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분할·계열사간 지분 매매說 등 관심집중
불법 승계 재판받는 중이라 전면적 지배구조 개편 없을 듯
상속세 재원 마련 위한 특별배당 가능성… 일부 지분은 매각 예상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별세로 삼성그룹의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 가치만 18조원이 넘는데, 이를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자녀들이 물려받는 과정에서 11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마련해야 한다. 상속 방식에 따라 지배구조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와 증권가에서는 당장 전면적인 지배구조 개편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가뜩이나 그룹 지배력이 취약한 수준인데, 여기에다 천문학적인 상속세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삼성그룹 사정상 이 과정에서 어떻게든 이 부회장에 유리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불법 경영권 승계 문제로 재판까지 받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에 유리한 지배구조 개편을 단행할 수는 없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소한 당분간은 상속세 재원 마련 정도만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상속세 마련 위한 특별배당

30일 재계에 따르면 내년 4월 전에는 고 이건희 회장의 지분 상속인 등 상속안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법에 따라 상속인은 사망 이후 6개월 이내에 상속세를 신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유족이 '연부연납' 방식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연부연납은 연이자 1.8%를 적용해 신고·납부 때 6분의 1의 금액만 낸 뒤 나머지를 5년간 분할 납부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5년 분납해도 총수 일가는 매년 1조80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야 한다. 재원의 상당 부분을 계열사 배당 수입으로 충당해도 한참 모자란다. 주식 상속세는 상속자 사망 이후 2개월간의 주가 흐름도 고려하는데 삼성그룹 계열사 주가가 이건희 회장 별세 이후 상승했기 때문에 상속세 부담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재용 부회장과 가족의 지난해 배당소득은 7246억원"이라며 "가족 보유 현금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매년 1조8000억원의 상속세를 배당소득으로 감당하기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계열사들이 일시적으로 배당을 대폭 확대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삼성전자(005930)는 29일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주주환원을 위한 잔여 재원 및 환원 계획을 내년 1월말 발표하겠다"고 언급했다. 내년 이후 적용될 새로운 주주환원 계획 역시 같은 시점에 발표하겠다고 했다. 강송철 신한금융투자 부부장은 "연말 특별배당 가능성은 열려있는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 삼남매 보유 삼성SDS 지분은 매각 가능성 존재

하지만 특별배당을 실시하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재판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배당 폭탄’을 결정하는 것 또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삼성물산(028260)은 최근 배당 가능성을 묻는 애널리스트들의 질문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삼성물산 지분을 각각 17.33%, 5.55%, 5.55% 보유하고 있어 만약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한 대규모 배당을 실시한다면 삼성물산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에 증권가에서는 일가족이 보유한 삼성물산 외의 삼성 계열사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분 매각 후보로 거론되는 계열사 중 하나는 이건희 회장이 지분 20%를 보유한 삼성생명(032830)이다.

삼성 서초사옥 전경

삼성생명 지분을 매각해도 이 부회장의 경영권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을 정점으로 삼성생명을 거쳐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지분 17.33%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고 삼성물산은 삼성생명 지분 19.34%를 갖고 있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그룹 지배력 유지 측면에서 의미 있는 삼성전자, 삼성물산을 제외한 삼성생명, 삼성SDS 등의 처분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삼성SDS지분 약 40%를 갖고 있어 이재용 부회장 등 3남매가 보유한 삼성SDS 지분을 처분해도 그룹 경영권 유지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최대주주로서의 전략적 중요성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반론이 나온다. 은경완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삼성생명 지분은 2조6000억원 내외로 금액은 삼성전자 지분 대비 크지 않지만 삼성전자 대주주 지분이기 때문에 외부 매각 가능성보다는 오너 3세들에게 상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지배구조는 어떻게?… 삼성전자 인적분할도 대안

삼성그룹의 상속세 마련과 지배구조 향방에는 여당이 추진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 일명 ‘삼성생명법’이나 지주회사 규제를 강화한 ‘공정경제 3법’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총자산의 3% 이하로 줄여야 한다. 약 24조원 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하면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기존 고리가 끊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 경우 실질적 지주회사 역할인 삼성물산이 보험 관계사가 보유한 삼성전자를 인수해 지배구조를 ‘이 부회장→삼성물산→삼성전자’로 단순화할 것이란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래픽=이민경

증권가에서는 현실적으로 삼성물산이 보험 관계사의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취득하긴 어렵기 때문에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한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4%를 매각해 실탄을 마련한 뒤 삼성생명이 내놓은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이는 시나리오다. 자금 문제도 해결하고 이 부회장도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분석이다.

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 매각 시 발생하는 4조원 가량의 법인세가 걸림돌이다. 법인은 보유주식을 팔면 매각차익의 22% 수준에서 세금을 내야 한다. 그래서 재계에서는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팔아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일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이같은 지분 매각에 대해 삼성 관계자들 또한 "현실성이 낮다"고 지적한다. 삼성물산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덩치가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자산을 현금화한 뒤 삼성전자만 매입하는 것 또한 추진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인적분할도 보험업법 개정 시 대응 방안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삼성전자 투자회사가 삼성생명으로부터 삼성전자 사업회사 지분을 인수하고,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으로부터 삼성전자 투자회사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을 3대7 비율로 가정했을 때 삼성전자 투자회사 시가총액은 107조원 수준으로 계산된다"며 "삼성전자 투자회사의 지분 6.8%를 매입하는데 필요한 자금은 7조3000억원 수준이며 이는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처분하지 않아도 동원 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삼성물산의 지주비율이 50%를 넘지 않기 때문에 삼성물산의 강제 지주회사 전환 압박도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