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 집에서 영화를 보면서 즐길 수 있는 와인을 찾아보자.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피서지를 찾아 멀리 떠나는 것도 좋지만 여유로운 휴식을 위해 방캉스(집에서 즐기는 휴가)나 호캉스(호텔에서 즐기는 휴가)를 선택하는 사람도 많다. 느긋한 영화 감상이야말로 방캉스나 호캉스의 백미. 여기에 와인 한 잔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이왕이면 영화도 와인을 소재로 한 것이라면 어떨까. 영화 다섯 편과 함께 각 영화 별로 추천 와인을 세 가지씩 선정해 보았다. 와인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 생산된 것 중에서 소비자가 5만원 이하를 기준으로 했다. 와인과 함께 영화를 즐기며 세계 각국의 와인 산지로 마음의 여행을 떠나보자.

1.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2018년에 개봉한 작품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맞아 집을 떠났던 큰 아들이 돌아오고 오랜만에 세 남매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다시 확인하게 되는 가족애, 그리고 와인에 대한 열정. 잔잔하게 영화가 이어지는 동안 세 남매의 어린시절 추억이 등장한다. 와인을 가르쳐 주시던 아버지, 뛰어놀던 포도밭 등. 필자는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뒷줄에 앉아 있던 관객 한 분이 감동적인 장면을 보다 조용히 흐느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은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뫼르소(Meursault)라는 마을이다. 부르고뉴는 피노 누아로 만든 섬세한 레드 와인과 샤르도네로 만든 우아한 화이트 와인이 유명한 곳이다. 뫼르소는 특히 화이트 와인으로 더 이름이 나있다.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과 함께 부르고뉴 와인 한 잔 음미해 보자.

부르고뉴 와인들.

루이 자도, 부르고뉴 샤르도네 (35,000원)
사과, 레몬, 자몽 등 과일향이 신선하고 은은하게 올라오는 바닐라와 버터 풍미가 부드러운 질감과 어우러져 우아함을 자랑한다. 여운에서는 아몬드와 호두 같은 견과류 향이 살짝 느껴진다. 튀김이나 치킨 같은 야식과 즐겨도 좋다.
부샤 뻬레 에 피스, 부르고뉴 피노 누아 (48,000원)
산딸기, 체리, 라즈베리 등 다양한 베리류가 뒤섞인 듯한 향긋함이 매력적이다. 타닌이 강하지 않고 질감이 매끈하며 상큼한 신맛이 입맛을 돋운다. 살짝 느껴지는 후추 같은 향신료 향이 복합미를 더한다. 안주가 필요하다면 냉동 만두를 구워 보자.
부샤 에네 엔 피스, 마꽁 빌라쥐 (50,000원)
향긋한 꽃내음과 함께 잘 익은 레몬, 자몽, 복숭아, 살구 등 과일향이 달콤하다. 보디감이 묵직하지만 신맛이 상큼해 와인이 경쾌하다. 육류, 해산물 가리지 않고 어떤 안주와도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중국 음식을 배달시켜 보면 어떨까?

2. 어느 멋진 순간

영화 ‘어느멋진 순간'.

프랑스 남부를 배경으로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든 영화다. 스콧 감독은 프랑스 남부에 별장을 둘 정도로 와인 마니아라고 한다. 그런데 우연히 이웃으로 만난 사람이 피터 매일(Peter Mayle), 바로 영국 출신 소설가다. 어린 시절을 프로방스에서 보낸 소설가 매일도 와인 애호가다 보니 둘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고, 이것을 계기로 스콧 감독은 매일의 작품 'A Good Year'를 영화화했다.
이 영화는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다. 에일리언,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등 대작을 주로 만든 스콧 감독의 영화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액션 배우로 명성이 높은 러셀 크로우의 부드러운 연기를 보는 것도 큰 재미 요소다. 피도 눈물도 없는 증권맨이 아름다운 자연과 따뜻한 이웃에 녹아드는 과정을 지켜보며 내 삶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된다.

프랑스 와인들.

이기갈, 꼬뜨 뒤 론 화이트 (30,000원)
복숭아, 멜론, 망고 등 과일향이 달콤하고 아카시아 같은 꽃향이 우아하다. 질감이 묵직하며 신맛이 강하지 않아 부드러운 와인을 좋아하는 우리 입맛에 딱 맞는 스타일이다. 다양한 야식과 두루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
들라스, 벙뚜 (43,000원)
입안을 가득 채우는 바디감이 만족감을 선사하는 레드 와인이다. 갖가지 붉은 베리들이 뒤섞인 듯 과일향도 풍부하다 적당한 타닌이 와인에 구조감을 더해 힘과 우아함을 모두 갖췄다. 육류 요리와 즐기기 좋다.
마레농, 페투라 (48,000원)
향긋하고 부드러운 로제 와인이다. 딸기, 라즈베리 등 과일향이 신선하고 향긋한 장미와 톡 쏘는 향신료 향이 매력적이다. 생산지가 프랑스 남부 뤼베롱(Luberon)인데,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햄, 치즈, 올리브 등 가벼운 안주와 즐기기 좋다.

3. 레터스 투 줄리엣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

작가 지망생인 소피(아마다 사이프리드)는 사랑의 아픈 사연을 남기는 '줄리엣의 발코니'에서 우연히 50년 전 러브레터를 발견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늦은 답장을 보냈는데, 편지를 썼던 할머니와 손자가 찾아온다. 셋은 할머니의 첫사랑을 찾아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에서 중부 토스카나까지 먼 여행을 떠난다. 할머니는 과연 첫사랑과 재회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는 국토 전역이 와인 산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에 계속 등장하는 토스카나의 드넓은 포도밭과 파란 하늘은 보는 내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토스카나 와인과 함께 영화 속 토스카나로 여행을 떠나보자.

