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주인들은 보증금을 내려줄 맘은 있어도 월세를 내릴 마음은 없어요. 월세 물건도 별로 없으니, 들어오려는 사람은 가격을 따질 것 없이 입주하는 경우가 많죠."(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인근 A공인중개사)

"하남 교산 신도시 사전청약을 원하는 수요자가 몰리면서 안 그래도 오르는 전셋값에 기름을 부었죠. 아예 전세 물건이 하나도 없는 단지도 있습니다."(경기도 하남시 미사강변더샵리버포레 인근 B공인중개사)

새 임대차법이 시행되고 가을 이사철까지 겹치면서 전세금이 크게 오르는 가운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의 월세마저 오르고 있다. 전세 가격이 오르자 월세로 수요가 몰린데다 매물 자체가 줄어든 영향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1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통계 작성 이후 계속 전월 대비 감소세에 머물던 월세가 처음으로 상승세로 돌아섰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9월 전국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아파트와 단독주택, 연립주택 등을 포함한 전국 종합월세가격지수는 0.01% 올랐다. 이 지수가 오른 것은 2015년 7월에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지난달 전국 아파트 월세가격지수는 전월보다 0.20% 상승했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월세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다. 수도권은 전세 물건 부족 영향이 크고, 지방도 전셋값과 동반해 월세가 상승했다"고 했다.

월세뿐 아니라 9월 전국 아파트의 반전세(준전세) 가격지수도 전달보다 0.51% 올랐다. 보증금이 240개월치 월세보다 많을 경우 이를 반전세로 분류한다. 예를 들어 전세금이 2억원일 때 월세 계약의 경우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95만원, 반전세 계약은 보증금 1억5000만원에 월세 25만원을 내는 식이다.

특히 경기도 하남시의 아파트 월세통합가격지수는 지난달 전국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경기 하남시의 아파트 월세는 지난달 1.76% 급등했다. 경기 전체 아파트 월세 상승률(0.33%)보다 5배 이상으로 높은 상승률이다. 이는 3기 신도시 청약을 받기 위해 하남 전셋집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여파다.

경기도 하남시 선동의 ‘미사강변더샵리버포레’ 전용면적 89.7㎡(22층)는 9월 초에 보증금 3억9000만원, 월세 32만원에 계약됐지만, 일주일 뒤 같은 평수 21층짜리 주택은 보증금 4억1000만원, 월세 46만원에 계약됐다. 일주일 만에 보증금과 월세가 동반 상승한 셈이다.

미사강변더샵리버포레 인근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현재는 단지 내 전월세 물건이 한 개도 없다"면서 "최근 시세로 따지면 전용면적 89.7㎡ 기준 보증금 4억원에 월세 50만~60만원 정도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임대차 3법 이전에는 전용면적 89.7㎡ 전셋값이 5억~6억원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2년 뒤 가격을 미리 올리면서 전셋값이 8억원까지 올랐다"고 덧붙였다.

서울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월세통합가격지수는 전달보다 0.14% 상승했다. 강동구가 0.37%로 가장 많이 올랐고 마포구가 0.29%로 그 뒤를 이었다. 학군지로 꼽혀 전월세 수요가 높은 서울 강남구의 월세 가격은 0.20% 올랐다.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은마 아파트에 지금 반전세 물건이 두 개뿐"이라고 했다. 이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76㎡(31평)짜리는 보증금 4억8000에 월세 100만원에 나왔다. 전세로 환산해보면 7억8000만원 선이다. 또 다른 물건은 보증금 1억5000만원에 월세 300만원에 나왔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한동안 월세가 꺾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전국 종합주택 월세수급동향지수는 101.2를 기록해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5년 7월 이후 처음으로 기준선인 100을 넘겼다. 수급동향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수치가 높아질수록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저금리인데다 내년부터 세금이 오르면서 집주인들은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호하는 것"이라면서 "여기에 임대사업자 규제를 강화하고 혜택을 없앤 결과로 전월세 물량이 잠기면서 임대인 우위 시장까지 됐다"고 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전세에 비해 월세 물량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전반적인 임대차 시장 물량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전월세 물량이 줄어드는데 가격은 상승하면서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옮기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