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원전시장 활짝…두산중공업 수출길 열렸다

원자력 업계에 소형화 바람이 불면서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세계 각국이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소형모듈원전(이하 소형원전)은 하나의 용기에 원전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원자로 등 설비를 모두 담은 일체형이다. 대형 원전의 150분의 1 크기로 원하는 곳에 설치하기 쉽고 방사선 누출 위험을 줄여 안전성을 높인 차세대 원전으로 꼽힌다. 여기에 공장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 건설비용도 기존 원전보다 저렴하다.

원전업계는 이처럼 안전성과 경제성을 갖춘 소형원전이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보완하는 전력 공급원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소형원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주요국의 기술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세계 각국에서 제시한 소형원전 설계 개념만 50개가 넘는다.

그래픽=이민경

특히 미국이 소형원전 개발에 적극적이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2013년부터 자국 원전기업 뉴스케일파워의 소형원전사업을 지원해왔다. 두산중공업이 주기기 공급사로 참여하고 있는 뉴스케일의 소형원전사업은 지난달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설계 심사를 통과했다. 소형원전 모델이 미국 NRC 설계인증 심사를 모두 통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뉴스케일은 미 아이다호주에 발전용량 60MW급 소형원전 12기로 이뤄진 총 720MW 규모 소형원전발전단지를 구축할 예정이다. 2023년 건설을 시작해 2029년 상업운전이 목표다. 총 건설비용은 30억달러(약 3조5000억원)로 추정된다. 이는 기존 1000~1400MW급 대형원전을 짓는데 필요한 200억달러(약 23조7000억원)보다 훨씬 적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또 소형모듈을 거대한 지하수조에 담아 냉각수 공급 없이도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했으며, 방사선 누출 등의 중대 사고가 발생할 확률도 기존 원전 대비 10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뉴스케일 측은 설명했다.

뉴스케일 소형모듈원전(SMR) 플랜트 가상 조감도

뉴스케일이 앞으로 미국은 물론 캐나다, 체코, 요르단 등 해외에서 소형원전을 건설·운영할 수 있게 되면서 두산중공업의 수출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기용 두산중공업 원자력BG장은 "앞으로 뉴스케일을 통해 미국을 포함한 세계 시장에서 최소 13억달러(약 1조5000억원) 규모의 소형원전 주요 기자재를 공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설립한 미 원자력 발전회사 테라파워도 10년 내 소형원전 ‘나트리움’을 상용화한 뒤 미국 전역에 소형원전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사 측은 소형원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소금탱크에 저장해놨다가 태양광·풍력발전이 날씨 등의 영향으로 멈춰 설 때 원전으로 만든 전력을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선박이나 가정집에 설치할 수 있는 초소형원전의 개발도 현재 진행형이다. 미 캘리포니아 소재 원전 발전회사 오클로(Oklo)는 1.5MW급 초소형원자로를 개발 중이다. 미국 원자력에너지연구소의 국가안보 담당 이사인 테드 존스는 "(대형) 원전시장이 처음 열릴 때와 비슷한 경쟁이 소형원전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 대형원전 건설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러시아 로사톰과 중국핵공업공사(CNNC)도 소형원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로사톰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 자사 RITM-200 소형원전을 짓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로사톰 측은 "소형원전은 기존 전력망과의 연결이 수월하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며,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 CNNC는 2025년 가동을 목표로 소형원전 건설에 착수했다.

유럽에서는 소형원전을 수소생산에 활용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세계 3대 항공기 엔진 제작 업체인 영국 롤스로이스는 지난해 말 "차세대 제트기 엔진 연료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으로 만들 것"이라며 2050년까지 약 45조원을 들여 소형원전 16기를 짓겠다고 밝힌 바 있다. 소형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추출한 뒤, 수소와 탄소를 합성해 새로운 항공기용 합성 연료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330MW급 다목적 일체형 원자로 SMART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어려움에 빠진 국내 원전업계도 소형원전 시장에서 수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앞서 한국원자력연구원은 3447억원을 투입해 개발한 330MW급 소형 원자로 SMART를 지난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한 바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탈원전으로 인한 전문인력 이탈과 원전 부품업체의 줄도산이 가속화될 경우 소형원전 연구개발(R&D)과 수출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원전업계 한 관계자는 "원전건설 능력이 없는 미국이 지금은 한국 기업과 협력해 신규 원전 건설에 나서고 있지만, 향후 시공 능력을 회복한 뒤에는 굳이 한국 기업을 찾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