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업계는 다음 달 22일 열리는 테슬라의 기술 및 투자 설명회인 ‘배터리의 날(Battery Day·배터리데이)’에서 테슬라가 무엇을 공개할 지 주목하고 있다. 여러 관측이 나오지만, 가장 가능성 높은 전망 중 하나는 중국 CATL과 함께 개발한 이른바 ‘100만마일(160만km)’ 배터리가 공개된다는 것이다. 전기차에 한번 탑재되면 100만마일까지는 성능을 보장하기 때문에 사실상 반영구적이고, 차량이나 배터리의 재활용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파나소닉이 개발한 고에너지밀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 ‘2170’의 대량 생산을 발표하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이 지난 1월 중국 상하이에서 테슬라의 사업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테슬라의 신기술 발표회에서 배터리가 주인공 역할을 맡는 이유는 전기차에서 배터리는 내연기관차에서 엔진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차의 핵심 경쟁력이 엔진인 것처럼, 배터리는 전기차 성능을 좌우한다. 경쟁 방향은 1회 충전 시 최대 주행거리, 수명, 배터리 가격, 충전 시간 등에 맞춰져 있다. 전기모터를 사용해 가속력이 빠르고 출력 향상이 용이하다.

◇고가 소재 빼고, 생애주기비용 줄이고

테슬라가 이번에 발표하는 두 건의 기술의 핵심은 전기차를 지금보다 더 싸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동일 가격대에서 타 업체 대비 한 단계 뛰어난 성능을 갖춘 제품을 내놓아 경쟁 우위를 유지한다는 전략이 깔려있다. 애플이 스마트폰 사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방식이다.

테슬라 중국 공장.

2170의 가장 큰 특징은 양극재에 사용되는 고가 금속인 코발트 사용량이 대폭 줄었다는 것이다. 현재 LG화학(051910), SK이노베이션(096770), 삼성SDI(006400)등이 생산하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 대비 코발트 사용량이 대폭 낮은 게 특징이다. 파나소닉 관계자는 "2~3년 내로 ’2170’ 배터리에서 코발트를 아예 쓰지 않을 것"이라며 ‘코발트 없는 배터리’가 조만간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파나소닉은 이 제품의 에너지밀도가 기존 자사 제품 대비 5% 이상 높였다고 발표했다. 파나소닉은 2170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2024년까지 기존 제품 대비 20% 이상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코발트는 양극재 소재로 양극재의 10~20% 정도를 차지하는 데, 다른 양극재 소재보다 가격이 비싸다. 올 상반기 가격 기준으로 코발트는 톤 당 3만900달러로 니켈(톤 당 1만2400달러)의 2.5배, 망간(톤 당 1200달러)의 25.4배에 달한다. 또 코발트를 줄이고 대신 니켈 비중을 높일수록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다. 반응이 안정적으로 일어나게 하는 일종의 감속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코발트 사용을 줄일수록 배터리 가격 하락과 주행거리 증대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전기차 업계는 파나소닉제 배터리가 대량 생산되면 테슬라 전기차의 1회 충전시 주행거리가 400마일(650km)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차용 배터리 가격 추이 및 향후 전망.

100만마일 배터리는 반영구적으로 배터리를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의 수명은 통상 10만~20만마일(16만~32만km) 정도다. 이 정도 거리를 주행하면 배터리를 바꿔야 한다. 개인이 사용하는 승용차라면 문제가 없지만, 택시·버스·트럭 등 장거리 주행을 해야 하는 상용차량의 경우 경제성에 큰 걸림돌이다. 또 배터리의 반영구적 사용이 가능해지면 배터리 재활용이나 임대 사업 등을 펼치기 수월하다. 생애주기비용을 대폭 끌어내릴 수 있는 셈이다. 테슬라는 중국 CATL과 손잡고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방식으로 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리튬인산철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는 낮다는 단점이 있지만, 큰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는 셈이다.

