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현대경제연구원은 ‘팬덤 경제’를 2020년 소비 트렌드를 이끌 10대 키워드 중 하나로 꼽았다. 최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방탄소년단(BTS)의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 소식은 팬덤 경제의 힘을 실감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였다. 팬덤이 등장하는 곳엔 어김없이 돈이 돌고, 그 시장을 선점하려는 기업들의 마케팅 경쟁은 날로 치열해진다. ‘움직이는 중견기업’ 아이돌 그룹과 팬덤의 경제 효과를 분석하는 학계 연구가 넘쳐나는 건 당연하다. ‘이코노미조선’이 팬덤 경제를 커버 스토리로 다루는 것도 당연하다. [편집자 주]

BTS 없던 시절 30억 단독 투자
자본잠식에도 믿고 후속 투자
빅히트는 원금 27배 회수로 화답

박성호. 공인회계사, 전 삼일회계법인, 전 동서증권 기업금융팀, 전 현대투신증권 자산운용팀장

영원히 푸를 것 같은 ‘아미’라는 초원 위에 ‘방탄소년단(BTS)’이라는 그림 같은 집을 지은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이하 빅히트)가 10월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한다. 이 회사 자체로도 증시가 들썩이기에 충분한데, SK바이오팜에서 카카오게임즈로 이어진 공모주 청약 광풍의 기억은 주식시장 참여자에게 ‘빅히트 투자 열기는 얼마나 더 뜨거울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강력한 팬덤이 큰손으로 등판해 주가 상승 랠리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추측은 빅히트 상장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더 키우는 요소다.

관심이 너무 쏠리다 보니 주식시장에는 온갖 풍문과 추측이 난무한다. 빅히트의 적정 기업 가치를 예상하는 시선들이 대표적이다. 팬덤 위력으로 볼 때 주가가 50만원은 가뿐히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가 하면, 상장 직후 거품이 꺼져 간신히 10만원대를 유지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모두 개인 의견일 뿐이다. 견해차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유안타증권은 빅히트 목표 주가를 29만6000원으로 제시한 데 반해 하나금융투자는 38만원을 불렀다. 이러면 개인 투자자들은 ‘어느 증권사가 정확한 편인가’를 두고 또 싸운다.

‘이코노미조선’은 이런 어수선한 상황일수록 빅히트 경쟁력의 근원(根源)을 기억하는 사람과 대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9월 15일 오후 박성호 SV인베스트먼트(이하 SV) 대표에게 화상 인터뷰를 요청했다. 박 대표는 빅히트라는 회사 이름조차 생소하던 2011~2012년 빅히트에 총 40억원을 초기 투자해 BTS 데뷔에 일조한 인물이다. SV는 2018년 1088억원을 회수하며 원금 대비 27.2배의 이익을 거뒀다. 박 대표는 "빅히트는 우리가 톱다운(top down) 방식으로 찾아내 투자한 사례"라며 "여러 가지 위험 요소가 있었으나 ‘방시혁’이라는 사람을 믿고 베팅했다"라고 했다.

빅히트 투자에 이르기까지 의사결정 과정이 궁금하다.
"SV를 2006년에 설립했고 빅히트에 처음 투자한 해가 2011년이다. 그때까지 SV는 업계 100위권의 작은 투자사였다. 대형사로 도약하기 위해서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먹힐 만한 투자 대상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좋은 기업을 찾으려고 해외 출장을 정말 많이 다녔다. 그때 외국에서 한국 산업을 평가할 때 공통적으로 좋게 봐주는 분야가 엔터테인먼트(이하 엔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 연예기획사의 스타 육성 시스템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보더라. 자연스레 SM, YG, JYP 다음 타자를 찾는 작업에 착수했다. 마침 내부 심사역 가운데 김영환 부사장이 엔터 투자 경험이 있고 업계 사정에 밝기도 했다."

