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하원 450페이지 反독점 보고서에 실리콘밸리 '충격'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지배력 남용" 초당적 공감대
50년 간 독점 눈감던 美, 정책목표 '소비자 이익→시장구조 개선'
누가 당선돼도 규제강화 불가피…IT기업들, 물밑 로비전 치열

미 하원 법사위원회 반(反)독점 분과위원회가 6일(현지시각) 발표한 45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에 미국 실리콘밸리가 충격에 휩싸였다. 독점 기업으로 지목당한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 사업 확대는 당분간 올스톱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애플의 팀 쿡,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

이날 로이터는 반(反)독점법 전문가들과 의회 보좌진을 인용해 이 보고서가 미국 민주당 정권이 GAFA의 시장 지배력에 어떻게 제동을 걸 것인지를 보여주는 로드맵이라고 전했다. 위원회를 이끄는 민주당 데이비드 시실린 하원의원은 "바이든 행정부는 이 보고서에 수용적일 것"이라며 "바이든은 경제력 집중이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분과위는 16개월 간의 조사 끝에 "GAFA가 시장지배력을 남용했다"는 결론을 담은 보고서를 전날 공개했다. 분과위는 이들 기업이 이미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와 유사한 사업을 통제하거나 그 안에서 경쟁해선 안되며 구조적인 분할을 유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구글이 유튜브를 운영하고,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소유하는 것도 향후 규제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추측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IT기업을 어떻게 규제할 지를 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보고서는 민주당 주도로 작성 되었지만 "GAFA가 독점력을 남용했다"는 결론 만큼은 분과위의 컨센서스다. 분과위는 조만간 이 보고서를 정식 보고서로 채택하고 권고사항을 내년에 입법화 한다는 계획이다. '기업 해체'와 같은 과격한 권고가 담기지 않은 이상 양당 합의가 어렵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보고서가 1990년대 미국 정부가 마이크로소프트(MS)를 반독점법 위반 행위로 고소한 이후 세계 최대 기술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도라고 전했다. 1998년 클린턴 행정부는 MS가 PC용 운영체제(OS)인 윈도와 인터넷 브라우저 익스플로러를 결합 판매하는 건 반독점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정부 주장을 받아들여 MS를 2개 회사로 분할하라고 판결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었다.

미 법무부에서 반독점 규제를 담당하는 고위 관료였던 진 킴멜만 변호사는 "초당적인 보고서가 아니라고 해도 이 보고서는 더 경쟁적인 시장 환경을 만드는 데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며 "1980년대 미국 통신업계를 독점했던 AT&T가 쪼개진 것도 의회의 정책적 지지를 받아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 독점에 눈감았던 美, 50년 만에 경쟁 정책 대전환 예고

이번 보고서는 50여년 간 독점에 관용했던 미국 경쟁 정책의 대대적인 변화를 시사 한다. 분과위가 보고서에서 시장지배력을 확대하는 데 악용됐다고 지적한 인수합병(M&A) 가운데 페이스북의 2012년 왓츠앱 인수나 구글의 2007년 온라인 광고사 더블클릭 인수 등은 당시 미 규제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았다.

미국은 1970년 초반까지만 해도 전세계에서 독점에 가장 혹독한 국가였다. 반독점의 대헌장이라고 불리는 셔먼법을 1890년 제정한 뒤 독점 행위를 한다고 판단되는 기업은 강제 분할도 서슴지 않았다. 미국 석유시장 88%를 장악했던 스탠더드 오일과 담배시장 90%를 점유했던 아메리칸 토바코가 1900년대 초반 강제로 쪼개졌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전세계 제조업에서 유럽과 일본이 약진하면서 국제시장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정부의 가장 큰 숙제가 됐다. 규제당국은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독점에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당시 소비자 이익 극대화를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시카고 학파의 부상이 미 행정부의 정책 변화를 학문적으로 뒷받침 했다.

이런 환경에 힘입어 애플,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을 비롯한 IT기업은 빠르게 시장지배력을 확대했다. MS까지 합한 5개 기업은 현재 미국 증시 시가총액의 20%를 차지한다. 반독점법 전문가들은 셔먼법이 제정된 1800년대 후반보다 지금 일부 산업의 집중도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이 미국에서 받고 있는 조사들.

미 의회가 IT기업의 반독점 행위에 날을 세우는 가운데 미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 각 주(州)의 검찰들은 작년부터 GAFA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진행했으며 일부 기업에 대해선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학문적으로는 경제력 집중에 극렬히 반대하는 신브랜다이스 학파(Neo-Brandeisians)가 급부상 하고 있다. 지난 1932~1937년 미 연방대법관을 지낸 루이스 브랜다이즈에게 영향을 받은 신브랜다이스 학파는 소비자 이익이 아니라 시장구조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점으로 소비자 후생이 높아지더라도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면 규제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소비자 이익을 증대시키지 않았냐"며 정부에 항변하던 GAFA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IT 기업을 대상으로 한 규제를 트럼프 행정부보다 더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든을 향해 아마존을 비롯한 거대 IT기업이 돈과 인맥을 활용해 최대한 가까이 다가서려고 하는 것도 이런 위기감 때문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