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PCR보다 과정 간단… 30분만에 육안으로 결과 확인
카이스트, 커피얼룩 현상 착안… "코로나19 적용 연구 중"
美·中·이스라엘, 크리스퍼·분광학 적극 응용… 상용화 추진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진이 개발해 지난달 31일 선보인 코로나19 신속 진단기기 ‘램프(LAMP)’.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현장에서 즉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진단하기 위한 기술과 시제품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역전사 중합효소 연쇄반응(RT-PCR·분자진단)’ 검사는 정확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고가의 인프라를 갖춘 의료시설에 검체를 보내고, 바이러스 속 핵산의 양을 증폭하는 과정 등이 필요해 6시간 이상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국내외 학계에서는 이 단점을 보완해 원하는 현장에서 바로 진단(point-of-care)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 기술은 검체를 의료시설에 보낼 필요없이 적은 비용을 들여 수십분만에 육안으로 결과를 알 수 있게 설계됐다.

◇카이스트, ‘커피링 등온 유전자 검출법’ 개발… 민감도 크게 높여

카이스트(KAIST)는 정현정 생명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감염성 세균·바이러스 신속 진단을 위한 ‘커피링 등온 유전자 검출법(iCoRi)’을 개발했다고 16일 밝혔다.

연구팀이 ‘메티실린 내성 포도상구균(MRSA)’과 ‘항생제 내성 유전자(mecA)’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30분만에 결과 확인이 가능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진단도 가능하도록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iCoRi는 ‘커피링(coffee ring) 효과’를 응용한 것이다. 커피링은 물체 표면에 커피 방울이 묻을 때 남는 링(고리) 모양의 얼룩을 말한다. 얼룩 무늬는 물질의 표면장력·모세관 등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연구팀은 커피와 비슷한 얼룩을 남기는 특수 액체를 사용했다. 이 액체 속에 세균·바이러스가 섞이면 얼룩 무늬가 희미해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액체 분자와 세균·바이러스의 핵산이 서로 화학반응해 나타난 결과다. 액체 속 세균·바이러스 농도가 높을수록 얼룩 무늬는 더 희미해졌다.

커피링 등온 유전자 검출법 모식도(위)와 세균·바이러스 농도에 따른 얼룩 무늬 변화(아래).

연구팀은 육안으로 얼룩 무늬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30분만에 검체 속 바이러스 존재 유무와 그 양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로 데이터를 기록하고 확인할 수도 있다. 연구팀은 고가의 장비가 필요없어 진단 비용도 낮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연구팀은 또 민감도를 높이는 증폭 기술을 적용해 ‘젭토몰농도(zeptoM)’ 수준의 바이러스 양도 검출할 수 있도록 했다. 1제토몰농도는 액체 10밀리리터(ml)에 물질 분자 6개가 녹아있는 수준의 낮은 농도다. 기존 진단키트들은 이보다 최소 1000배 높은 바이러스 농도만 검출할 수 있다.

◇美, ‘형광 램프’ 상용화 준비… 中, 크리스퍼 새 기능 활용

최근 미국과 중국 등에서도 다양한 기술과 시제품이 등장했다.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진은 화학반응에 따른 빛 발생 여부로 코로나19를 진단하는 기기 ‘램프(LAMP)’를 개발했다고 지난달 31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램프는 검체를 넣는 키트와 본체에 해당하는 카트리지로 구성된다. 키트에 들어간 검체는 특수한 액체와 섞인 후 M자형의 구불구불한 통로를 지나며 농축된다. 이후 키트를 카트리지에 끼우면 섭씨 영상 65도까지 가열된다. 이 온도에서 액체와 바이러스가 30여분간 화학반응을 일으켜 형광색의 빛을 내뿜는다. 검체에 바이러스가 없다면 빛이 생기지 않는다. 기기 표면에 달린 인터페이스를 통해 빛 발생 여부를 관찰함으로써 육안으로 코로나19 진단이 가능하다.

‘램프’로 30분만에 결과를 확인하는 모습. 양성 환자의 검체를 사용한 경우(왼쪽) 형광색 빛이 두드러지게 발생했다.

연구팀은 "램프 시제품으로 실제 검체를 진단해본 결과 RT-PCR과 같은 결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현재 ‘패스트 래디우스(Fast Radius)’라는 현지 기업과 상용화를 준비 중이며, 면봉을 콧속 깊이 넣어 검체를 채취하는 대신 침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중국 쉬저우의대 협력병원 등이 참여한 공동 연구진도 비슷한 시기인 지난달 27일 ‘크리스퍼-코로나(CRISPR-COVID)’ 진단법을 ‘퍼블릭 라이브러리 오브 사이언스(POLS)’를 통해 소개했다.

이 방법은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크리스퍼 기술을 응용한 것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크리스퍼의 주기능은 유전자 염기서열을 편집하는 것이지만, 세균·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검출할 수 있는 부수적인 기능이 최근 밝혀졌다. 이를 응용한 결핵균 진단법이 이미 개발돼 기존 진단법 수준의 정확도를 보인 상태라고 한다.

크리스퍼를 활용한 코로나19 진단법 모식도.

연구팀은 "코로나19 검체에 본 기술을 적용해본 결과 40분내 감염 여부 확인이 가능했다"고 했다. 1회 진단에 필요한 재료비는 현재 3달러 50센트(약 4100원) 수준이며, 대량생산 시 70센트(약 800원)까지 낮아져 전체 진단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韓 중소기업들, 15분내 진단 가능 항원키트·이스라엘 신기술 공급계약

우리나라 정부도 한국화학연구원 중심으로 신속 진단키트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화학연은 지난 7월 중간 성과를 발표한 바 있다. 김홍기 박사 연구팀은 15분내 진단이 가능한 ‘항원 진단 기술’을 선보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가진 항원과 결합해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나노미터(nm·10억분의 1미터) 크기의 항체를 시료로 사용해 육안으로 그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다. 진단키트로 활용할 경우 임신테스트기와 비슷한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팀은 국내 기업 ‘프리시전바이오’에 기술을 이전해 연내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 발광다이오드(LED) 제조사 'GV금빛'은 지난 6월 이스라엘 벤구리온대 연구진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테라헤르츠(THz·1조Hz) 분광법' 진단기기를 아시아에 공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기는 THz 주파수를 갖는 빛이 100~140nm 크기의 입자들로 이뤄진 물질을 통과할 때 빛의 특성이 크게 변하는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역시 이와 비슷한 크기를 가졌기 때문에 빛의 특성 변화로 검출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레칼러트(eurekalert) 등 외신에 따르면 이 방법은 1분만에 결과 확인이 가능하며 1회 검사에 드는 비용은 50달러(약 5900원) 수준이다. 피실험자 150명을 대상으로
이스라엘 국방부와 함께 진행한 초기 임상에서 90% 이상의 진단 정확도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