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최대 감염지역' 오명에 생활비도 매년 상승
사무실 위치 무관한 재택근무 확산 등 기업문화도 변화
'데카콘' 팔란티어 "굳이 실리콘밸리에 남을 이유 없다"

미 증시 상장을 앞둔 실리콘밸리 '데카콘(기업 가치 100억달러 이상 신생벤처기업)' 팔란티어 테크놀로지(Palantir Technologies)의 이전 결정은 코로나 대유행 이후 '실리콘밸리 엑소더스'의 본격화를 알리는 신호다.

기업들의 재택 근무 확대에도 비싼 집값과 임대료, 코로나 누적환자 최다 지역이라는 오명 속에 캘리포니아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흐름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미 정보기관 및 군사기관을 주요 고객으로 둔 실리콘밸리 빅데이터 분석업체 팔란티어가 본사를 이전한다. 이 회사는 25일(현지 시각) 뉴욕증시 직상장을 신청했다. 사진은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최고경영자.

26일(현지 시각) 미 경제전문매체 CNBC는 지난 2004년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서 창업한 빅데이터 분석업체 팔란티어가 최근 콜로라도주 덴버로 본사를 이전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최고경영자(CEO)는 CNBC에 "팔로알토를 떠나 덴버 지역으로 본사를 옮기기로 했다"며 "이미 이전 등록 절차를 마쳤으며 실제로 이전하는 과정만 남았다"고 밝혔다.

그는 전날 팔란티어가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직상장을 신청한 뒤 투자자들에 보낸 메시지에서 "실리콘밸리의 기술 엘리트들은 사회가 어떻게 조직돼야 하는지, 정의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지 못한다"며 "기술 부문의 가치와 정의에서도 실리콘밸리의 이질적인 스타트업 문화와는 공유할 것이 점점 더 없어진다"고 했다.

이 회사의 주요 고객은 CIA(중앙정보국), FBI(연방수사국), NSA(국가안보국) 등의 정보 부처다. 미국 정부의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을 비롯해 테러 등 민감한 분야의 빅데이터를 제공했다. 업계에선 수년 전부터 이미 기업 가치가 100억달러를 넘는데도 상장하지 않은 '최상위 데카콘(Decacorn)'으로 유명했다. 현재는 뉴욕증시 직상장을 추진 중이다.

그런 팔란티어가 16년 간 머문 실리콘밸리 탈출을 선언한 것이다. CNBC는 "미국에서 가장 비싸고 은밀한 빅데이터 분석 업체 팔란티어의 실리콘밸리 이탈을 계기로 더 많은 회사와 노동자들이 값비싼 대도시 생활 필요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 물가만 올라 창업 환경 악화..."비싼 생활비 감당 안해"

팔란티어의 이번 결정은 미국이 코로나 2차 확산과 싸우는 가운데 나왔다.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원격업무 확산으로, 사무실의 위치나 규모와 상관 없이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입장에선 비싼 사무실 임대료나 생활비를 감당할 필요가 없어졌다.

실제 팔로알토와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 실리콘밸리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2004년 팔란티어 창업 당시보다 2배 가까이 올랐다. 반면 덴버의 사무실 임대료는 팔로알토의 3분의 1 정도 저렴하다. 법인세율도 4%대로 캘리포니아의 절반 수준이다. 대기업인 구글, 페이스북, 슬랙 등 유명 기술기업도 이미 덴버에 지역 사무실을 뒀다.

미 부동산 정보업체 질로우(Zillow)에 따르면, 덴버를 비롯해 애리조나주 피닉스, 텍사스주 오스틴 소재 주택들이 최근 몇 달 간 미국 전 지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질로우는 지난 1일 기준 이 지역 내 주택가격이 전년 대비 6.6% 상승한 반면, 캘리포니아주 주요 도시 5곳의 전세값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정보기술(IT) 스타트업 중에서도 실리콘밸리가 아닌 뉴욕 등 동부 지역 거점 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WSJ은 "코로나 국면에서 캘리포니아가 보인 감염 위험과 비싼 물가 등을 고려할 때, 높은 비용을 감수하고 이 지역에 입성해야 할 필요가 적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제 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이날 기준 미국의 코로나 누적 환자는 600만365명이다. 이중 캘리포니아에서 68만7500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미국 전 지역 중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캘리포니아에 이어 텍사스(62만1673명), 플로리다(60만8722명), 뉴욕(46만2294명), 조지아(26만5990명), 일리노이(22만7044명) 순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