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재확산으로 다음 달 예정됐던 제주도 여행을 취소한 김모(25)씨는 아쉬운 마음에 VR(가상현실) 여행 콘텐츠를 찾았다. 김씨는 "방에 불을 끄고 소리에 집중하면 마치 집에서 여행지로 순간 이동한 기분이 든다"며 "당분간 코로나 때문에 아무 데도 못 갈 것 같은데 VR 기기 대여 서비스도 신청해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기기 보급 실패, 콘텐츠 부족 등 높은 진입 장벽으로 대중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던 VR·AR(증강현실) 관련 산업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확산으로 이동이 제한되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VR·AR 등을 이용해 가상 현실로 여행을 떠나는 업체들의 서비스 상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KT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불 좀 꺼줄래? 여행 좀 떠나게’ 360 VR 영상 속 노르웨이 로포텐제도 오로라.

KT(030200)는 슈퍼 VR 플랫폼을 통해 160여 편에 달하는 가상여행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파리, 뉴욕 등의 하루를 경험하는 원데이 트립, 노르웨이 오로라 같은 전 세계 경관을 볼 수 있는 8K 콘텐츠 등 해외 여행지가 110여 편에 이른다.

국내 여행지로는 경복궁을 VR 카메라로 촬영하고 AR로 리포터를 띄운 ‘경복궁 궁궐기행’과 부산 해운대 바닷가와 동백섬을 드론으로 항공 VR 촬영한 ‘힐링 SKY 해운대’ 등 50여 편이 있다.

KT에 따르면 여행 관련 콘텐츠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가 본격화된 3월 이후 꾸준히 인기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달 슈퍼 VR 플랫폼을 통해 가장 많이 시청된 상위 20개 콘텐츠 중 4분의 1이 여행 관련물이다. KT 관계자는 "몰디브, 괌, 발리 등 대표적인 여름 휴양지 콘텐츠들이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며 "여름 바캉스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유튜브 채널 제주투브이알에 올라온 ‘VR여행 월정리 제주투명카약’편.

국내 여행 가상체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스타트업 디안트보르트가 만든 제주도 VR 체험 플랫폼 ‘제주투브이알’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용률이 10% 늘었다. 제주투브이알은 제주도의 약 200여 개 여행지를 360도 영상으로 제공하는데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을 깔거나 호텔 등에서 VR 기기를 빌려 ‘집콕’하며 제주도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제주투브이알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수는 이날 기준 5만건 넘었다. "집에만 있어서 답답할 때 제주도 바다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네요", "제주도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해서 사람들의 얘기만 듣고 상상했었는데 이렇게 VR을 통해서 여행갑니다" 등의 후기가 달렸다. 디아트로르트 관계자는 "코로나가 불안한 부모님들이나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이 가기 전에 미리 찾아보는 등 이용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며 "재확산 전에는 호텔 내 비치된 VR 기기가 전량 대여될 만큼 인기였지만 최근엔 위생 문제 때문에 다른 방면으로 VR 여행을 제공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 VR 업체 '퍼스트 에어라인'의 서비스 모습.

일본에서는 실제 항공기 안에서 VR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체험 시설이 인기다. 도쿄 시내 이케부쿠로 한복판에 위치한 ‘퍼스트 에어라인’이 그 주인공이다. 퍼스트 에어라인은 이름처럼 항공사가 아니라 VR 몰입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지난 2017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코로나19 확산 이후 VR 여행 예약이 약 50% 증가하는 등 특수를 누리고 있다.

VR 여행은 완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손님들은 에어버스 310, 340 등 실제 항공기 좌석에 앉아 이륙부터 승무원들의 안내, 기내식, 착륙 등 비행 체험을 할 수 있다. 목적지 도착 안내방송이 나오면 VR 기기를 착용하고 360도로 펼쳐지는 파리, 뉴욕, 하와이 등 도시를 여행하게 된다. 일등석 가격은 6580엔(약 7만3000원), 비즈니스석은 5980엔(약 6만5000원)으로 매번 만석이 된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코로나 장기화로 ‘집콕족’이 늘면서 국내 VR·AR 관광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코로나19 발생 전·후 미디어 기기별 하루 평균 이용량 변화율을 살펴본 결과 VR 기기의 이용량이 전년 대비 37.9% 증가하며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진흥원은 코로나 종료 이후에도 VR기기 하루 평균 이용량 증가율을 41.2%로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VR과 AR 콘텐츠를 즐기기 위한 하드웨어 가격이 매년 하락하고 있고, 통신사를 중심으로 콘텐츠 판매로 수익 모델을 창출하려는 흐름이 생기고 있다"면서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열풍이 불면서 다소 주춤했던 VR과 AR 시장이 더욱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