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조단위 적자' 속 고부가 윤활유 사업 나홀로 '선방'
"친환경 규제 늘면서 고품질 윤활유 수요 증가"

실적 부진에 빠진 정유업계가 고품질 윤활유 사업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상반기 석유제품 판매량이 크게 줄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윤활유 사업은 꾸준히 이익을 내며 선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차량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을 높이는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향후 윤활유 판매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정유사들은 올해 들어 고품질 윤활유 신제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윤활유는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등유·경유 등을 생산하고 남은 기름(잔사유)을 재처리해 만든 윤활기유에 각종 첨가제를 혼합해 생산하는 제품으로 흔히 ‘엔진 오일’이라고 불린다. 자동차나 선박, 산업기계 등의 마찰·마모를 막고 유해물질 배출을 줄이는 역할을 해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SK루브리컨츠가 지난 5월 출시한 고품질 윤활유 신제품 ‘SK지크(ZIC)’

시장분석기관인 IHS마킷은 친환경 윤활유 시장이 자동차 배기가스와 연비 규제 강화로 2025년까지 연 평균 13%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가운데 자동차용 고급 윤활유로 사용되는 고품질 기유 그룹3의 경우 수요가 매년 10%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한다. 윤활유는 그룹1부터 5까지 총 5가지 그룹으로 나뉘는데, 그룹3부터 고품질 제품으로 분류된다.

정유사의 전체 매출에서 윤활유·윤활기유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20% 수준으로 정유나 석유화학 사업에 비해 작지만, 이익률은 10~20%대로 수익성이 훨씬 높다. 본업인 정유사업의 이익률은 통사 2~3%에 불과하다. 올해 1분기 총 4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SK이노베이션·에쓰오일·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의 실적만 봐도 윤활유 사업의 수익성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분기 정유사업에서만 1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낸 에쓰오일(S-OIL)은 윤활기유 사업에서는 116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26.8%였다. GS칼텍스 역시 지난 1분기 정유사업에서 1조원 이상의 적자를 냈지만, 윤활유 사업은 67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영업이익률은 21.1%에 달했다. SK이노베이션도 정유사업 적자 규모가 1조7000억원에 육박했지만, 윤활유 부문에서는 28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올 상반기에는 윤활유의 원료가 되는 석유제품 가격이 하락하면서 마진율이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정유사들이 재고 소진을 위해 제품 단가를 낮춰 수출을 늘려 윤활유 사업에서의 손실을 피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올 상반기(1~6월) 윤활유 수출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석유정보 전문 사이트 페트로넷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정유업계가 전 세계 42개국에 수출한 윤활유는 924만8000배럴로 전년 동기 대비 약 10% 늘었다. 코로나 발(發) ‘셧다운’으로 미국·유럽의 윤활유 수요가 급감하자, 경제활동을 비교적 빨리 재개한 중국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수출을 확대한 효과를 톡톡히 봤다. 다만 지난해 대비 수출 단가가 떨어지면서 수출 금액은 5% 감소한 7억3400만달러를 기록했다.

국가별로 중국으로의 윤활유 수출량은 205만6000배럴로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했고, 인도로의 윤활유 수출량은 236만2000배럴로 같은 기간 11.7% 늘었다. 인도네시아로의 수출량은 같은 기간 97% 급증한 48만8000배럴에 달했다.

GS칼텍스 윤활유 물류센터 전경

정유업계는 미국와 유럽 등 선진국이 올 하반기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재개하면서 친환경 윤활유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신규 국제규격에 맞춘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5월 미국석유협회(API)와 국제윤활유표준화위원회(ILSAC) 최신 규격을 충족하는 친환경 가솔린 엔진용 윤활유 ‘현대 엑스티어 울트라’를 선보였다. SK루브리컨츠도 신규 국제규격을 충족하는 윤활유 'SK지크(ZIC)'를 출시했다. 두 제품 모두 강화된 국제규격에 맞춰 기존 제품보다 배기가스·미세먼지 배출과 엔진 내 마찰을 줄이고, 차량 연비를 높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SK루브리컨츠는 앞서 아세안 시장 공략을 위해 지난 2월 베트남 윤활유업체 메콩(Mekong)의 지분 49%를 500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SK루브리컨츠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고품질 엔진오일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며 "매연 배출을 줄이고 화물차 연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친환경 윤활유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도 윤활유 신제품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