이탈리아 토스카나 와인들.

루피노, 일레오 키안티 수페리오레 (39,000원)
체리, 블루베리, 자두 등 과일향이 신선한 레드 와인이다. 후추 같은 향신료 향도 느껴진다. 타닌이 거칠지 않고 부드러워 마시기에도 편하다. 여운에서는 과일향이 오래도록 입안을 맴돈다. 햄, 치즈, 올리브 등 간단한 안주와 즐겨보자.
프레스코 발디, 르몰레 화이트 (43,000원)
풍부한 과일향과 향긋한 꽃향의 조화가 매력적이다. 잘 익은 복숭아의 달콤함이 느껴지고 바질이나 타임 같은 허브향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무게감이 적당하고 구조감도 탄탄해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다양한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린다.
까르피네토, 오리지날 토스카노 (50,000원)
잘 익은 체리와 자두 향이 풍성하고 마른 허브와 가죽 향이 살짝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레드 와인이다. 보디감이 입안을 채우고 신맛이 과하지 않아 잘 잡힌 균형미가 느껴진다. 육류 요리와 즐기기 좋은 와인이다.

4. 와인 미라클

영화 ‘와인미라클'.

1976년에 있었던 '파리의 심판'은 미국 와인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린 큰 사건이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진행된 프랑스와 미국 와인의 대결에서 레드, 화이트 모두 미국이 승리를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와인 미라클은 이때 미국 화이트 와인으로 1위를 차지한 샤토 몬텔레나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변호사를 그만 두고 와인에 올인한 아버지. 와인에 대한 철학이 달라 아버지와 갈등을 겪는 아들. 하지만 와인에 대한 열정만큼은 부자가 모두 같은 마음이다. 최대한 와인을 안전하게 프랑스로 가져가기 위해 같은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들에게 와인 한 병씩 운반해달라고 부탁하는 아들의 모습은 순박하지만 열정적이다. 미국 와인의 성장기를 심각하지 않고 유쾌하게 그린 영화다.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들.

켄달 잭슨, 아방트 샤르도네 (32,000원)
상큼한 사과, 레몬, 자몽 그리고 달콤한 열대과일까지. 이 와인의 가장 큰 매력은 아낌없이 뿜어내는 과일향이다. 신선하고 경쾌해 더위에 지친 입맛을 되살리는 데에도 그만이다. 다양한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덕혼, 포스트마크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35,000원)
진한 루비빛 색상이 매혹적이고 벨벳처럼 부드러운 질감이 고급스럽다. 블랙베리, 블랙커런트, 자두 등의 달콤한 과일향이 나파 밸리의 찬란한 햇살을 연상시킨다. 바이올렛 꽃과 다크 초콜릿 향은 와인에 복합미를 더한다. 육류와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
로버트 몬다비, 프라이빗 셀렉션 진판델 (45,000원)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란 진판델로 만든 와인이다. 잘 익은 딸기 등 과일향이 가득하고 삼나무 향의 은은함과 흑설탕의 달콤함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살짝 단맛이 있어 평소 와인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스타일이다.

5. 사이드웨이

영화 ‘사이드웨이'.

와인을 소재로 한 영화 중 가장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다. 결혼을 앞둔 친구와 총각 파티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 친구는 결혼 전 마지막으로 여자를 꼬시기에 바쁘지만 와인 애호가인 주인공은 오로지 와인에만 관심이 있다. 이혼의 아픔과 쓰고 있는 소설이 잘 되지 않아 심난한 주인공은 유독 피노 누아 와인에 집착한다.
우연히 시골 바에서 일하는 마야에 관심을 갖게 된 주인공. 마야가 영화 속에서 한 말 "특별한 날에 소중한 와인을 여는 것이 아니라, 그 와인을 여는 날이 특별한 날이 되는 거에요."는 명대사로도 유명하다. 이 영화가 개봉된 뒤 미국의 피노 누아 와인이 품절 사태를 겪기도 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삶이 조금 힘들 때 보면 힘을 되는 영화 사이드웨이. 미국산 피노 누아 와인과 함께 즐기면 감동이 배가 될 것이다.

미국 피노 누아 와인들.

롱반, 피노 누아 (24,000원)
라즈베리, 딸기, 체리 등 과일향이 풍부하고, 바닐라와 계피 같은 향신료 향이 복합미를 더한다. 경쾌한 질감과 달콤한 과일향의 밸런스가 뛰어나다. 저렴한 가격이 믿기지 않을만큼 가성비가 좋은 와인이다. 안주가 필요하다면 바비큐 치킨을 주문해 보자.
로버트 몬다비, 프라이빗 셀렉션 피노 누아 (45,000원)
캘리포니아 해안의 서늘한 지역에서 자란 피노 누아로 만든 와인이다. 신선한 과일향이 와인의 적당한 무게감과 어울려 맛과 풍미가 고급스럽다. 제비꽃, 담배, 바닐라 등 다양한 향미가 복합미를 더하고 여운에서는 잘 익은 체리향이 오래도록 이어진다.
랭, 윌라멧 밸리 클래식 피노 누아 (45,000원)
미국의 대표적인 피노 누아 산지인 오리건 주의 윌라멧 밸리에서 생산된 와인이다. 체리, 라즈베리 등 과일향과 함께 홍차, 삼나무, 제비꽃 같은 풍미가 어울려 복합미가 탁월하다. 타닌이 부드럽고 질감이 매끄러워 마시기도 편하다. 시원하게 즐기기 좋은 여름 레드 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