저 방문했다.

현대차의 전기차 콘셉트카 프로페시 내부 이미지다. 이 차량은 2022년 출시 예정인 중형 세단 아이오닉6의 원형이다.

배터리 뿐만 아니라 미래 모빌리티 사업에서 두 회사가 협력할 경우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도 삼성SDI가 E-GMP 3차 배터리 수주전에 뛰어든 배경이다. 자동차는 점차 ‘달리는 컴퓨터’ 내지는 ‘달리는 스마트폰’이 되어가고 있으며 그에 따라 CPU, 메모리반도체, 통신 장비, 디스플레이 등의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공간이 넓고 대량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 가전제품도 탑재가 가능하다. 또 5G(5세대) 이동통신망과 결합한 커넥티드카나 AI(인공지능) 기술이 들어간 자율주행차 등 IT 첨단 기술과의 융합도 가속화된다.

현대차는 현재 전기차용 전장장비를 LG전자(066570)등에 거의 의존하다시피한 실정이다. 내장재도 LG하우시스가 납품한다. 현대차 입장에서 반도체와 통신기술의 세계 최강자인 삼성전자(005930)를 끌어들이면 자사 전장장비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LG전자의 독점적 지위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자동차 업계와 배터리 업계에서는 "삼성SDI가 현대차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 사업에 뛰어들기로 한 데에는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삼성SDI가 최종 선정될 경우 현대차가 LG그룹에 대한 의존도를 과감하게 줄이는 ‘탈(脫)LG’ 행보를 본격화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