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최대 국영 화학 기업 시노켐·켐차이나 합병 속도
합치면 연매출 174조 원 초대형 화학 기업 탄생
두 회사 공동 회장 닝가오닝 "합병 반드시 완수"
中, 美 이길 '글로벌 챔피언' 키운다
트럼프 행정부 "시노켐·켐차이나는 '공산당 중국군 회사"

중국 최대 국영 화학 기업 시노켐(Sinochem·중국중화집단공사)과 켐차이나(ChemChina·중국화공집단공사)의 합병이 가시화하고 있다. 두 회사 합병은 몇 년 전부터 추진됐으나, 그동안 별다른 진척 없이 "합병 한다, 안 한다" 소문만 무성했다.

이번엔 두 회사가 합치는 데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미·중 전면전 속에 중국 정부가 대형 국유 회사를 통합시켜 미국을 압도할 초대형 기업을 만들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합병이 성사되면 연매출 1461억 달러(약 174조 원·2019년)의 세계 최대 화학 기업이 탄생한다.

닝 가오닝(프랭크 닝) 시노켐·켐차이나 회장.

시노켐과 켐차이나의 회장을 겸임하는 닝가오닝(寧高寧·프랭크 닝) 회장은 2일 "두 회사의 합병을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고 차이나데일리가 보도했다. 닝 회장은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합병을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고 했다.

시노켐과 켐차이나 모두 원유 정제, 석유화학, 비료, 타이어, 화학장비 제조 등 화학 업종 가치사슬 전체를 포괄하는 제품군을 갖췄다.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매출은 시노켐이, 자산은 켐차이나가 더 많다. 미 경제지 포천이 세계 500대 기업을 집계해 발표하는 ‘포천 글로벌 500 2020’ 순위에서 시노켐은 매출(2019년 기준) 803억7600만 달러(약 96조 원)로 109위에, 켐차이나는 657억6700만 달러(약 79조 원)로 164위에 올랐다. 자산은 켐차이나가 1211억5900만 달러로, 시노켐(787억9900만 달러)보다 많다. 최대 경쟁사로 꼽히는 독일 바스프(BASF)의 지난해 매출은 707억2300만 달러, 자산은 975억9200만 달러 수준이다.

닝 가오닝(프랭크 닝) 시노켐·켐차이나 회장이 7월 2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재한 기업인 모임에 참석해 말하고 있다.

두 회사 합병설은 2016년부터 흘러나왔다. 중국 정부가 런젠신(任建新) 켐차이나 당시 회장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시노켐과 합치려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떠돌았다.

런 전 회장은 1990년대 파산한 국영 화학업체들을 사들여 켐차이나를 설립했다. 이후 국내외 100여 개 회사를 인수·합병(M&A)하며 회사를 키웠다. 그중에서도 런 전 회장은 2016년 스위스 종자 기업 신젠타를 430억 달러에 인수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중국 기업의 해외 기업 M&A 중 최대 규모였다.

켐차이나

기업가로서 런 전 회장을 보는 외부 평가는 좋았으나, 중국 정부 내에선 런 전 회장이 회사를 민간 기업처럼 운영한다는 불만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잇따른 대규모 M&A로 부채가 급증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런 전 회장은 켐차이나를 시노켐과 합병시키려는 정부 계획에 반대했다. 결국 2018년 7월 런 전 회장은 켐차이나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시노켐 회장이던 닝 회장이 두 회사 경영을 동시에 맡았다.

닝 회장이 두 회사를 모두 이끌면서 합병 절차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양사 경영진 갈등이 불거지며 합병 작업은 다시 물밑으로 가라앉은 것으로 전해졌다. 두 회사는 올해 1월 우선적으로 농업 부문 자산을 떼어내 신젠타그룹으로 통합시켰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최근 낸 각 기업에 대한 신용등급 평가 보고서에서 "중국 국유 기업 개혁의 일환으로 시노켐과 켐차이나 간 자산 재편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닝 가오닝(프랭크 닝) 시노켐·켐차이나 회장이 2019년 7월 ‘다보스 여름 포럼’으로 알려진 AMNC 콘퍼런스에 참석해 말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미·중 갈등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첨단산업 육성 계획을 세우며 맨앞에 국영 기업을 내세웠다. 특히 올 들어 국영 기업 통합과 구조조정을 통해 미래 핵심 산업을 키우겠다는 메시지를 잇따라 내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7월 중국 기업인들을 한데 모은 자리에서 "국영 기업이 중국 경제가 맞닥뜨린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 국무원 산하 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SASAC)의 하오펑 위원장은 지난달 10일 중국 관영 신화사와의 인터뷰에서 "중앙정부 소유 국유 기업들이 다른 회사들과 힘을 합쳐 공급망을 만들고 세계 최고의 회사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SASAC는 중앙정부 소유 국유 기업을 관리하는 기구다. 지난해 말 기준 SASAC의 감독을 받는 중앙정부 산하 국유 기업은 96개다.

시노켐

현재 합병 작업에 최대 걸림돌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다. 미 국방부는 지난달 28일 시노켐과 켐차이나를 포함해 중국 기업 11곳을 ‘공산당 중국군 회사’라며 블랙리스트에 추가로 올렸다. 이들 기업이 중국 인민해방군 소유이거나, 인민해방군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이유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합병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연합 등도 중국 정부에 국영 기업 특혜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중국에서 외국 기업이 공정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라는 것이다. 중국 내에서도 비효율적인 국영 기업에 정부 지원을 계속해 부실 덩어리인 ‘좀비 기업’이 양산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