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준비, 지배력 강화, 상속세 마련' 등은 당장의 과제
사업구조 재편 지속할 듯... 상속세 마련 맞물려 금융부문 팔 수도
여동생들과 그룹 분할 여부도 관전 포인트

이건희 회장이 별세하면서 공식적으로 삼성그룹을 이끌게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뉴 삼성'이 어떤 그림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부회장 앞에 놓인 당장의 과제는 국정농단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조작에 따른 재판 준비, 그리고 아직 부족한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편, 상속세 재원 마련 등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삼성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가 중요하다. 삼성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의 머릿속 구상에 재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4년 5월 고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병상에 누운 이후 사실상 운전대를 잡은 이 부회장은 이미 굵직한 M&A를 단행한 전례가 있다. 2014년 11월 한화그룹에 석유화학과 방산 부문을 매각했고, 2015년에는 삼성SDI 케미칼 사업부와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을 롯데그룹에 팔았다. 2016년에는 미국 전장기업 하만을 80억달러에 인수했다. 재계 전문가들은 이 부회장이 저수익성 구조이거나 민원이 많은 사업 부문을 추가로 매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금융 계열사 또한 매각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전문가가 많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후 4시 54분쯤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로 이동하고 있다.

◇ 상속세부터 지배구조 개편까지 과제 산적… 삼성생명 팔까?

이건희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삼성전자 2억4927만3200주(지분율 4.18%), 삼성전자 우선주 61만9900주(0.08%), 삼성SDS 9701주(0.01%), 삼성물산 542만5733주(2.88%), 삼성생명 4151만9180주(20.76%) 등이다. 현재 가치(주식평가액)는 18조2000억원으로, 상속세만 1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상속세이기 때문에 연부연납제도를 활용할 것으로 추정된다. 연부연납은 연이자 1.8%를 적용해 신고·납부 때 6분의 1의 금액만 낸 뒤 나머지를 5년간 분할 납부하는 방식이다. 앞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연부연납을 활용했다.

상속세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이 추가 계열사 매각이다. 이 부회장은 가뜩이나 이익률이 높지 않거나 민원이 많은 사업을 매각 후보군에 올려놓을 때가 많았는데,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서라도 이 같은 산업군의 기업을 추가 매각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생명 등 그룹 금융 계열사다. 이건희 회장이 20%나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032830)을 팔면 많은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 삼성전자 자금팀, 삼성운용과 삼성증권 사장을 역임한 바 있는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은 2018년 한 기고문에서 사실상 삼성생명을 팔라고 주문했다.

그는 기고문에서 "삼성이 금융 부문을 아예 포기하면 순환출자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되고, 보험 계약자의 돈을 지배력 강화나 산업 부문 지원에 쓰려 한다는 의혹을 일거에 불식시키는 장점이 있다. 삼성이 금융 부문까지 매각함으로써 지분율에 연연하지 않고 전문경영자 집단으로서 삼성전자를 계속 키워나가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내외에 밝히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이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는 명확하다. 누가 사갈 것인가와 지배력 문제는 없을 것인가다"라고 썼다.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이 이를 가속할 가능성이 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005930)지분 가운데 총자산의 3%만 남겨두고 나머지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결국 삼성물산(028260)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해야 하는데,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취득하는 것도 부담이거니와 삼성생명만 별도로 지배력을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성생명 지분을 팔아 일부 현금화하고, 이를 삼성물산에 재투자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 여동생들과 ‘지분 맞교환’ 관심… 첨단기술기업 중심으로 빅딜 나설 듯

여동생들과의 기업 분할도 관전 포인트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각각 삼성물산 1045만주(5.55%), 삼성SDS 301만주(3.9%)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주식가치는 1조6000억원 남짓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호텔신라(008770)를 이끌고 있지만 아직 호텔신라 지분은 없다. 이서현 이사장은 삼성물산 패션부문과 제일기획 등을 이끌다가 현재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호텔신라는 현재 시가총액이 3조원 정도로, 지분 맞교환이 일어난다면 이부진 사장이 5.3%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이서현 이사장 또한 지분 규모는 이부진 사장과 똑같기 때문에 일부 사업 부문을 넘겨받을 수 있다. 단 이 이사장이 이미 경영에서 물러났다는 이유로 홍라희 여사의 뒤를 이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홍라희 여사는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을 맡은 바 있다. 이 이사장 또한 2018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에서 물러난 이후 리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0년 고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 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과 함께 CES2010에 참석했다.

상속세나 여동생들과의 기업 분할과 별개로 저수익성 사업은 추가로 매각이 추진될 수도 있다. 건설이나 패션, 광고 등의 사업은 한때 매각 시도했거나 매각설이 끊이지 않는 업종이다. 재판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면 이 기업들에 대한 매각이 재검토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은 "이 부회장이 그룹 회장보다는 삼성전자의 회장을 하고 싶어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앞으로도 삼성전자와 IT 중심 경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부회장 또한 2017년 재판에서 "확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앞으로 그룹 회장이란 타이틀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이 관심을 갖는 영역은 반도체와 배터리 사업, 자동차 전장,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 등이다. 삼성그룹이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글로벌 M&A를 전개하지 않는 배경에 대해 재판으로 인한 불확실성을 꼽는 전문가들이 많은데, 실제로 재판이 마무리 국면에 들어선다면 M&A 또한 재개될 것이란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다. 첨단기술 분야의 기업이 M&A 후보군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M&A 스타일은 실용으로 분류된다"면서 "M&A를 할 경우 기존 사업군이 단숨에 선두권으로 뛰어오르는 등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한 기업을 인수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그저 그런 기업을 인수하기보다는 ‘빅딜’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