◇양극재·음극재 소재 경쟁

2차 전지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의 4가지 구성 부분으로 나뉜다. 산화·환원 반응을 통해 음극재에서 전자가 양극재로 이동하는 데, 둘 사이에 분리막을 끼우고 전해질을 채워넣은 구조다. NCA, NCM, LFP 등은 양극에 어떤 금속 소재를 사용하느냐를 놓고 붙여진 이름이다. 양극재에는 이밖에도 전기가 잘 흐르도록 하는 도전재와, 도전재 등이 달라붙도록 한 바인더 등이 쓰인다. 음극은 구리를 기반으로 해서 겉 부분에 흑연을 씌우게 된다. 전해질은 육불화인산리튬(LiPF6) 등의 전자와 이온이 이동하기 쉬운 화학물질이 쓰인다. 분리막은 합성수지 소재다.

배터리(2차 전지) 구조.

현재 소재 경쟁이 가장 치열한 영역을 꼽자면 양극재다. 특히 양극재 소재에서 코발트 사용을 줄이고, 니켈 비중을 높인 이른바 ‘하이니켈’ 양극재의 상용화를 놓고 2차 전지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또 도전재에 탄소나노튜브를 사용하는 것도 에너지밀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LG화학이 양극재 소재에 알루미늄을 더한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배터리를 내년에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GM(제너럴모터스)가 캐딜락 리릭(Lyriq) 등 내년에 출시하는 신형 전기차용 배터리다. 이 제품은 코발트 비중을 10% 이하로 줄이고 대신 알루미늄을 사용한다. 더그 파크스 GM 부사장은 "100만 마일 주행이 가능한 배터리 개발이 거의 다 끝나간다"며 배터리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린 기술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NCM 양극재 내에서 니켈 비중을 현 80% 수준에서 90%로 높인 제품을 2023년에 양산할 계획을 잡고 있다. 미국 포드에 납품하는 용도다.

양극재 소재에 따른 배터리 분류와 특성.

양극 활물질로 탄소나노튜브(CNT)를 사용하는 기술은 이미 지난 4월 LG화학이 대대적인 생산설비 확장에 나서면서 향후 수요 증가를 예고하고 있다.

음극재의 경우 현재 쓰이는 흑연 대신 실리콘을 사용하는 기술이 유망하다. 실리콘의 분자 구조가 흑연보다 더 많은 전자(리튬 이온을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화학반응이 일어나도 부피 등 물성에 큰 변화가 없는 흑연과 달리 부피가 많이 변하고, 안정적인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현재 5~15% 정도 실리콘을 첨가제 형태로 넣는 경우가 많다"며 "탄소나노튜브와 실리콘의 복합재를 만드는 등 소재 부분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음극재에서 탄소나노튜브 사용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로 LG화학이 포르쉐에 공급한 배터리에는 음극재에 탄소나노튜브를 일부 사용했다.

배터리 주요 구성 부품의 향후 발전 전망.

업체, 자체 기술 확보·장기 파트너십 주도권 확보 행보

자동차 회사들은 배터리 부문에서 주도권 확보를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동차 경쟁력의 핵심인 데다, 자체 기술력이 없으면 배터리 회사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스마트폰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만들거나, 또는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나섰던 것과 비슷한 행보다.

자동차 강국이었던 유럽에서 배터리 회사 육성에 나선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2019년 9월 스웨덴 배터리회사 노스볼트와 리튬이온 배터리 대량생산을 위한 합작사를 설립했다. 합작사는 독일 잘츠기터에 16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 이르면 2023년부터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노스볼트는 BMW와 20억유로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프랑스 PSA의 자회사인 오펠은 지난 2월 독일 남서부에 24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이 공장은 2023년부터 가동에 들어가는 데, 연 50만대 정도의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다. BMW와 PSA는 EU(유럽연합)과 독일·프랑스 정부에 배터리 생산 컨소시엄에 보조금을 지급해달라고 요청했다.

독일 배터리회사 아카솔(AKASOL)의 배터리 연구시설.

배터리 업체와 장기 협력 관계를 구축하면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행보도 활발하다. 연 수십만대를 생산하는 자동차 회사가 배터리 업체를 선정, 기술 협력과 자금 지원을 통해 선행 기술의 조기 양산을 돕는 방식이다. 배터리 업계 또한 기술력을 갖춘 회사가 몇 없기 때문에 상당한 주도권을 쥔다. 현대차가 LG화학과 HL그린파워라는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 합작 법인을 만든 게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이 밖에도 SK이노베이션을 내년에 생산하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기반 차량 ‘아이오닉5’ 등의 배터리 공급사로 정해 공급선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LG화학과 GM과의 장기 협력 관계도 또다른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