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노조, 온건파 지도부 목소리 줄어
'일자리 지키기' 강조해온 현대차 노조도 임금 인상 요구

올 상반기까지만해도 예전보다 훨씬 유화적인 기조였던 완성차 노동조합들이 내년도 임금단체협상(임단협)에 들어가면서 강성으로 회귀하고 있다. 한국GM 노조는 파업 돌입 초읽기에 들어갔고,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도 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사측에 공격적인 요구안을 내놓는 상황이다. 르노삼성의 경우 민주노총 가입이 불발됐지만, 임금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 14일 한국GM 노조가 인천 부평 한국GM 사옥에서 카허 카젬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붙이고 있다.

한국GM 노조는 지난 14일 사측과 진행하던 임단협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14일에는 인천시 부평구 한국GM 부평공장에서 임원 퇴진을 요구하는 등 규탄대회를 열었고, 15일에도 부평공장을 중심으로 조합원들에게 파업 동참을 요청하는 가두집회를 가졌다. 파업 등 쟁의행위에 돌입하기 전 명분을 쌓기 위한 행동에 나선 것이다.

한국GM 노조는 이미 지난 4일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쟁의조정신청을 냈다. 노동쟁의 절차에 따라 중노위가 조정 중지 결정을 공식적으로 내리면, 그 때부터 쟁의권을 확보하게 된다.

쟁의조정신청은 노사 단체협상에서 합의에 실패할 경우, 노조가 파업 등 쟁의행위에 돌입하기 앞서 중노위에 조정을 신청하는 의무 절차다. 조정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쟁의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일종의 파업 예비 절차를 밟는 것으로 여겨진다. 쟁의조정신청을 한 뒤 10일 간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지난 1월 한국GM의 신차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발표에 김성갑 노조위원장이 카허 카젬 사장(오른쪽부터)과 함께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GM 노사는 2020년 임금단체협상에 돌입한 7월 22일부터 10차례 교섭을 진행 했는데, 의견 차이를 좁히는 데 실패했다. 이에 따라 한국GM 노조는 1~2일 조합원 7800명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진행해, 투표 참여자 7000명 중 89.5%(6200명)의 찬성을 얻어 파업에 돌입키로 했다. 한국GM 노조는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진행된 이번 투표에서 나온 높은 찬성률을 두고 "조합원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며 강경 노선을 재확인했다. 앞서 2년간 임금 동결, 복지 혜택 축소, 불확실한 미래 생산물량 배정 계획 등으로 쌓였던 조합원들의 불만이 이번 투표로 나타났다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그런데 이 같은 한국GM 노조의 강경론은 지난해 12월 당선된 김성갑 노조 위원장이 당선 이후 유화적인 기조를 취해해왔다는 것을 보면 이례적이라는 게 자동차 업계의 시각이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지난해까진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노사관계가 대립적·적대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올해는 상호 간 합의한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사가 힘을 모아 같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부평공장 초입에 가득 붙어 있던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 등 임원 퇴진 요구 플랭카드 등이 김 위원장 취임 이후 모두 철거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올 초 신차 트레일블레이저 발표회에 카젬 사장과 함께 등장하기도 했다.

한국GM 부평공장.

올해 임단협이 큰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미국 수출이 한동안 차질을 빚는 등의 문제로 한국GM 경영 실적은 충분히 개선되지 않았고, 구조조정이나 일감 배정 등의 이슈도 크지 않다.

이 때문에 자동차 업계에서는 "결국 노조 내부의 정치적인 역학 관계에 따라 김 위원장 등 노조 지도부가 강경론을 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국GM 노조 내부에서 김 위원장 온건론에 대한 불만이 쌓이면서, 이를 의식한 결과라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지난 4월 해를 넘겨 타결된 2019년도 임단협에서 기본급, 성과급이 모두 동결되는 등 노조가 얻은 게 없는 모양새가 되면서 안팎에서 불만이 들끓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4월 임단협 합의안에 대한 노조 투표 결과 찬성률은 53.4%에 불과했다.

한국GM 사측이 임단협 주기를 2년으로 늘리자는 제안을 내놓으면서 사실상 협상 결렬 카드를 꺼낸 것도, 노조 내에서 강경론이 힘을 얻은 상황을 의식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근로자들이 나서고 있다.

현대차도 임금 인상 등 처우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지난 11일까지 현대차 노사는 10차례 교섭을 하면서 ▲전기차 전용공장 논의 ▲총고용 보장 및 부품사 상생방안 ▲직무전환 교육 등 이른바 일자리 이슈는 거의 대부분 합의를 봤다. 현대차는 내년 초부터 울산 공장에서 전기차 전용 생산라인을 가동하는 데, 노조는 그 과정에서 기존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었다.

하지만 현대차 노사는 임금 등 처우 문제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기본급 5.8%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상급 노조인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임단협 요구안에 따른 것이다. 이와 별도로 당기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월차 수당 등 예전 관행으로 남아있는 수당을 기본급화 해달라는 요구도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 사측은 아직 사측 안을 내놓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현대차 노조는 최근 발간한 소식지에서 잇따라 임금 인상 요구를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5만 조합원의 노력을 부정하고 회사만 이윤을 독식하겠다고 한다면 결코 인정할 수 없다"며 "사측이 조합원을 기만한다면 파업 등 강력한 투쟁으로 응수할 것"이라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현대차 노조는 추석 전에는 회사가 임금안을 내놓아야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현대차는 임금 이외 협상 내용을 모두 타결한 이후에 임금 교섭을 하자는 입장이다.

기아차 노조도 지난해 영업이익의 30%를 조합원들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기본급을 5.8%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점심 시간을 유급 노동시간에 산입해, 사실상 연장근로 시간을 1시간 정도 늘려달라는 요구를 비롯해 본인 수당 인상, 상여금 통상임금 적용 등도 요구한다. 기아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 협상에서 전기차 전환에 따른 고용불안 해소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방침이지만, 기아차 노조의 숙원 사업인 ‘현대차 노조만큼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을 빼놓지는 않은 모양새다.

르노삼성 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금속노조) 가입을 추진했으나, 10일 찬성률 60.9%로 부결됐다. 이 사안은 3분의 2(66.7%) 이상 찬성을 얻어야 가결되는 사안이다. 르노삼성 노조는 민주노총 가입을 계기로 강경투쟁 분위기를 몰아가려는 전략이었으나, 쉽지 않게 된 모양새다. 하지만 찬성률이 60.9%에 달해, 르노삼성 노조의 강경론이 꺾일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르노삼성은 파견법 위반 등의 혐의로 9월 말까지 특별근로감독을 받고 있어 임단협은 10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다. 노조의 강경론이 강해 올해 타결이 사실상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