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이 별세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회장직 승진이라는 마지막 승계 작업이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건희 회장이 병석에 누운 뒤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삼성SDS와 제일모직(현 삼성물산)을 상장시키는 등 지배구조 개편에 본격적으로 나서는가 했으나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현재는 전면 중단된 상황이다.

이건희 회장 별세로 본격적인 ‘이재용의 삼성’이 개막하는 만큼 이재용식(式) 사업구조 재편과 경영쇄신 작업도 시작될 전망이다. 가장 큰 과제는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 주식에 대한 상속과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다. 동시에 국정농단과 경영권 승계 과정의 불법 혐의에 대한 재판이 당장의 큰 과제다.

이 부회장은 부친 고(故) 이건희 회장이 지난 2014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사업구조 재편과 경영쇄신 작업 등 그룹의 주요 현안을 책임지며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1년 후 부친이 맡아온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물려받아 삼성의 3세 경영자로서 공식 승계 작업을 진행해왔다. 지난 2018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 지정을 통해 공식적인 총수에 올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건희 회장의 유고 기간 경영 전면에 나선 이 부회장은 굵직한 인수합병을 단행하고 실적이 나쁜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 실리 위주의 그룹 개편을 주도했다. 삼성의 방산·화학 계열사 매각, 미국 전장기업 하만 인수 등이 대표적이다. 사업구조 재편을 완성해 나가는 가운데 바이오,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미래 산업을 발굴해 반도체 이후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

이 부회장은 코로나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 국내외 비즈니스 현장을 찾아 해답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이 부회장은 그동안 쌓아놓은 국내외 정치·경제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팀 쿡 애플 CEO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등을 두루 만나고 있다.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 부회장은 상무보, 사장을 맡은 뒤 2013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임원으로 10년 넘게 실무를 챙긴 만큼 제품이나 시장 상황에 대한 배경 지식이 상당하다는 평가다. 실리와 합리성을 중시하는 이 부회장의 스타일을 고려하면 다방면에서 삼성의 변화가 예상된다는 게 재계 인사들의 관측이다.

이 부회장은 글로벌 기업에 맞는 합리적 조직문화 구축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주요 사업장을 대학 캠퍼스처럼 꾸미고 조직 문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가감 없이 듣고 있다. 최근에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유능한 여성 인재가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차세대 리더로 성장하고,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조직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8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여성 임직원들과 이야기하는 모습.

이건희 회장이 보유하던 삼성그룹 주식을 어떻게 처리할 지에도 재계 안팎의 관심이 쏠린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2억4927만3200주(지분율 4.18%), 삼성전자우선주 61만9900주(0.08%), 삼성SDS 9701주(0.01%), 삼성물산 542만5733주(2.86%), 삼성생명 4151만9180주(20.76%) 등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 총수 일가는 이 주식을 상속받기 위해 최대 20조원의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데, 상속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삼성의 지배구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걸 분명히 약속드린다"며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언급했었다. 경영권을 승계하는 기존 지배구조 방식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여당이 삼성의 지배구조를 겨냥해 추진하고 있는 보험업법 개정안도 변수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총 자산의 3% 외에는 모두 매각해야 한다.

한편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불법·편법적 방식으로 합병해 경영권을 승계받았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국정농단 뇌물혐의 파기 환송심은 26일부터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