크고 작은 기획사가 많았을 것 같은데 빅히트는 남다른 면이 있었나.
"당시 대략 20개 정도의 기업을 본 것 같다. 투자 대상 후보로 나온 기획사는 거의 다 만났다. 벤처캐피털(VC)은 외부에서 온 제안서를 검토해 투자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정말 괜찮은 엔터사를 발굴하고 싶어 톱다운으로 직접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찾은 게 빅히트다. JYP에서 숱한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 방시혁의 존재가 결정적인 투자 이유다. 방 의장은 프로듀싱 능력만 뛰어난 게 아니라 경영자로서 책임감도 투철했다. 빅히트 기업 가치를 90억원으로 보고 30억원을 단독 투자(시리즈A)했다. 지금은 30억원 투자가 큰 건이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엄청난 모험이었다."

2011년이면 BTS도 없을 때 아닌가. 내부에 반대 의견이 많았을 것 같은데.
"물론이다. 투자심의위원회에서 '개인(방시혁) 능력이 좋다고 회사가 꼭 성공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 소속 가수들이 잘 안되면 어떡할 것이냐'는 우려가 나왔다. 그런데 리스크 없는 투자가 어디 있겠나. 성공 가능성에 무게를 더 두고 진행했다."

믿고 투자한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다.
"사실 투자하자마자 빅히트가 잘된 건 아니다. 30억원을 투자하고 1년 후 빅히트는 자본잠식 상태가 됐다. 현금이 동났다는 말이다. BTS에 앞서 선보였던 아이돌 그룹 성과가 신통치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첫 투자를 할 때부터 후속 투자까지 염두에 뒀었다. 기왕 한배를 탈 거라면 시리즈A 다음 단계까지도 책임을 져야 VC로서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봤다. 방 의장에게는 시간과 돈이 더 필요한 것일 뿐 능력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LP(모태펀드·기관·기업 등의 유한책임조합원)의 동의를 구한 뒤 VC 세 곳과 함께 총 40억원(각각 10억원씩)을 투자(시리즈B)했다."

두 번의 투자가 BTS 탄생으로 이어졌다.
"뿌듯한 마음이 든다. 두 번째 투자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빅히트는 없어졌을 테니 말이다. 그랬다면 BTS도 2013년에 데뷔하지 못했을 거다. 물론 그때의 우리가 지금 수준의 BTS를 예상했던 건 아니다(웃음). 어쨌든 시리즈B 이후에는 방 의장도 사생결단의 자세로 일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으니까. 우리 쪽에서는 빅히트 심사역이던 김중동 상무가 거의 매일 빅히트로 출근하며 함께 살다시피 했다. 주말에도 회의하고 해외에도 따라갔다. VC가 제공하는 형식적인 지원이 아니고, 진짜 이 회사를 내 자식 키우듯 돌본다는 태도로 임했다. 빅히트 임직원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로 가깝게 지내며 도왔다."

그런 노력이 원금의 27배 회수로 돌아온 것 아닌가.
"사실 더 벌 수 있었는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 2018년에 최종 엑시트(exit·투자 회수)했다. 우린 정리하기 싫었다. BTS가 점점 잘나가는데, 빅히트 가치도 점점 올라가는데, 굳이 팔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LP 측에서 펀드 만기를 더 연장해주지 않았다. 만약 지금까지 들고 있었다면 수익률이 어땠을까. BTS의 위상을 보면 답이 나오지 않나. 안타깝지만 그래도 멋진 투자였다."

☞Company Info

SV인베스트먼트
- 2020년 8월 기준 총운용 자산: 1조357억원
- 2020년 8월 기준 투자 기업 수: 220개
- 2019년 청산 펀드 수익률: 17.22%
- 전문 분야: 바이오·헬스케어, 소비재·서비스, 정보통신기술 모바일 서비스, 부품·소재·장비
- 코로나19 이후 관심 산업: 사스(SaaS), 바이오·헬스케어, 뉴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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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 팬덤의 진화] ①팬덤 경제의 부상

[아미, 팬덤의 진화]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