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4 공급대책으로 발표한 신규 주택 공급 물량(13만2000가구) 중 절반 이상인 7만가구를 재건축·재개발에 의존하고 있지만, 당사자인 대규모 재건축 사업장에서는 실익이 없다며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들이 정부가 제안한 공공 재건축에 응하지 않을 경우 공급대책 효과는 크게 축소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4일 주택공급확대TF에 따르면 이날 공급대책에는 정비사업 공공성 강화를 통해 7만가구 주택을 확보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의 참여를 전제로 재건축 단지가 주택 등을 기부채납하면 종상향 등을 통해 용적률을 500%까지 올려주고 층수도 50층까지 올릴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강남 한강변 고밀 재건축 단지도 50층까지 건물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주택공급확대 TF 제공

정부안 대로라면 용적률 250%를 적용 받아 총 500세대를 지을 예정이었던 재건축 단지의 용적률을 500%까지 높이면, 이 아파트는 1000가구의 대단지가 된다. 증가한 500가구의 절반인 250가구는 일반분양을 하고 나머지 250가구는 정부가 가져가 공공임대와 공공분양으로 시장에 내놓는다. 조합 입장에선 250가구를 기부채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날 정부 대책 발표 이후 이해당사자인 재건축조합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사업 추진 속도가 빨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미 분양가 상한제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등 규제가 많은 상황에서 용적률을 높여봐야 50~70%는 기부채납으로 정부가 가져간다니 조합원들에게 실익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부와 함께 정비사업을 추진할 유인이 적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관평 고덕현대 재건축 준비위 위원장은 "용적률 상향과 기부채납 비율을 봤을 때 조합원에게 이익이 크게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런 조건에서는 조합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다른 강남권 재건축 조합에서도 반응은 시큰둥했다. 송파구 A 재건축조합 조합장은 "의미없는 공급대책이 나왔다. 70%를 기부채납하고 30%만 조합이 가져갈 수 있다면, 지금 어림으로 계산해보더라도 사업성이 안 나올 것 같다"고 했다. 강남구의 B 재건축 추진위 관계자는 "오늘 발표를 보고 정권이 바뀐 뒤에나 사업을 진행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게 됐다"면서 "이번 대책을 봐서는 급한 쪽은 정부인 것 같다"고 했다.

비강남권인 관악구의 C 재개발 조합 조합장도 "일반분양으로 얻는 수익의 절반을 정부가 가져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도시밀도만 높여 쾌적하지 않은 환경을 만드는 데다, 여기에 임대주택 건설비까지 기부채납하라고 하면 조합원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정비업계에서는 공공이 참여하는 아파트 품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게 나오는 중이다. 아파트 고급화 경쟁이 커지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LH나 SH가 주도해 짓는 것보다는 대형 건설사가 짓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민간 참여를 유도하지 않고는 공급대책의 효과가 반감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재개발 재건축과 같은 정비사업은 정부가 직접 관여할 수 없으니 용적률 상향과 같은 유인책을 준 것이지만, 이에 민간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할 지가 관건"이라면서 "일단 역세권이나 소규모 재건축 사업지 정도는 움직일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