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진 KIST 원장 취임 기자간담회
"실패해도 세계 최초 도전 연구자에게 상 줄 것"
"논문·특허 위주 평가 개선책 내년 2월까지 마련"
"인공 뇌융합·양자컴퓨팅 등 계획 중"

윤석진 KIST 원장이 27일 서울 성북구 본원에서 개최된 과학기자간담회에서 기관 운영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은 27일 "국가 연구개발(국가 R&D) 과제의 성공률이 97%라는 건 자랑이 아닌 오명"이라며 "(앞으로는)미지의, 세계 최초의 연구들을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윤 원장은 취임 100일째를 맞는 이날 오전 KIST 본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며 "구체적으로는 사람의 뇌와 반도체를 연결하는 ‘인공 뇌융합’ 연구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한해 국가 R&D 과제 수는 작년 기준 6만개 이상으로, 이 중 98%가 목표를 달성했다. 매년 95~99%의 달성률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성과가 기술 혁신으로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작년 1월 문재인 대통령도 "국가출연연구소의 연구과제 성공률이 무려 99.5%다. 저는 이 수치가 자랑스럽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윤 원장은 논문과 특허 수를 중심으로 연구자의 능력을 평가하고 보상하는 시스템 때문에 연구자들이 난이도가 낮은 연구과제 위주로 수행하고 있다고 진단, 앞으로는 고난도 연구에 도전하도록 평가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KIST 연구자들의 평가 항목을 정량 지표에서 정성 지표로 바꾸기로 했다. 연구자들이 불필요한 경쟁에서 자유로워지면서도 도전적인 목표를 달성할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평가 제도를 내년 2월까지 마련할 예정이다.

개편된 인사 평가 시스템 아래에서 연구자들이 실패를 두려워 않고 고난도 연구에 과감히 도전할 것이라는 게 윤 원장의 구상이다. 윤 원장은 "목표 달성을 거의 못 할 연구주제들을 선정할 것이고, 그런 주제에 도전하다가 실패한 연구자들에게 오히려 상을 주는 문화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고난도 연구로는 양자컴퓨팅 연구가 있다. 미국이 선두를 달리고 있는 양자컴퓨팅 분야에서 미국을 따라가고 1등 자리를 꿰차는 걸 넘어 어느 국가도 해내지 못한 새로운 성과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사람의 뇌와 반도체를 연결하는 ‘인공 뇌융합’ 연구도 계획 중이다. 융합에 성공한다면 세계 최초 사례가 된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대응, 인공지능(AI) 의료로봇 등 고난도 연구로 평가받던 기존 과제들도 계속해나간다.

KIST는 AI·빅데이터·클라우드, 이른바 ABC 기술을 연구실에 도입할 방침이다. 이날 참석한 석현광 연구기획조정본부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현장 연구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었다"며 "국가 재난 상황에서도 연구자를 보호하며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KIST는 또 본원 내에 KIST 연구진과 민간이 함께 연구하는 연구실인 ‘링킹랩(Linking Lab)’ 5곳을 향후 1년 내 만든다. 석 본부장은 "현재 대기업 1곳과 중소기업 3곳이 참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임기 3년 동안 말씀드린 모든 걸 해낼 수는 없을 테지만, 계획 실현을 위한 생태계는 만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1983년 연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 KIST에서 연구 생활을 시작, 올해 7월 25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KIST 역대 원장 중 첫 국내파, 첫 비(非)서울대, 첫 호남 출신으로 이목을 끈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