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업계의 영역으로 여겨진 데이터센터 시장에 국내 건설사들이 경쟁적으로 진입하고 있어 주목된다. 데이터센터(IDC)는 컴퓨터 시스템과 통신장비, 저장장치인 스토리지 등이 설치된 시설로 빅데이터를 저장하고 유통시키는 핵심 인프라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네이버, 카카오 등이 데이터센터를 잇따라 확대하고 있다.

2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GS건설은 국내 건설사 중 처음으로 데이터센터 시장에 진출했다. 이 회사는 최근 안양 데이터센터 도급 계약을 공시하면서 데이터센터 개발을 공식화했다.

GS건설은 영국계 사모펀드 액티스, 파빌리온 자산운용과 ‘에포크PFV(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roject Financing Vehicle)’를 설립해 데이터센터를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에 매입한 대지면적 약 6644㎡짜리 부지에 하이퍼스케일(10만대 이상 서버를 운영)급 인터넷 데이터센터를 조성한다. 올해 연말에 착수해 2023년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사업비 규모는 3800억원으로 이 중 액티스가 1200억원, GS건설이 300억원을 각각 투입하고 나머지는 PF대출로 충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GS건설의 데이터센터 구축 사업을 두고 단순 시공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실제 GS건설도 앞선 공시에서 직접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증권가에서도 "향후 운영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프로젝트로, GS건설이 데이터센터 디벨로퍼로서의 진출했다"고 보고 있다. 디벨로퍼란 단순히 건축공사만 하는 게 아니라 토지 매입, 기획, 컨셉, 시공, 운용 및 관리까지 부동산 개발의 전체 과정을 총괄하는 것을 의미한다.

네이버 제2데이터센터 ‘각 세종’의 조감도.

효성중공업, HDC현대산업개발, SK건설, 대림산업 등도 데이터센터 시장 진출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효성중공업의 자회사 에브리쇼는 지난달 318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면서 데이터센터 신사업 진출 계획을 밝혔다. 효성그룹에 따르면 효성중공업이 1272억원, 데이터센터 사업 합작투자사가 1908억원을 에브리쇼에 투입해 데이터센터 구축 및 관련 서비스업을 추진한다.

SK건설은 SK그룹의 시스템통합업체 SKC&C와 함께 데이터센터 건립 사업에 나선다. 이 회사는 세계 최대 건설자재 및 공구 제작 전문기업인 힐티(Hilti)와 데이터센터, 반도체 플랜트, 전기차 배터리 플랜트 등 첨단 산업시설의 모듈 제작에 사용될 건설자재 및 모듈 공법을 개발 중이다. SK건설은 지난 7월 조직개편을 하면서 하이테크사업부문 내 ‘데이터센터사업 그룹’을 신설했다. 단순 도급 형태가 아닌 디벨로퍼로서 데이터센터 구축한다는 게 장기 목표다.

HDC현대산업개발도 NHN과 협약을 맺고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건립에 나섰다. 김해 부원동 271 일원 약 6만6350㎡ 부지를 공동으로 개발해 이 중 1만㎡의 부지에 5000억원을 들여 ‘하이퍼스케일급 도심형 친환경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인재 양성을 위한 R&D센터, 스마트홈 시범단지 등도 조성하며, 사업 기간은 2022년까지다. HDC현산이 단순 시공을 넘어 디벨로퍼로서 참여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회사 측은 "추후 운영 및 투자 방식에 대해서는 NHN과 논의해 가야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대림산업도 올해 건설계열사 삼호와 고려개발이 합병한 대림건설을 통해 데이터센터 등 신시장 개척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그 밖에도 다양한 디벨로퍼와 자산운용사들이 데이터센터 구축 프로젝트를 개발 중이다.

신사업 진출에 목이 말라있는 건설업계가 데이터센터 시장에 잇따라 진출하는 데는 ‘돈이 된다’는 판단뿐만 아니라 데이터센터 구축에서 부지 확보와 전력공급 방안 도출, 민원 등 주요 난제 해결에 강점이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데이터센터는 부지 확보뿐만 아니라 전력·공조 등의 설비가 중요한 건축물"이라면서 "에너지 절감 기술과 건설 부문의 시공경험이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서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센터에는 랙당 40~60개의 서버가 배치되며 25도 내외의 온도와 50% 내외의 습도가 늘 유지돼야 한다. 이를 위해 데이터센터는 공조, 전기, 배관설비가 중요한 시설이라는 게 건설업계의 설명이다. 또 비대면 서비스 증가로 데이터센터 수요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고 이에 따른 사업적 가치도 높다고 본 것이다.

시장에서는 기존 통신사들이 데이터센터를 설비적 관점으로 인식해왔으나 신규 진출하는 디벨로퍼, 건설사, 운용사들은 이윤창출이 가능한 '부동산'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부지와 건물까지 확보한 뒤 재임대(마스터리스·Master Lease)를 하거나 설비까지 구축해 글로벌 클라우드 사업자와 임대차 계약을 맺는 형태로도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재승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데이터센터의 점유율은 60%가 통신사, 30%가 시스템통합업체(SI)로 IT산업이 잠식하던 시장이었으나, 이런 통신사 위주의 데이터센터(IDC) 밸류체인이 디벨로퍼, 건설사, 운용사, 사모펀드 등 다양한 주체가 협력 개발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데이터센터의 부동산적 개념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반적인 부동산 사업과는 차이가 있고 투입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신사업 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조기에 내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백재승 애널리스트는 "데이터센터는 선매각이 통용되는 물류센터나 지식산업센터와 달리 구축 후 운영사업까지 참여해 가치를 창출해야하는 사업이고, 특수자산이기 때문에 담보인정비율(LTV)이 낮아 큰 모험자본이 요구되고 설비투자비도 일반상업용 투자 비용의 4배 이상이라는 점에서 다른 부동산과는 차이가 있다"면서 "다수가 높은 수익성을 기대하며 이 시장에 진출하고 있고 있으나 결국 소수만이 성공할 수 있는 비즈니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