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M&A 속도내는 광고업계
국내 주요 광고회사 매출 50~70% 여전히 '내부거래'

제일기획은 지난해 말 ‘제삼기획’이라는 온라인 쇼핑몰을 선보였다. 이곳에서는 제일기획 직원들이 직접 기획해 만든 이색 제품을 판매한다. 짜장면의 색깔에서 영감을 얻은 패션양말, 설탕 함량을 줄인 딸기청, 직장인을 위한 공책 등이 대표적이다. 제일기획이 본업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쇼핑몰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광고회사의 강점인 ‘아이디어’를 새로운 분야에 활용하고, 장기적으로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올 상반기 침체에 빠진 광고업계가 디지털 전환과 사업 다각화로 위기 돌파에 나섰다. 코로나19 여파로 올 상반기 주요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고,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목표로 광고 집행을 줄이면서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자 광고 회사들도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제삼기획 홈페이지 캡처

◇디지털 광고시장 지난해 5조 돌파

국내 5대 광고회사의 최대 관심사는 ‘디지털’이다. 광고시장의 무게중심이 오프라인에서 디지털로 이동하면서 광고회사들도 디지털 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다. 광고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모바일과 PC를 양축으로 둔 국내 디지털 광고 시장의 규모가 처음으로 5조원을 돌파했다. TV와 라디오 등을 합친 방송 광고 시장이 3조6905억원으로 전년 대비 7%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올해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디지털 광고의 성장세가 더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 계열 제일기획(030000)은 이런 흐름에 발맞춰 지난 6월 중국 빅데이터 분석 전문기업 ‘컬러데이터’를 인수했다. 회사 전체 매출에서 디지털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처음으로 40%를 넘어서면서 다양한 디지털 마케팅 기술을 확보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앞으로 해외 디지털 기업 인수합병(M&A)을 지속해 코로나 이후 디지털 신사업 기회를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이노션(214320)도 해외 M&A을 통해 디지털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노션은 지난해 9월 호주 디지털 광고회사 웰콤 그룹의 지분 85%를 1836억원에 인수했다. 루이비통, 로레알, 템퍼 등 글로벌 기업이 웰컴의 주요 고객이다. 이노션 측은 "디지털 중심의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웰콤 인수를 추진했다"며 "특히 웰컴은 세계 최대 광고시장인 미국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어, 그동안 이노션의 글로벌 전략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LG계열 HS애드는 회사 차원에서 데이터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HS애드 관계자는 "모든 마케팅이 데이터 기반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조직과 전문 인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 계열 대홍기획은 ‘데이터 기반 마케팅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내세우고 관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대홍기획은 그 일환으로 지난해 소셜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디빅스 2.0’를 자체 개발해 광고주에 마케팅 컨설팅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올해 초에는 애드테크(adtech·IT 기술을 적용한 광고 기법) 사업을 전담하는 팀을 신설했다.

이노션이 지난 2월 미국 '슈퍼볼 2020'에서 공개한 현대차 광고

◇국내 5대 광고회사 관계사 매출 의존도 여전히 50~70% 육박

하지만 국내 대표 광고회사의 그룹 계열사 매출 의존도가 높은 점은 여전히 한계로 꼽힌다. 지난해 제일기획, 이노션, HS애드 등 주요 광고회사는 매출의 약 절반 이상을 이른바 ‘내부거래’에 의존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그룹 계열 광고회사 제일기획의 경우 지난해 매출 3조4217억원 가운데 66.3%인 2조2688억원을 삼성전자, 삼성물산, 호텔신라 등 관계사를 통해 올렸다. 삼성전자(005930)광고제작 관련 매출만 8259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약 24%에 달했다.

제일기획은 올 상반기 디지털 사업이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해 코로나 충격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여기에는 삼성전자의 공로가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일기획은 삼성전자의 온라인 플랫폼 ‘삼성닷컴’의 운영을 맡고 있다. 오태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닷컴 비즈니스는 일회성 비용으로 처리되는 일반 광고와 달리 운영 수수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노션도 지난해 매출 1조2742억원 가운데 현대·기아차 국내외 법인 등 특수관계자 및 대규모 기업집단의 계열회사와의 거래를 통해 올린 매출이 76%(9789억원)에 육박했다. 지난해 현대·기아차 광고제작 매출만 전체 매출의 13.6%인 1735억원을 차지했다. 올 하반기에도 G80, 아반떼, 싼타페 등 현대·기아차 신차 출시에 힘입어 이노션의 실적이 회복될 것이란 기대감이 큰 상황이라, 관계사 의존도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밖에 HS애드 역시 LG전자 등 특수관계자와의 거래비중이 68.6%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