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의 A차장이 셀프대출로 수십건의 부동산 투자를 한 사실이 지난주 내내 화제였다. A차장은 가족 명의의 법인과 개인사업자에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29차례에 걸쳐 총 76억원을 대출받았다. A차장이 셀프대출로 사들인 부동산은 아파트 18채, 오피스텔 9채, 연립주택 2채 등 총 29채다. A씨는 부동산 투자로 30억~40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국책은행 직원이 셀프대출로 거액의 부동산 투자에 나선 사실이 알려지자 기업은행은 부랴부랴 대출을 회수하고 A차장을 면직 처리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셀프대출을 막는 규정 자체가 미비한 상황에서 A차장이 거둔 시세차익까지 회수하는 건 쉽지 않다.

A차장의 행동은 국책은행 직원이 은행 돈으로 자신의 배를 불린 일로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일이 알려진 뒤 직장인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사건을 전하는 게시글에는 '몇년 살고 50억이면 개이득' '인생을 건 베팅... 성공!' '대단하시네 면직돼도 돈걱정없겠네' '꺼억하고 미리 정년퇴직이네' 같은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A차장의 행동이 편법이고 꼼수라는 건 모두가 알지만 잘못된 행동이라는 지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심지어 다른 시중은행 직원도 A차장을 부러워하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수십 여개의 댓글 중에는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한 직장인은 '흑석 김의겸은 되는데 임직원은 안되는겨?'라는 댓글을 달았다. ‘흑석 김의겸’은 서울 흑석동 재개발 예정 지역의 건물을 매입했다가 투기 논란으로 사퇴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별칭이다.

김 전 대변인의 투자법은 부동산 전문가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는 재개발 예정 지역의 허름한 상가를 25억7000만원에 샀다. 지인이 다니는 은행 지점에서 10억여원을 대출 받아서 산 이 상가는 1년 5개월만에 11억원 정도의 시세차익을 냈다. 김 전 대변인은 총선 출마를 앞두고 상가를 팔았지만, 흑석 김의겸의 재개발 상가 투자법만큼은 '부동산 투자의 정석'에 이름을 올려도 될 정도였다.

흑석 김의겸은 되는데 임직원은 안 되냐는 반응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일반 국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문재인 정부는 수십차례에 걸쳐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면서 평범한 직장인의 내집 마련의 꿈을 정말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 만들었다. 정부가 대출을 막은 탓에 평범한 30대 직장인이 은행에서 정당하게 대출받아서는 도저히 집을 살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동시에 문재인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했던 ‘흑석 김의겸’ 같은 사람은 은행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아 전문가도 놀랄 만한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

국민들이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문재인 정부의 구호인 ‘정의’와 ‘공정’보다 ‘편법’과 ‘꼼수’를 더 믿게 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아마 기회만 생긴다면 누구든 기업은행 A차장처럼 편법과 꼼수를 동원해 부동산 투자에 나서려고 할 것이다. 기회를 잡지 못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됐다. 흑석 김의겸, 집택 김조원, 과천 김수현, 목포 손혜원, 삼주 최정호 같은 이들을 보며 국민들이 배운 것이다. 꼼수대출, 편법투자의 전성시대를 연 개국공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