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라임자산운용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에서 투자원금을 전액 반환하도록 결정한 조정결정서 전문을 최근 공개했다. 조정결정서는 라임 무역금융펀드 사태에서 신한금융투자(신금투)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정황을 다수 담고 있다. 앞으로 진행된 펀드 판매사들의 구상권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신금투도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수익증권 매매계약 취소에 따른 부당이득반환 책임'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조정결정서 4건을 공개했다. 금감원 분조위는 지난 6월 30일 라임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 신청 4건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인정하고 투자원금 전액 반환 결정을 내렸다. 이번에 공개된 조정결정서는 분조위가 어떤 이유로 투자원금 전액 반환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자세한 판단을 담고 있다.

조정결정서에 따르면 신금투 PBS사업부는 라임 무역금융펀드 중 하나인 IIG 펀드의 기준가를 임의로 조정했다. IIG 펀드의 사무관리회사는 매달 신금투 PBS사업부에 펀드 기준가를 통보했는데 2018년 6월부터는 통보를 중단했다. 그러자 신금투 PBS사업부는 2018년 6월부터 12월까지 IIG 펀드의 월 수익률이 0.45% 수준이 되도록 임의로 기준가를 조정했다. 심각한 부실이 발생하고 있는 펀드의 수익률을 기준가 임의 조정을 통해 숨긴 셈이다.

서울 여의도 신한금융투자 본사 전경.

라임 무역금융펀드 투자자들은 잘못된 수익률 자료를 믿고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봤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이나 다른 증권사는 이 수익률 자료를 바탕으로 라임 무역금융펀드를 팔았는데 이 자료의 데이터 자체가 허위인 만큼 신금투의 책임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라임 무역금융펀드의 투자구조가 두 차례에 걸쳐 변경된 과정에도 신금투가 적극 개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신금투 PBS사업부는 2018년 11월 17일 IIG 펀드 운용사에 문제가 생긴 사실을 알게 됐다. IIG 펀드 운용사 대표가 사기 혐의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소환장을 받았고, 남미 투자상황이 좋지 않은데다 펀드 포트폴리오에 상당한 손실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의 서신을 수신했다. 그 직후인 2018년 11월 26일 라임 무역금융펀드는 투자구조를 모자형 펀드로 변경했는데, 금감원 분조위는 투자구조 변경으로 인해 정상펀드로 부실이 전이됐다고 보고 있다. 펀드 투자구조 변경 역시 신금투 PBS사업부와 라임자산운용이 협의해 진행했다.

이후 라임 무역금융펀드는 2019년 6월 또 다시 투자구조를 바꾸는데 이 과정에도 신금투가 등장한다. 신금투 PBS사업부와 라임자산운용은 2019년 1월 미국 출장을 통해 IIG 펀드 투자손실이 투자금액(2295억원)의 절반에 가까운 약 1000억원에 달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또 2019년 2월 22일에는 라임 무역금융펀드의 다른 투자대상인 BAF펀드의 폐쇄형 전환 사실도 확인했다. 이후 신금투 PBS사업부와 라임자산운용은 라임 무역금융펀드 수익증권을 싱가포르 소재 무역금융회사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했고 2019년 6월에 투자구조를 바꿨다. 하지만 투자구조가 바뀐 뒤에도 투자자들에는 이런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

금융감독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라임 펀드 투자자들.

신금투는 지난 8월 27일 금감원 분조위의 라임 무역금융펀드 투자원금 전액 반환 결정을 수용하면서도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구체적으로 기준가를 임의로 조정했다는 부분, 라임운용과 함께 펀드 환매 자금 마련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펀드 투자구조를 변경했다는 부분, 인터내셔널 인베스트그룹(IIG) 펀드의 부실과 BAF 펀드의 폐쇄형 전환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구조를 변경했다는 부분, 2018년 11월 이후 판매한 무역금융펀드 자금이 기존 자(子)펀드의 환매대금에 사용되었다는 부분 등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신금투와 함께 라임 무역금융펀드를 팔았다가 투자원금을 전액 반환하게 된 우리은행, 하나은행, 미래에셋대우 등이 라임자산운용뿐 아니라 신금투를 상대로도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다. 신금투 입장에서는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하지만 금감원 분조위가 공개한 조정결정서에는 당시 정황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어 신금투에 불리한 자료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

조정결정서에 따르면 신금투는 라임 무역금융펀드를 판매하는 과정에서도 허술한 부분이 많았다. 무역금융펀드는 대체투자 상품이어서 펀드선정위원회의 결의를 거쳐야 하지만, 신금투 투자상품부는 이 상품이 기존과 동일한 유형이라며 펀드선정위원회 결의를 생략했다. 부실 펀드 판매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셈이다.

신금투가 A장학재단에 라임 무역금융펀드를 판매할 때도 투자자성향을 임의로 바꾸는 모습을 보였다. A장학재단은 일반투자자로 분류돼 있는데도 신금투 판매직원은 공격투자형으로 투자성향을 임의로 바꿔서 투자계약을 맺었다. A장학재단의 담당직원이 주식 등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투자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금투는 ‘투자경험’ 항목에서 ‘원금비보장형 ELS/DLS/ELF’, ‘주식’, ‘투자경험 3년 이상’란에 사실과 다르게 임의로 체크한 사실도 조정결정서에 적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