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암호화폐) 시장에서 디파이(Defi·탈중앙화금융)만 언급하면 다 오른다. 2017년 코인 광풍이나 주식시장에서 바이오만 붙으면 급등하는 버블(거품)과 같은 것이다."

최근 디파이 시장에 11조원이 넘는 돈이 몰리면서 광풍이 불고 있다. 디파이란 탈중앙화 금융(Decentralized Finance)의 줄임말로,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한 금융 생태계를 뜻한다. 2017년 이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암호화폐 시장에서 디파이는 대안이 됐다. 어떤 암호화폐든지 디파이와 엮이기만 하면 시세가 뛰는 모양새다.

디파이 정보사이트인 디파이펄스에 따르면 디파이 플랫폼에 예치된 자금은 지난달 말 기준 83억1000만달러(약 9조8000억원)으로 지난 7월 말 40억달러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해 한달 새 약 두배 급증했다. 이달 2일에는 95억1200만달러(약 11조3000억원)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최근 거품 논란이 일면서 총 가치는 80억달러 안팎으로 줄어든 상태다.

스시스왑.

◇대출·예금처럼 암호화폐 빌리고 맡겨두면서 이자놀이

디파이는 코인‘꾼’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는 생소한 용어다. 디파이에는 암호화폐를 빌려주는 형태로 이자를 받는 ‘렌딩’과 맡겨놓기만 하면 이자를 주는 ‘스테이킹’이 있다. 시중은행이 예금자 돈을 받아서 대출이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고 이들에게 받은 이자를 다시 예금자에게 주는 것과 같다.

만약 이용자가 1비트코인(약 1210만원)을 담보로 예치하면 플랫폼 업체는 일정량의 ‘스테이블 코인(가치가 변하지 않는 코인)’을 준다. 담보는 비트코인처럼 일부 유명 암호화폐만 가능하다. 이용자가 1비트코인을 다시 받으려면 빌려 간 코인에 이자를 얹어서 갚아야 한다. 이자 역시 스테이블 코인이다. 대표적인 스테이블 코인으로는 해외 플랫폼 중 ‘메이커다오’의 ‘메이커(MKR)’와 ‘다이(Dai)’가 있다.

메이커와 다이 등 스테이블 코인도 비트코인처럼 거래소에 상장이 돼 있고 가격이 실시간으로 움직인다. 최근에는 스테이블 코인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가 많아 스테이블 코인을 얻기 위해 대출을 받는 사람도 있다.

암호화폐를 취급하는 거래소나 기관에서 운영하는 스테이킹은 ‘적금’으로 볼 수 있다. 스테이킹은 암호화폐 매도를 줄이고 시세 안정화를 꾀하는 목적이다. 이를 위한 보상으로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다.

디파이 시장은 해외에서 이미 불붙었다가 올 여름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제로(0)금리’가 이어지다 보니 디파이 플랫폼을 통해서 암호화폐로 이자 수익을 얻으려는 투자자가 몰리고 있다"고 했다.

◇스시스왑·김치 파이낸스·핫도그… ‘폭탄 돌리기’ 플랫폼 우려

디파이 시장은 초기에 기존 금융기관이 했던 역할을 블록체인을 통해 암호화폐로 대체하려는 시도라고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암호화폐를 예치해 암호화폐를 얻는 ‘이자농사’가 돼버리면서 곧 ‘투기판’으로 변질됐다.

특히 디파이 업체가 플랫폼 활성화를 이유로 코인을 자체 발행하며 이용자에게 코인을 무료로 뿌려댄 영향이 컸다. 이후 자체 발행한 코인들이 특정 거래소에 상장되고 시세가 급등하자, 이 코인을 공짜로 받은 사람들은 앉은 자리에서 큰 수익을 거두게 됐다. 그러다 보니 투기를 위해 디파이 업체가 자체 발행한 코인을 매수하는 일이 늘어났다.

한 업체가 성공하자 다른 디파이 업체도 자체 발행 코인 뿌리기에 동참했다. 일부 업체들은 예금과 이자 지급에 사용되는 스테이블 코인까지 자체 발행했다. 만약 이 업체들이 망하면 이 스테이블 코인은 휴지조각이 된다. 모든 건 시세 상승이 계속된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시세가 하락하면 문제가 터지게 된다. 유동성이 계속 공급되지 않으면 폭락하는 구조라 일각에서는 디파이가 ‘폭탄 돌리기’ ‘스캠(사기)’이라는 말도 나온다.

‘스시 스왑’ ‘김치 파이낸스’ ‘토스트 파이낸스’ ‘핫도그’ 등 음식 이름을 붙인 각종 디파이 거래소가 대표적인 예다. 스시스왑이라는 거래소는 자체 디파이 코인 ‘스시(SUSHI)’를 발행해 상장시킨 후 파격적인 보상을 약속해 12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모았다. 그러나 스시 토큰(특정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동작하는 응용 서비스에서만 사용하는 암호화폐) 발행자가 수백억원어치의 코인 물량을 개인 지갑에 몰래 가지고 있었고 언제든지 팔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코인 가격이 폭락했다.

핫도그도 디파이 보상으로 100만%에 달하는 연간 수익률(APY)를 제시해 핫도그 코인은 상장 직후 단숨에 6234달러(약 741만원)까지 올랐지만 3시간 만에 0.0026달러(약 3원)가 됐다. APY는 일반적으로 디파이 시장에서 이자를 받는 경우 예금, 이자 수익을 계산할 때 사용되는 용어다.

핫도그 코인 시세 그래프.

◇"디파이 산업 수요 찾아내야…지금은 투기 과장"

국내 거래소에는 아직 상장된 디파이 코인이 많지 않아, 국내 투자자 비중은 크지 않다. 그러나 디파이 광풍이 국내에도 번질 수 있어 업계에서는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공시 데이터 기반 암호화폐 정보포털 쟁글은 "올 여름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은 디파이 붐으로 어느 때보다 활성화됐다"며 "가상자산 투자자들 역시 주식시장과 마찬가지로 시장 호황이 너무 일렀거나 과도했던 것은 아닌지 재평가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특히 예치금과 수수료 등 대부분의 디파이 프로젝트가 암호화폐인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이더리움 가격 약세가 이어지면 디파이 시장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기술을 여러 분야에 접목할 수 있도록 개선한 기술로, 비트코인에 이어 ‘2세대 블록체인’으로 불린다.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공동 창업자는 "현재 고금리를 부각하는 화려한 디파이들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존 금융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높은 금리는, 일시적인 차익거래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위험을 수반할 수 있다"고 했다.

쟁글을 운영하는 크로스앵글의 이현우 대표도 "디파이는 이미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기존 암호화폐 이용자들을 넘어, 산업에서 수요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재 디파이 유행은 지속 불가능한 관심도와 토큰을 향한 투기적 목표가 과장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