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 스마트폰 칩 설계 90% 담당하는 '오픈형' 라이선스 회사
삼성·애플·퀄컴·화웨이가 고객사… "18개월 걸릴 당국 승인이 관건"

엔비디아 제공

미국 반도체회사 엔비디아가 13일(현지 시각)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회사 영국 ARM을 400억달러(약 47조5000억원)에 인수한다고 공식 밝혔다. 이는 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의 인수합병(M&A) 금액이다.

앞서 2016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비전펀드를 통해 총 320억달러(약 38조원)를 주고 ARM 지분 100%를 인수했다. 400억달러 매매가 공식화하면서 손 회장은 4년 만에 약 80억달러(약 9조5000억원)에 이르는 차익을 거두게 됐다.

엔비디아는 계약금 20억달러를 포함, 215억달러는 주식으로, 120억달러는 현금으로 각각 ARM에 지급하게 된다. 소프트뱅크는 ARM 실적이 특정 목표를 달성할 경우 현금이나 주식 50억달러를 받을 수 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또 15억달러어치 엔비디아 주식이 ARM 직원들에게 주어진다.

소프트뱅크는 이번 거래에 이어 엔비디아 지분 10% 미만을 보유하게 될 전망이다. 두 회사의 인수합병은 영국, 중국, 미국, 유럽연합(EU) 등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는 데까지 18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 손정의도, 엔비디아도 군침 흘린 ARM은 어떤 회사?

1990년 영국에서 설립된 ARM은 반도체 기본 설계도를 만들어 삼성전자·퀄컴·애플 등 세계 반도체 기업에 사용료를 받고 파는 회사다.

애플·퀄컴·삼성전자·하이실리콘(화웨이)·미디어텍 등이 ARM 설계 기반으로 스마트폰 두뇌라 하는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만들고 있다. ARM은 전 세계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설계의 90%를 공급하는 회사다.

최근 애플이 모바일 AP뿐 아니라 PC 칩에서도 인텔과의 관계를 끊고 ARM 설계를 기반으로 자체 칩을 개발한다고 나서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버(대형컴퓨터)용 시장에서도 아마존, 구글 등이 ARM 기반으로 직접 반도체를 개발 중이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ARM의 아키텍처 기술 내재화를 통해 엔비디아는 칩 설계 핵심 역량이 경쟁사 대비 강화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ARM의 사업모델은 ‘오픈형’ 라이선스다. 라이선스만 구입하면 어떤 기업이든 이를 커스터마이징해서 회사별로 자체 목적에 맞게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면 이런 사업모델을 훼손, 설계도를 더 이상 팔지 않고 독점 사용하려 하거나 비싼 로열티를 받을 것이란 우려가 나왔던 이유다.

이를 의식한 듯 엔비디아 측은 공식 발표에서 ARM의 성공 기초가 된 오픈 라이선스 모델을 계속 운영할 것이며, 회사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 엔비디아 경쟁사가 ARM의 고객사 역설

엔비디아의 인수는 ARM 사업모델의 중립성에 중대한 도전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소프트뱅크가 4년 전 ARM을 인수했을 때는 이 회사가 고객사 어디와도 경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 없이 인수합병 과정이 진행될 수 있었지만, 엔비디아는 ARM 고객사들과 경쟁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비즈니스 모델상 단기적으로는 기존 고객관계가 유지될 것이기 때문에 당장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엔비디아와 경쟁관계에 있는 삼성전자(005930), 퀄컴, 애플 등 입장에서는 ARM 설계를 쓰기 껄끄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ARM 설계를 쓰기 위해서는 자사 영업기밀이라 할 수 있는 로드맵 등을 오픈해야 하는데, ARM을 소유한 엔비디아가 반도체 업을 하는 경쟁사라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가장 직접적으로 도전받게 될 기업으로 인텔을 거론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데이터센터 컴퓨팅을 위한 ARM의 칩 설계에 우선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데이터센터용 CPU(중앙처리장치)는 인텔이 90% 정도 점유하고 있는 시장이다. 엔비디아는 구글·페이스북 데이터센터의 인공지능(AI) 업무량 개선을 위해 그래픽 칩을 납품하며 틈새시장을 개척한 바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ARM의 고객사들이 이번 딜에 대해 반대입장을 낼 수 있고 이에 따라 주요국 정부도 딜을 승인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앞서 미국 퀄컴 또한 네덜란드 반도체 회사 NXP를 440억달러(약 50조원)에 인수하려다 중국 등의 주요국 승인을 받지 못해 실패한 바 있다.

현재 ARM 본사가 있는 영국에서는 반대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면서 "소프트뱅크는 ARM 인수 이후에도 여전히 본사를 케임브리지에 뒀지만 엔비디아는 오히려 이 엔지니어들을 미국 본사로 흡수시켜 본사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