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이후 열린 금통위원 간담회, 올해 계획 없어
총재 간담회도 유튜브로 하는데… 한은 "코로나 때문"
시장선 "금통위, 코로나 핑계삼아 불통 택했다" 비판

올해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의 육성(肉聲)을 단 한 차례도 듣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우리나라 통화정책을 좌우하는 금통위원들의 간담회가 '코로나19'를 이유로 열리지 않고 있어서다. 한은 금통위는 2005년 이후 매년 간담회를 가져왔고, 2017년부터는 임명직 금통위원 5인이 개별 강연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시장에 공개해왔다.

이주열 총재의 간담회를 비롯해 비대면 소통을 여느 기관보다 활발히 했던 한은이 유독 금통위원 간담회 만큼은 예외로 둔 게 석연치 않다는 뒷말도 나온다. 코로나발(發) 경제충격으로 소통이 절실한 시기에 코로나19를 핑계로 불통을 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더군다나 신임 금통위원이 3인은 임명 후 5개월이 되도록 침묵하면서 한은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소극적으로 후퇴했다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지난 4월 21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신임 금통위원 취임식. 왼쪽부터 윤면식 전 부총재, 서영경 위원, 주상영 위원, 이주열 총재, 조윤제 위원, 고승범 위원, 임지원 위원.

28일 한은 및 금융시장 등에 따르면 한은은 아직도 올해 금통위원 간담회 개최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에는 3월과 5월, 7월, 9월, 11월 등 총 다섯 차례 간담회가 열렸는데 올해는 9월 말에 이르도록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9월 말이면 네 명의 금통위원은 간담회를 가졌어야 하는 시기인 셈이다. 올해가 끝날 때까지 석 달 밖에 남지 않았지만 한은은 금통위 간담회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금통위원간 의견이 엇갈려 합의가 쉽지 않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복수의 한은 관계자들은 "금통위원 간담회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관련된 논의가 진행된 적이 없다"고 했다.

한은이 간담회 형식으로 금통위의 소통을 시작한 건 2005년부터다. '7인의 현자'로 불리는 금통위원 중 임명직 5인의 개별 간담회는 2017년 이후 지난해까지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열렸다. 당시 '불통' 논란이 제기되자 한은은 국내 최고 이코노미스트로 꼽히는 금통위원의 견해를 강연 형식으로 시장에 공개했다.

지난해까지 금통위원 간담회는 시장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한은의 주요 이벤트 중 하나였다. 더불어 개별 금통위원들에게도 식견을 뽐낼 장(場)으로 평가됐다. 금통위원 최초로 연임을 한 관(官)출신 고승범 위원은 지난해 과도한 신용공급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으며, 임기를 이어가고 있는 임지원 위원은 지난해 한국의 통화정책이 선진국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짚어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건 출신의 차별화된 시각을 보여줬다.

이외에 퇴임한 조동철 전 위원은 한은의 물가전망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신인석 전 위원은 디플레이션이 통화정책에 미칠 영향에 우려를 전했다. 또 이일형 전 위원은 부동산 가격을 비롯한 실물자산을 중심으로 금융불균형을 경고했다. 이처럼 금통위원들의 견해가 공개적으로 드러나면서 한 때는 '이제 실력없는 낙하산은 금통위원 하기 어렵겠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한 금융기관의 고위 관계자는 "지난 금통위가 매(통화긴축 선호)와 비둘기(통화완화 선호)의 균형을 이뤘다는 점이 간담회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다. 한편으로 한은의 통화정책에 신뢰성을 더하는 데 도움이 된 측면도 있다"고 했다.

금통위원 간담회 개최가 올해 한 차례도 열리지 않은 공식적인 이유는 '코로나19로 대면 소통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은은 이주열 총재의 통화정책방향 설명회를 비롯해 대부분의 행사를 온라인으로 빠짐없이 진행하고 있다. 유튜브(YouTube)를 활용한 소통 시스템을 여타 정부부처·기관 중 가장 먼저 도입한 기관도 한은이었다. 금통위원 간담회만 코로나19를 핑계 삼아 열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는 배경이다. 특히나 올해 4월 조윤제, 서영경, 주상영 위원 등 신임 금통위원 3인이 새롭게 합류하면서, 금통위에 대한 관심이 유독 컸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재확산을 거듭하고 있는 만큼 시장에서는 금통위의 소통이 예전보다 더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온라인을 활용해 경제상황에 대한 소통이 오히려 더 확대되는 분위기다. 미 연준(Fed)은 그간 비공개로 열렸던 연례 행사 ‘잭슨홀 미팅’을 유튜브로 생중계하면서 대중에 공개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열린 이 행사에서 '평균물가목표제' 채택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연준이 학계와 노동조합, 교육계 인사 등을 초청해 진행하는 ‘페드 리슨스(Fed Listens)'도 올해 화상회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국내 증권사의 한 채권 연구원은 "지난 4월 임명된 3인의 금통위원은 익명으로 나오는 의사록을 제외하고 어떤 견해를 가지고 통화정책을 고민하는지 알게 될 기회가 전혀 없다"며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통화정책 당국과 시장의 소통은 더욱 강화돼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