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매매시장이 상승세를 멈추고 보합 상태가 되자 재건축·재개발조합들이 보류지 주택을 처분하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보류지를 매각하는 시기도 빨라진 데다 입찰 문턱도 시세보다 낮은 가격대로 낮아졌다.

1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강동구 고덕주공3단지 재건축조합은 ‘고덕아르테온’ 보류지 10가구를 매각한다고 공고했다. 입찰은 오는 18일 마감한다.

조합은 전용면적 59㎡형 4가구, 84㎡형 4가구, 114㎡형 2가구의 공개입찰을 진행하면서 기준가격을 각각 11억원, 15억원, 20억원으로 제시했다. 같은 면적형 주택의 매매 시세보다 1억원 안팎 저렴한 수준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 단지의 전용면적 84㎡형은 지난달 14억6500만~17억원에 거래됐다.

현대건설·대림산업 컨소시엄이 지난 2017년 고덕 아르테온을 분양할 당시 견본주택을 찾은 청약 인파.

강동구 길동신동아3차아파트 재건축조합도 보류지 매각 공고를 냈다. 재건축한 아파트인 ‘e편한세상 강동 에코포레’ 59㎡형 1가구를 매각하면서 최근 실거래 최고가보다 5% 안팎 낮은 9억8500만원으로 기준가격을 정했다. 입찰은 오는 21일까지 받는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1년 만에 보류지 시장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고 있다. 아파트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던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정비조합들은 시세와 비슷한 금액으로 최저입찰가격을 정했다.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폭이 둔화하는 등 매매시장에서 관망세가 짙어지면서 조합의 셈법이 달라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달 11일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한 주 동안 0.07% 올라, 직전 주(0.10%) 보다 상승폭이 줄었다.

보류지를 매각하는 시점이 빨라진 것도 달라진 점이다. 지난해에는 입주를 마치고도 6개월에서 1년까지 시차를 두던 매각 일정을 최근에는 입주기간이 끝난 직후에 잡는 상황이다. 이달 입주를 시작하는 강남구 ‘개포 래미안 포레스트’의 경우에는 지난 7월 일찌감치 보류지를 매각했다.

개포시영재건축조합은 전용면적 59㎡ 3가구의 최저입찰가를 16억7800만~17억1300만원에 내놨다. 지난 5월 입주를 시작한 은평구 ‘백련산 SK뷰 아이파크’도 마찬가지다. 응암10구역 재개발조합은 입주 지정기간이 막바지에 이른 7월에 공고를 내고 보류지 7가구를 처분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보류지 매각의 흥행 여부가 주택시장의 분위기와 비슷한 흐름으로 흘러간다고 본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분양보증을 받기 위해 분양가를 제한받는 일반분양과 달리 보류지 매각은 조합들이 매각 시기와 가격을 원하는대로 책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센터 팀장은 "정비사업이나 주택시장에 대한 규제가 불확실한 상황이다보니 보류지를 매각하고 사업비를 정산하는 등 조합을 청산하는데 속도를 내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비조합의 보류지는 최저입찰가의 10%를 보증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잔금은 낙찰받은 지 한달 안에 낙찰가의 20~30%를, 나머지 금액도 2~3개월 안에 모두 치러야 하기 때문에 아파트를 분양받는 것보다 자금 압박이 크다. 그럼에도 주택 공급량이 많지 않거나 매물이 귀한 지역에서는 새 아파트를 매수하는 방안으로 보류지를 찾는 수요자들이 많다. 시세보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값에 매수하거나 최소한 부동산 중개수수료 등 비용을 내지 않고 새집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분양과 달리 분양가 제한도 받지 않는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보류지 입찰에 참여하는 첫 번째 기준은 주변 시세"라면서 "새 아파트이기 때문에 시세보다 10%만 저렴하면 매수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15억원 초과 주택은 주택담보대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류지 물건 역시 자금 조달 능력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