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정통부 유전자 가위 명암 토론회
AI로 정확성 높인 유전자가위… "만성질환·불치병 없앤다"
"실패시 부작용 심각, 윤리적·사회적 문제 가능성도 고려해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3일 과학기술공제회관에서 ‘제2회 내 삶을 바꾸는 과학기술 정례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국내 바이오 기술 전문가들이 참여해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질병치료 가능성과 안전성, 배아·생식세포적용 허용 여부, 농축산물 품질개량 등을 논의했다.

유전자가위는 변형된 핵산분해효소를 사용해 유전체 특정부위의 DNA를 제거·첨가·수정하는 기술을 말한다. 인간의 DNA를 하나의 문장으로 비유하자면, 그 문장에 생긴 ‘오타’나 문법적 오류를 인위적으로 수정하는 격이다.

지난 2002년 1세대 기술이 등장한 이후 20여년이 지난 현재 비교적 정확성이 높은 제3세대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이 널리 활용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2012년 딥러닝 기술의 개화와 함께 방대한 유전자 데이터 분석이 가능해지면서 유전자가위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반면 유전자가위 기술로 인한 이른바 ‘맞춤형 아기 논란’ 등의 윤리적 문제나 부작용 등도 논쟁의 여지를 만들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구조.

◇국내 연구진, AI로 유전자가위 기술 더 정교하게 발전

유전자가위 분야에서는 특히 우리나라 연구진이 지속해서 주목할만한 업적을 내고 있기도 하다. 2018년 연세대 의과대학 김형범 교수와 윤성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현 4차산업혁명위원장) 연구팀은 유전자가위를 만들 때 내비게이션처럼 활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연구에서 김형범 교수는 1만5000개의 가이드 리보핵산(RNA)을 가진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정보를 제공하고 윤성로 교수는 이를 토대로 딥러닝 기술을 적용한 AI를 만들었다.

이 AI는 유전자 교정 효과가 높은 유전자가위를 순서대로 나열해 연구진에게 제시한다. 실제 실험결과와 인공지능이 제시한 예측값의 상관관계 역시 0.87로 높게 나타났다. 지금까지 활용되던 유전자가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예측값이 평균 0.5~0.6에 불과했다. 예측값은 1에 가까울수록 정확도가 높다. 가이드RNA란 쉽게 말해 유전자를 자르고 교정하는 절단효소를 DNA 염기서열까지 옮기는 운반체이자 길라잡이다.

연구팀은 AI 시스템을 이용해 유전자가위의 연구환경을 바꿨다. 숙련된 연구자가 유전자가위 1개를 만드는데 평균 3~4일이 걸리고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데는 1~2주일이 더 걸린다. 전세계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유전자가위의 3분의 1은 아무런 기능이 없을 정도다. 동·식물 연구나 질병 치료가 목적인 유전자가위를 만들려면 이런 과정을 반복해 많은 연구비가 들고 오랜시간이 걸리는 게 단점이었다.

올해에도 김형범 교수 연구팀은 유전자가위의 안정성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AI 프로그램을 개발해냈다. 연구팀은 다양한 염기교정 유전자가위를 만든 뒤 각각의 효율과 결과물의 빈도를 바탕으로 빅데이터를 구축해 이를 딥러닝 기법으로 분석, '염기교정 결과 예측 프로그램'(DeepBaseEditor)을 개발했다.

유전자가위의 효율예측 기술 도식화.

연구팀은 이 프로그램을 적용해 표적 염기가 두 개 이상 있는 '점 돌연변이' 유전질환 중 4274개의 유전질환은 편집 효율이 5% 이상으로 높고 추가적인 염기 변이가 일어날 가능성도 작다고 예측했다. 김형범 교수는 "선별한 염기교정 유전자가위를 활용해 질환 동물모델 연구를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 7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Nature Biotechnology)'에 실리기도 했다.

◇아직은 의견 갈리는 의학계… "부작용·우생학적 차별 가능성도"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아직 유전자가위의 상용화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기도 한다. 또 유전자 조작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과 우려도 여전하다. 가령 유전자가위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미래상을 그린 영화 '가타카'(1997년)는 사람이 탄생하기 전부터 예상 수명과 질병, 성격 등을 판별해 사회적 지위가 부여되는 최첨단 유전공학과 우생학이 만연한 사회를 암울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유전자가위의 명과 암에 대해 심도있는 토의가 이뤄졌다. 우선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질병치료 가능성과 안정성 부문에서는 에이즈 등 유전 질환의 근본적 치료가 가능해질뿐 아니라 당뇨병 등 만성질환, 난치성 질환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있지만, 반대로 의도치 않은 DNA를 절단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며 부작용이 발생시 구조적으로 재교정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위험성이 크다는 의견이 대립했다.

배아·생식세포적용 허용 여부에 대해서도 유전 질환의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한 유일한 수단일 수 있으며, 유전병이 후대에 전해지는 고리 차단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긍정론이 있지만, 반대로 영화 '가타카'와 마찬가지로 우생학적·사회적 차별의 가능성, 실패한 배아 폐기에 따른 윤리적 문제 등 내포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국내 바이오업계 전문가는 "무엇보다 유전자가위 기술의 효과성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및 인체의 영향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며, 의료적 활용을 위해서는 현행 제도와의 정합성 검토 후 추가 규제를 고려해야 한다"며 "특히 유전자가위 기술을 배아·생식세포에 적용하는 문제는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각계각층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