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연구진, 항체 없이 '기억 T세포'에 의한 면역반응 사례 확인
지난달 글로벌 백신 개발사 실험서도 일부 확인… WHO "고무적"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파란선)와 T세포(빨간선) 면역반응 결과 양성을 보인 피실험자 비율. 중증 회복기 환자(severe) 그룹에서는 전원이 양쪽 모두 면역반응을 보였지만, 경증·무증상 회복기 환자가 포함된 나머지 그룹에서는 항체 없이 T세포 면역반응만 보이는 피실험자들도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증과 무증상 환자는 회복 후 몸속에 중화항체가 생기지 않아도 면역이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17일(현지시각) 논문 소개사이트 ‘유레칼러트(eurekalert)’에 따르면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연구진은 체내 중화항체가 검출되지 않은 경증·무증상 회복기 환자들에게서 ‘기억 T세포’에 의한 강한(robust) 코로나19 면역반응을 확인했다고 지난 14일 국제 학술지 ‘셀(Cell)’에 발표했다.

중화항체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스파이크(돌기) 단백질과 결합해 감염력을 없애주는 단백질이다. 중화항체 보유 여부가 코로나19 면역 획득 여부를 결정한다고 알려져있다. 현재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대부분은 체내 항체 형성을 유도하는 기전을 가졌다. 무증상자를 포함한 실제 감염 규모나 인구 집단면역 수준을 가늠할 때도 항체 검사가 이용된다.

기억 T세포는 이와 별개의 면역 성분이다. 바이러스를 직접 죽이는 방식 등으로 면역 기능을 수행하는 T세포의 한 종류로, 한번 몸속에 침입했던 바이러스를 기억했다가 재침입 시 빠르게 활성화돼 대응하는 역할을 한다. 유레칼러트에 따르면 코로나19와 비슷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항체 없이 기억 T세포만으로도 면역을 갖출 수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나왔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한 연구결과가 없다.

연구진은 기억 T세포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면역반응을 하는지 항체와 비교 실험했다. △코로나19 중증을 앓다가 회복 중인 환자 △경증을 앓다가 회복 중인 환자 △환자에 노출됐던 가족 △팬데믹 시기(올해)의 건강한 사람 △팬데믹 전(작년)의 건강한 사람 등 206명의 피실험자를 5개 그룹으로 나눴다. 이들의 혈액을 채취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와 기억 T세포 각각의 면역반응 여부를 확인했다. 환자에 노출됐던 가족과 팬데믹 시기의 건강한 사람 중 일부는 무증상 감염 후 회복됐을 것으로 여겨지며, 팬데믹 전의 건강한 사람은 코로나19에 대한 아무런 면역을 갖추지 못했을 대조군으로 설정됐다.

그 결과 예상대로 중증 회복기 환자는 23명 전원이 항체와 기억 T세포 모두 면역반응을 보였고 대조군 피실험자는 전원 아무런 면역반응이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증과 무증상 환자가 포함돼있는 나머지 세 그룹에서는 항체 없이 기억 T세포 면역반응만을 보이는 경우가 관찰됐다. 세 그룹 피실험자 총 90명 중 각각 항체, 기억 T세포 면역반응을 보인 사람 수는 48명, 65명으로 기억 T세포 쪽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피실험자 중 재감염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우리 몸이 항체 없이도 기억 T세포를 통해 코로나19에 면역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바이러스로부터 신체를 얼마나 오랫동안 보호할 있을지는 후속 연구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고 연구진은 말했다. 이번 실험에서는 감염 후 수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기억 T세포가 검출됐다.

최근 글로벌 백신 개발사들도 이와 관련한 실험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지난달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는 백신 1단계 임상실험 결과 접종자 전원에게서 중화항체와 T세포가 형성됐다고 의학저널 ‘랜싯(Lancet)’에 발표했다.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도 지난달 백신 실험에서 T세포 반응을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항체뿐만 아니라 T세포 반응까지 나타났다는 점에서 이들 결과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스웨덴 연구진은 현지에서 실시된 집단면역 실험과 관련해 "항체에 의존한 면역반응 검사가 인구의 집단면역 수준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