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니켈 수요가 늘면서 배터리 업계가 니켈 확보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니켈 함량이 높은 ‘하이니켈’ 배터리가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는 지난달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모든 광산 회사가 니켈을 더 많이 채굴하길 바란다"며 "니켈을 효율적이면서 친환경적으로 채굴하는 기업과 대규모 계약을 맺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인데 한국광물자원공사는 도리어 니켈과 코발트가 생산되는 마다가스카르의 암바토비 광산 지분을 매각하기로 해 찬반양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한 니켈 광산

전기차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또는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양극재를 사용한다. 양극재의 니켈 비중이 높을수록 전기차 주행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에 국내 배터리 업계는 현재 60% 수준인 니켈 함량을 80~90%까지 높인 ‘하이니켈’ 배터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니켈 함량을 높이면 양극재 원료 중 가장 비싼 코발트 비중을 줄여 배터리 생산원가를 낮출 수 있다.

삼성SDI(006400)는 내년 출시될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에 니켈 함량 88%인 NCA 양극재를 적용할 예정이라고 최근 밝혔다. 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600km 이상으로 늘어난다. 현재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약 400km다. 삼성SDI 관계자는 "더 고함량의 니켈이 들어가는 하이니켈 양극재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LG화학(051910)SK이노베이션(096770)도 니켈 함량을 90%까지 높인 배터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맥킨지는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면서 배터리용 니켈 수요가 올해 15만t에서 2030년 약 110만t으로 7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수요 회복에 힘입어 최근 5개월 사이 니켈 가격도 40% 상승했다. 이달 10일 기준 영국런던금거래소(LME)에서 니켈 현물 가격은 톤당 1만4748달러에 거래됐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주로 가공된 형태의 황산니켈을 수입하고 있으며, 원활한 니켈 조달을 위해 공급사 다변화에 힘쓰고 있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인도네시아, 호주, 아프리카 등 다양한 원재료 생산·가공업체와 구매계약을 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나소닉은 일본 스미토모상사로부터 니켈을 공급받고 있으며, CATL은 세계 1위 니켈 생산업체인 중국 화유코발트가 주요 공급사다. 스미토모와 화유코발트는 주요 니켈 생산지로 부상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 니켈 광산을 개발 중이다.

세계적 투자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전기차 시장 성장에 따라 니켈 등 주요 원자재 수요가 늘어날 것을 보고 일본 5대 종합상사의 지분을 약 5%씩 사들였다. 버크셔해서웨이가 매입한 스미토모상사, 이토추상사, 미쓰비시상사, 미쓰이물산, 마루베니 등의 지분가치는 62억5000만달러에 달한다고 CNBC는 전했다. 주요 외신은 일본 종합상사들이 주요 원자재와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버핏이 투자를 결정했다고 분석했다. 스미토모상사의 경우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 광산의 지분 47.6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에 한국광물자원공사가 암바토비 광산 보유지분의 매각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면서 향후 니켈과 코발트 확보 경쟁이 점점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광물공사가 니켈광산을 팔면 한국이 장기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암바토비 광산이 현재 손실을 내고 있지만, 향후 니켈과 코발트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해외자원으로서의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암바토비 광산은 캐나다 쉐릿(지분 12%)과 일본 스미토모상사(47.7%), 한국광물자원공사(33%)·포스코인터내셔널(5.9%)·STX(011810)(1.5%)로 이뤄진 한국컨소시엄이 2007년 개발을 시작했다. 매장량은 원광 1억4620만톤(t)이다. 한국컨소시엄은 암바토비 생산량 50%에 대한 처분권도 보유하고 있다. 니켈과 코발트 생산량의 절반을 한국이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광물공사가 지난 10여년간 해외 광산 개발에 수조원을 투입하면서 적자 폭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2016년부터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는 광물공사의 해외자산을 전부 매각하라고 명령했다. 공사 측은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해 우선 국내 매수자를 모색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자원시장 침체와 지분 규모를 고려할 때 인수하겠다는 업체를 찾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