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경찰간부 A씨는 이번 추석연휴 일체 외출 일정을 잡지 않고 집에만 있기로 했다. 10월 5일부터 접수를 시작하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지원용 자기소개서 작성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A씨는 "평소 근무가 바빠 자소서 작성과 지원서류를 준비하기 어려웠는데, 연휴 5일동안 최종 점검을 할 계획"이라며 "서로 지원 계획에 대해 함구하고는 있지만 35세 이하 젊은 경찰간부들 중 로스클 진학을 준비하는 사람이 예전보다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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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른 경찰 권한 확대로 경찰 출신 법조인 몸값이 크게 뛰면서 로스쿨로 진학하려는 경찰들이 늘고 있다. 승진 적체가 심한 경찰 조직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데다, 향후 경찰 경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점 등이 이유로 꼽힌다.

29일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이 전국 로스쿨을 대상으로 정보공개를 청구해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경찰대 출신 로스쿨 입학자 수는 59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로스쿨 초창기 시절 한 해 경찰대 출신 입학자수는 5명 수준에서 10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지난해 입학자수(27명)와 비교해도 1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경찰대는 엘리트 경찰간부 양성을 위해 법률에 의해 설치된 특수대학이다. 4년간 무상으로 교육을 받고 졸업시 경위로 임관된다. 남자의 경우 군복무 의무가 경찰 근무로 대체되는 혜택도 있다.

그런데 최근 경찰대 출신 로스쿨 입학자가 급증하면서 일각에서는 경찰대가 ‘법조인 우회로’로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로스쿨을 가려면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이른바 ‘스카이(SKY)’로 지칭되는 명문대를 가는 대신 경찰대를 가는게 유리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경찰대는 한 학년 정원이 100명 수준이다. 단순 수치로 따져봐도 한해 경찰대 입학생의 절반이 넘는 졸업자가 로스쿨로 진학한 셈이다.

2018년 충남 아산 경찰대학에서 여린 경찰대학생·간부후보생 합동 임용식에서 신임 경위들이 인권 다짐 선서를 하고 있다(기사와는 무관).

경찰 조직의 엘리트로 양성되는 경찰대 졸업자들이 앞다퉈 로스쿨로 진학하는 이유는 최근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향후 경찰의 권한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됐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대형로펌이나 대기업 등에서도 경찰 출신 법조인에 대한 채용 수요가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경찰 내부의 인사 적체 문제도 이유로 꼽힌다. 경찰 내부 인사 적체로 한정된 승진 기회 때문에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로스쿨행을 고민하는 경찰 간부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12만명의 경찰 전체 인원 중 총경(4급) 이상은 0.5%인 600여명에 불과하다. 일반행정부처에서 4급(서기관) 이상 비율이 6.5% 수준인 점과 비교하면 경찰 내부적으로 승진 적체가 심각한 편이다.

한 경찰간부는 "경찰대를 나와도 총경(경찰서장)을 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총경 직전 계급인 경정을 달아도 계급정년이 있어 총경 승진을 못할 경우 옷을 벗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변호사 자격증을 따두면 내부 승진에도 유리하고, 설령 승진에서 탈락해도 대형로펌이나 대기업으로 갈 수 있어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민갑룡 전 경찰청장이 퇴임 직전 "근무에 지장만 주지 않으면 휴직없이 로스쿨을 다니는 것에 대해 허용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경찰 간부들의 로스쿨 지원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 경찰 관계자는 "야간 당직 근무를 비번제로 서는 부서로 가면 격일로 휴무를 할 수 있어 로스쿨 학업 병행이 가능하다"며 "경력 단절 없이 로스쿨에 다닐 수 있어 지원을 고민하는 경찰 간부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