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Nvidia)가 ARM 단독 인수에 가까워졌다는 영국 현지 보도가 나왔다. ARM은 영국에서 설립된 기업으로 일본 소프트뱅크가 경영권을 갖고 있다. ARM은 모바일 기기에 쓰이는 모바일AP를 사실상 독점 설계하는 회사다. 매각 금액은 최대 400억파운드(약 62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016년 7월 ARM 인수 소식을 알리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지난 15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지역지 이브닝 스탠더드는 소식통을 인용해 "소프트뱅크가 엔비디아와 ARM 매각을 위한 단독 협상에 돌입하고 올 여름 안에 거래를 마칠 것"이라며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매각 대금으로 400억파운드 가량을 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식이 알려진 후 미국 증시에서 지난 17일 엔비디아 주가는 6% 이상 뛰었다.

ARM은 1990년 영국 캠브리지에서 설립된 회사다. 모바일 기기에 쓰이는 저전력 CPU(중앙처리장치) 대다수가 ARM 설계를 기반으로 한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 ARM을 320억달러(약 38조원)에 인수했다. 당시 손 회장은 "바둑으로 치면 50수 앞을 내다보고 인생 최대의 베팅을 했다"는 소회를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ARM은 소프트뱅크가 75%, 자회사 비전펀드가 25% 지분을 지니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최근 위워크 등 스타트업 투자 실패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큰 타격을 입고 ARM을 매물로 내놨다. 매각주관사는 골드만삭스로, 그간 엔비디아를 비롯해 애플, 삼성전자, 퀄컴 등이 인수 대상자로 거론돼 왔다.

엔비디아는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제조사다. GPU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데이터센터와 빅데이터 분야에 널리 쓰이며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GPU 판매 증가는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NVIDIA) 창립자 겸 CEO.

엔비디아는 올 1분기(2~4월) 매출 30억800만달러(약 3조8000억원)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9% 늘어난 수치다. 이 기간 주당순이익은 1.47달러로 2배 늘었다. 실적 개선에 주가도 상승하며, 최근 엔비디아는 인텔을 넘어서 미국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엔비디아는 호실적을 바탕으로 사세 확장에 열심이다. 지난 4월엔 고성능 네트워크 기술을 보유한 멜라녹스 테크놀로지(Mellanox Technologies)를 70억달러(약 8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이어 지난 5월엔 데이터센터(SDDC) 솔루션 기업인 큐물러스 네트웍스(Cumulus Networks) 인수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만 엔비디아가 50조원을 넘어서는 ARM 인수대금을 마련한다 해도 여전히 장애물은 남아 있다. 초대형 인수합병(M&A)인 만큼 영국과 일본 정부가 이를 승인할지가 관건이다. 앞서 미국 퀄컴 또한 네덜란드 반도체 회사 NXP를 440억달러(약 50조원)에 인수하려다 중국 등의 주요국 승인을 받지 못해 실패한 바 있다. 이브닝 스탠더드는 "영국은 브렉시트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일본과 무역 협상을 진행하고자 한다"며 "ARM 매각 여부가 양국 정부간 무역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