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장 장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각종 수해 뿐만 아니라 유실 지뢰 위험도 커지고 있다. 전방에서 산사태로 인해 이미 유실 지뢰가 발견됐고, 남부 지방에서 계속된 폭우로 그동안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후방 지역도 지뢰 피해를 걱정해야 될 상황에 놓였다.

지난 8일 전북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 금곡교 인근 섬진강 제방이 무너져 강물이 도로 위로 차오르고 있다.

11일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폭우가 열흘간 이어지면서 전국적으로 718건의 산사태가 발생했다. 집중호우로 서울 우면산이 무너진 2011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이번 폭우로 유실·매몰된 농경지만 2만6640ha(헥타르)에 달한다. 도로·교량 4348개소, 하천 561개소, 저수지·배수로 221개소도 파손되거나 유실됐다. 최전방 군사분계선 철책 7km도 물에 휩쓸렸다.

홍수와 산사태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자, 유실 지뢰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9일에는 강원도 철원과 화천 일대에서 3개의 M14 대인지뢰가 발견돼 군 당국이 긴급 수색에 나섰다.

최전방 지역 뿐 아니라 북한과 멀리 떨어진 후방 지역으로도 유실 지뢰 공포가 퍼지고 있다. 후방 지역 역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등산로나 산책로 인근에 아직 제거하지 못한 유실 지뢰 수천개가 남아있는데, 이번 폭우에 휩쓸려 산길 곳곳에 흩어졌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합동참모본부(합참)에서 제출받은 ‘후방 방공기지 지뢰제거 현황’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군은 1960년부터 1980년까지 군사기지 방어를 위해 전국 37개 방공기지 주변에 대인지뢰 5만3020개를 설치했다. 등산을 오거나 나물을 캐러온 민간인들이 기지 주변에서 지뢰를 밟는 사고가 잇따르자,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약 10년간 매설된 지뢰 5만개를 제거했다.

그러나 여전히 유실된 3020개의 지뢰는 회수하지 못한 상태다. 서울 우면산을 포함해 경북 성주, 경남 김해, 부산 해운대, 울산, 경기 성남 등 전국 37곳, 산길 곳곳에 3020개의 지뢰가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십년간 수십차례에 걸친 폭우와 산사태 등으로 유실지뢰 위치가 계속 바뀌었기 때문에 현재로선 대략적인 위치 파악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후방에 묻힌 유실 지뢰 대부분은 ‘발목지뢰’로 불리는 M14 대인지뢰다. 지름이 5.5cm 안팎으로 작은 데다, 물에 잘 뜨는 플라스틱으로 제작돼 폭우에 휩쓸리면 멀리까지도 떠내려갈 수 있다. 또 금속이 아니기 때문에 탐지도 쉽지가 않다. 지뢰탐지기로 잘 잡히지 않기 때문에 지뢰가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의 땅 속을 모두 파헤치는 방식 밖에는 찾아낼 방법이 없다.

조재국 평화나눔회(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 이사장은 "3000개의 유실지뢰가 산사태와 폭우 때마다 토사에 쓸려 이동하고 있지만, 이를 추적해 제거할 마땅한 대책이 없어 방치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장마가 끝난 이후 군부대 인근 산길을 오르는 등산객들은 유실 지뢰를 밟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평화나눔회에 따르면 한국전쟁 휴전 이후 신고된 ‘민간인 지뢰피해자’는 총 608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239명, 부상자는 369명이다. 지난달에는 경기 고양시 김포대교 인근에서 낚시를 하던 주민이 유실된 M14 지뢰를 발견해 줍던 중 가슴 부위로 파편이 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