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투자해 세계 80여개국에 5000여명 지역전문가 파견
여상 출신 양향자 의원, 삼성전자 사내 기술대학에서 공부

글로벌 경영 학술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빠르게 성공한 핵심 비결로 ‘지역전문가 제도’를 꼽았다. 고(故)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시작된 이 제도는 아무 조건 없이 대리, 과장급 직원을 해외 80여개국으로 1~2년 정도 파견하는 인재 육성 프로그램이다.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익힌 ‘현지화된 삼성맨’을 양성하기 위한 제도였다. 이건희 회장은 초창기 지역 전문가로 파견되는 인력을 직접 챙길 정도로 큰 애착을 보였다.

지역전문가로 선발된 인원은 현지에 지내는 동안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익히고 사람들을 만났다. 회사 업무를 맡지 않지만 연봉과 함께 연간 1억5000만원에 이르는 체재비를 지원받았다.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이 그대로 반영됐다.

지난 2006년 두바이를 찾은 이건희 회장 모습.

제도 도입 당시에는 반대 의견이 많았다. 직원을 파견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파견됐던 직원이 퇴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해외에서 견문을 넓히고 온 직원들이 삼성이 아니라도 국내에서 일한다면 우리나라 경쟁력이 높아지지 않겠느냐며 밀어붙였다. 제도 초기 파견 국가는 주로 선진국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중국, 인도, 중동 등 신흥국 파견 비중을 크게 확대했다.

삼성이 세계 각국에 파견한 지역전문가는 5000여명, 여기에 투자한 돈은 1조원 이상이다. 삼성전자 인사담당 부사장을 역임한 원기찬 전 삼성카드 사장은 미국에서 지역전문가 1기 과정을 마쳤다.

인재 양성을 경영의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한 이건희 회장은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도 지시했다. 삼성은 이를 받아들여 공채의 학력 제한을 폐지했고, 연공 서열식 인사가 아닌 능력급제를 전격 시행했다.

이건희 회장은 또 고졸, 현장직 사원도 장기적인 가능성과 비전을 갖도록 사내대학을 설립하고 조기출퇴근제를 활용해 야간 대학에 진학할 경우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여당 최고위원을 지내고 있는 양향자 의원도 이건희 회장이 키운 대표적인 인재로 꼽힌다.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1985년 삼성전자 반도체 메모리설계실 연구보조원으로 입사한 그는 처음엔 반도체 도면을 만드는 단순 작업을 수행했지만,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메모리사업부 SRAM설계팀 책임연구원이 됐다. 1995년에는 삼성전자 사내 대학인 기술대학에서 반도체공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2008년에는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전기전자컴퓨터 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2014년 여상 출신으로는 처음 삼성전자 상무로 승진했다.

지난 2011년 반도체 생산라인 기공식을 찾은 이건희 회장.

이건희 회장은 평소 우리 사회와 기업이 여성 인력을 잘 활용하면 큰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삼성은 우수한 여성인력 육성을 위해 1992년 4월 여성전문직제를 도입했고, 이듬해부터 대규모 여성 채용을 본격화했다. 1995년 7월 인사 개혁을 계기로 여사원의 활동 영역을 크게 넓혔고, 최초로 여성 지역전문가 5명을 선발했다.

1970년말 이건희 회장이 중앙일보 이사를 지낸 시절엔 "왜 편집국에 여기자가 없냐"며 혀를 차기도 했다. 1995년 2월 LA 방문 중 이건희 회장은 여직원용 유니폼 디자인 보고를 받고는 "남녀 구별 없이 뽑아놓고 무슨 유니폼인가. 남녀에 차별을 두지 않겠다고 한 건 내가 사회에 약속한 것이다. 일도 남자와 똑같이 주고 승진도 똑같게 하라. 여자라고 배척하면 내가 책임을 묻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은 기혼 여성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직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을 강조했는데, 이를 위해 서울과 전국 주요 사업장에 기혼 여성을 위한 어린이집을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