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특허소송’을 둘러싼 LG화학(051910)SK이노베이션(096770)의 공방이 멈추지 않고 있다. 주말까지 ‘반박문’에 ‘재(再)반박문’이 오가며 신경전이 더 격화되는 모양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갈등의 발단은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은 지난해부터 벌이고 있는 배터리 기술(특허번호 994) 특허 관련 소송전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선행기술을 탈취한 뒤 특허로 등록하고는 오히려 자신들을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이라며 LG화학이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왼쪽부터)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

① LG화학 "해당 특허 우리가 먼저 보유" (9월 4일 오후 5시)
선제공격은 LG화학이 시작했다. LG화학은 지난 4일 오후 "SK이노베이션이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어 사안의 심각성을 알리겠다"며 입장 자료를 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994 특허’는 SK이노베이션이 특허를 출원한 2015년 6월에 이미 LG화학이 보유하고 있던 선행 기술"이라며 "2013년부터 크라이슬러 퍼시피카에 판매된 LG화학 A7 배터리가 해당 기술을 탑재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SK이노베이션이 남의 기술을 가져가서는 특허로 등록하고 역으로 특허침해 소송까지 제기했다"며 "이를 감추기 위해 증거인멸을 한 정황을 우리가 지적하자 '협상 우위를 위한 압박용 카드' '여론 오도'라고 근거 없는 주장을 한다"고 지적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994 특허가 자사의 선행 기술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SK이노베이션의 994 특허 발명자가 LG화학의 배터리 관련 세부 정보가 담긴 문서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② SK이노 "억지주장 멈춰야" (9월 4일 오후 9시 30분)
그러자 SK이노베이션은 "억지 주장"이라며 즉각 반박문을 내놨다. LG화학의 입장문이 발표된 지 약 4시간 30분 만에 "994특허는 자사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자신들의 기술이 특허화된다고 생각했다면 출원 당시 이의제기를 했을 것"이라며 "특허 출원시 LG화학의 선행 기술이 있었다면 등록도 안 됐을 것"이라고 했다.

LG화학이 생산한 배터리 모습.

그러면서 "경쟁사의 특허개발을 주시하며 특허등록을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기술이 특허화된다고 생각했으면 이미 특허 출원 당시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SK이노베이션은 또 "우리 독자 특허를 마치 원래부터 잘 알고 있던 자신들의 기술인 것처럼 과장, 왜곡하는 LG화학에 대해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증거인멸도 없다. 어떤 자료도 삭제할 이유도 없고 삭제하지도 않았으므로 ITC에서 소명될 것"이라고 했다.

LG화학 "소송에나 충실하라"(9월 6일 오전 10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나온 지 이틀 만인 이날 재반박문을 내놨다. 'SK 입장에 대한 당부사항'이란 제목의 입장 자료를 통해 "제발 소송에 정정당당하게 임해달라"고 지적했다.

LG화학은 "특허 소송에 대한 주장도 장외 여론전이 아닌 정해진 법적 절차에 따라 양사가 충실하게 소명해 나갔으면 한다"라며 "떳떳한 독자기술이라면 SK이노베이션에서 발견된 LG화학의 관련 자료와 이를 인멸한 이유부터 소송 과정에서 명확히 밝히길 바란다"라고 했다.

사전에 해당 기술을 특허로 등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LG화학은 "당시 내부기준으로는 특허로 등록해서 보호받을 만한 고도의 기술적 특징이 없고 고객 제품에 탑재돼 자연스럽게 공개되면 특허 분쟁 리스크도 없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특허로 등록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원 당시 이의제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당사는 경쟁사의 수준과 출원 특허의 질 등을 고려해 모니터링한다"고 했다.

SK이노베이션이 ‘소송 절차가 한참 진행된 이후에야 문제를 제기한다’고 지적한 데 대해서는 "제기된 직후 자사 선행기술임을 파악해 대응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떳떳한 독자기술이라면 SK이노베이션에서 발견된 LG화학의 관련 자료와 이를 인멸한 이유부터 소송 과정에서 명확히 밝혀라"고 덧붙였다.

최태원(가운데)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4월 SK이노베이션의 충남 서산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에서 현장 직원들과 함께 설비를 둘러보고 있다.

④ SK이노 "상식 밖 주장···기술 훔친 적 없어" (9월 6일 오후 2시 30분)
같은 날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재반박문이 나오자 즉각 'LG화학의 억지·왜곡 주장에 대한 팩트확인·입장문'을 내놨다. "이미 출시된 경쟁사의 제품에 적용된 기술을, LG 표현에 따라 '훔쳐서' 무효가 될 특허를 출원할 바보는 없다"고 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994특허 침해 관련 소송을 제기했을 때 LG화학이 그들이 가진 기술을 특허화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바로 A7이라는 제품을 내놓고 특허 무효를 주장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LG화학은 소송이 제기된 지 2개월이 지난 후 제출한 첫 번째 서면에서 100여 개의 특허를 나열하며 선행기술이라 주장했지만, 거기에는 A7이라는 제품은 없었다"고 했다.

SK이노베이션 994 특허 발명자가 LG화학에서 이직한 인물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맞다"고 인정했다. 다만 "그가 이직한 시점이 2008년이라는 점을 들어 굳이 2015년까지 기다렸다가 특허를 출원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직을 기술탈취로 단정 지어놓고 그사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모두 사상시켜 버린다"고 덧붙였다.

SK이노베이션이 증거를 인멸했다는 LG화학의 주장에 대해서도 "정직한 소송행위라기보다는 특허권자인 SK의 이미지를 깎아내려 소송과 소송 밖 협의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비신사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LG는 소송을 먼저 시작한 당사자로서 사실을 근거로 정해진 소송절차에 정정당당하게 임해 주시기 바란다. 제발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어 "LG의 아니면 말고식 소송과 억지 주장에 저희 SK만 힘든 것이 아니고, 코로나19와 경제위기로 가뜩이나 어려운 국민들께서도 많이 힘들어 할 것"이라며 "LG는 우리 배터리 산업 생태계와 국가 경제발전의 중요한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대화를 통한 현명하고 합리적인 해결로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래픽=이민경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