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부동산 대출 규제에 적용하는 주택 시세 기준을 KB국민은행에서 한국감정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아파트 매수를 앞둔 이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통상 KB보다 감정원 시세가 보수적으로 책정되다보니 감정원 기준을 사용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가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 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은혜 미래통합당 의원이 "주택 시세를 발표할 때는 감정원 자료를 쓰는데, 대출 규제에는 KB 자료를 활용하는 등 기준이 일정치 않다"고 지적하자 "앞으로 감정원 시세를 중심으로 정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후 국토부는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김 장관의 답변은 신뢰성 있는 통계를 일관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주택 매입을 앞둔 이들의 불안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한 소비자는 부동산 관련 온라인 카페에 "KB 시세를 토대로 주택담보대출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계산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돈을 마련했다는 뜻)’ 계약했는데, 감정원 기준으로 할 경우 주담대 금액이 낮아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감정원 시세로 담보 가치 산정법을 일원화하는 것은 은행업 감독규정 시행세칙을 수정하면 가능하다. 현재 시행세칙은 담보 가치 산정 기준으로 국세청 기준시가, 감정평가업자 감정평가액, 한국감정원 가격, KB 시세 등 네가지를 제시한다. 지금은 은행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이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지만, 시행세칙에 감독원 기준만 남으면 은행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구 아파트 단지.

◇감정원 대비 높은 KB 시세… 표본 많고 조사 주기 짧아

주담대 한도 하락에 대한 걱정은 통상 감정원 시세가 KB 대비 낮게 책정돼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마포자이아파트 전용 84.69㎥를 예로 들면, 현재 KB 시세는 일반평균가 14억8000만원에 책정돼 있다. 그러나 감정원은 하위평균가 14억원, 상한평균가 15억원으로 일반평균가 14억5000만원으로 KB보다 3000만원 낮다.

KB가 감정원보다 시세가 높은 데 대해 일각에서는 KB가 ‘호가’를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KB 측은 호가는 반영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마포자이아파트 해당 면적의 호가는 현재 16억원으로, KB보다 1억원 이상 높다. 다만 감정원은 신고된 실거래 가격을 전문조사원과 감정평가사 등이 직접 조사하고 책정하는 것과 달리, KB는 전국 공인중개사가 직접 실거래 가격을 입력하는 시스템이다. 아직 거래가 발생하지 않은 단지의 경우 현 상황에서 거래 가능한 금액을 입력한다.

여기에 KB는 표본이 아파트만 3만1800호로 감정원(1만7190호)의 2배에 달하는데다, 실거래가 업데이트 주기도 감정원 대비 빠른 편이다. KB는 3만1800호의 아파트 실거래가를 매주 업데이트하지만, 감정원은 아파트 9400호만 주간 업데이트가 된다. 나머지 아파트는 연립·다세대, 단독주택과 함께 매달 업데이트 하는 구조다. 은행권 관계자는 "시중은행 모두 주택 관련 대출을 실행할 때 KB 시세를 사용한다"며 "KB가 현 시세를 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길우

◇15억 미만 아파트 주담대 한도 축소… "정확한 통계 산출이 우선"

이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승장에서 시세 기준이 KB에서 감정원으로 전환되면 15억원 이하 아파트 매입을 앞둔 소비자의 주담대 한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의 주택 담보인정비율(LTV)은 시세 9억원 미만은 40%, 9억원 이상은 20%로 책정돼 있다. 서울 아파트 중 시세 15억원 초과하는 곳은 아예 대출이 금지돼 있다. 현재 15억원 초과 여부를 따질 땐 감정원과 KB 중 더 높은 가격을 기준으로 본다.

노원구 하계동 현대아파트 전용 71.68㎥를 예로 들면, KB 기준 7억2500만원이라 2억9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4억3500만원은 직접 마련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감정원 기준으로는 주택 가격이 6억9000만원에 불과해 대출액도 1억7250만원으로 낮아진다. 즉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하는 돈도 늘어나는 셈이다. 현재 이 아파트 해당면적 매물이 8억원까지 나와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비자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다만 14억~15억원대에 형성돼 있는 아파트는 감정원 기준이 오히려 유리하다. KB 시세로는 15억원이 넘어도 감정원 기준으로는 14억원대가 나올 수 있어 기존 대출 전면 금지 대상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가격 하락폭이 큰 시기에도 감정원 기준이 나을 수 있다. KB 대비 하락세가 다소 늦게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서는 KB, 감정원 중 양자택일할 문제가 아니라 시세를 제대로 반영한 통계를 마련하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제 매매가와 통계상 시세간 괴리가 벌어지면 그만큼 대출 한도가 줄어들고, 이 경우 소비자의 자금 조달 애로는 더욱 커질 수 있다"며 "현실을 시시각각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통계를 만든 뒤 시세 기준을 논의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