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셜록 홈즈, 에르큘 포와로와 같은 명탐정이 나올까.

다음달 5일부터 국내에서도 ‘탐정’ 사무소 개업이 가능해진다. 탐정업이 합법인 나라가 되면서 퇴직을 앞둔 경찰들이 영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그동안 탐정업과 탐정 호칭 사용은 1977년 제정된 신용정보법에 따라 금지돼 왔다. 그러나 지난 2월 국회가 신용정보법을 개정해 탐정업 금지 조항을 삭제하면서 탐정업이 합법적으로 가능해졌다. 개정 법안은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8월 5일부터 전격 시행된다.

일러스트=박길우

◇ 전직 서울청장도 자격증 취득… 전현직 경찰들 탐정업 관심 급증

다음달부터 탐정 사무소 개업이 가능해졌다는 소식을 가장 반기는 쪽은 퇴직을 앞둔 경찰들이다. 일부 고위직 경찰들은 퇴직 후 로펌이나 대기업 고문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있지만, 일선 경찰들은 퇴직 이후 경비업체 등을 빼면 갈 자리가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퇴직한 전직 경찰들도 탐정 관련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직 서울지방경찰청장까지 사립대 PIA민간조사(탐정) 최고위과정을 통해 탐정 관련 자격증을 취득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주상용 전 서울청장도 지난 25일 동국대 PIA민간조사(탐정) 최고위과정을 수료하면서 탐정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 국내 탐정 관련 자격증은 12개로 민간단체 8곳에서 발급한다. 자격증 이름에는 ‘탐정’이라는 단어 대신 ‘민간조사사’와 같은 용어가 들어간다. 탐정 관련 자격증 취득을 위해선 보통 범죄학과 범죄심리학, 법학개론, 민간조사학(탐정학)개론 등 4~5과목에서 시험을 봐야 한다.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5~10년 이상 일한 경우에는 1차 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어 경찰들이 선호하고 있다.

한국특수직능교육재단에 따르면 대표적 탐정 관련 자격증인 PIA민간조사사 자격증 취득자 수는 2020년 상반기에만 547명이 취득했다. 이중 72.4%인 396명이 전·현직 경찰관 출신이었다. 취득자 연령대를 보면 40~50대가 절반 이상이었다. 중년에 접어든 전현직 경찰들이 대거 자격증을 취득한 것이다.

전현직 경찰들이 민간조사사(PIA) 자격시험을 치르고 있는 모습.

최근 동료들과 함께 탐정 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서대문경찰서 소속 한 경찰은 "퇴직 후에도 경찰 경험을 살려 일할 수 있는 자격증이 생겨 든든하다"며 "민간 자격증이지만 나중에 공인 자격증이 생기면 기존 자격증을 인정받거나 시험과목을 면제받는 혜택이 있을 것 같아 미리 땄다"고 했다.

경찰 한 관계자는 "검찰 공무원은 10년 이상 근무하면 법무사 자격증 시험에서 1차 시험과 2차 시험 일부 과목을 면제해주는 혜택이 있지만, 경찰은 그러한 혜택이 없어 업무와 관련된 전문 자격증 취득이 어려웠다"면서 "탐정업이 허용된 만큼 관련 자격증 취득을 통해 퇴직 후에도 경찰 근무 경험을 살려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 ‘절름발이 탐정’ 우려도… 높아진 ‘공인탐정법’ 제정 목소리

일각에서는 탐정업이 허용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탐정업 종사자들이 ‘절름발이 탐정’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국가가 공인하는 탐정 자격증이 아직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알려진 탐정 자격증들은 모두 민간 자격증이다. 이 때문에 다음달부터는 자격증이 없어도 누구든지 탐정 사무소 개업이 가능하다.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도 탐정 사무소 간판을 달수 있다는 말이다.

탐정업을 허용하면서 국가가 법으로 탐정 자격과 권한을 정하지 않고, 이를 직접 관리하지도 않는 것은 사회적 혼란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이 때문에 탐정업 관계자들은 공인탐정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민간 탐정협회 한 관계자는 "탐정 업무 중 일어나는 미행이나, 뒷조사 등이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어 공인탐정의 권한 등에 대한 법제화 없이는 진정한 탐정 업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공인탐정법은 지난 2005년 17대 국회에서 정식 발의된 뒤 지금까지 총 7차례 발의됐다. 그러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법안이 폐기됐다. 지난 제20대 국회에서는 두 차례 법안이 발의됐지만 폐기됐고, 이번 제21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이 발의되지 않았다.

2011년 2월 전국 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모임 회원들과 실종자 부모들이 ‘개구리소년 사건’ 등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와 민간조사(탐정)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공인탐정법이 그동안 통과되지 못한 것은 법조계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조계는 탐정업이 활발해질 경우 개인 사생활 침해 문제가 심해질 것이라며 공인탐정법 제정을 반대해왔다.

그러나 민간탐정협회들은 탐정업의 긍정적 효과를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가 자격을 갖춘 전문 탐정인력을 배출하면 인력과 시간 부족 등을 이유로 경찰이 수사하기 어려운 영역까지 탐정이 대신 조사해줄 수 있고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는 것이다. 또 각종 민사소송 등에서 증거를 수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금석 대한민간조사협회장은 "비싼 변호사 수임료를 내고 소송을 진행해도 증거수집 등을 대부분 의뢰인이 해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며 "공인탐정이 도입되면 외국처럼 탐정을 고용해 소송에 필요한 증거를 수집하고 소장 접수는 변호사 대신 개인이 직접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아끼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