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빨리할수록 좋아. 복지 혜택받기 수월하거든."

자동차 업계에 근무하는 박모씨는 최근 있었던 회식에서 회사 선배에게 이같은 조언을 들었다. 박씨가 다니는 회사는 자녀 학자금 지원을 비롯해 돌잔치 축하금 100만원, 가족 구성원당 생일비 10만원 등의 복지를 제공한다. 모두 기혼자들을 위한 혜택이다. 미혼자도 휴대전화 요금이나 헬스등록비 지원 등을 받지만 기혼자를 위한 복지 혜택에 비하면 작은 규모라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박씨는 "생일만 해도 가족이 5명인 직원은 50만원을 받는데 나는 달랑 10만원만 받는다"며 "30살 전에 회사를 나가면 사실상 복지 혜택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는 셈이라 싱글을 위한 복지제도도 생기면 좋겠다"고 했다.

직장인 가운데 미혼 비중이 증가하고 있지만 회사 복지는 대부분 자녀가 있는 기혼에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복지 정책이 출산 장려에 맞춰진 만큼 회사도 따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비혼(非婚)족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만큼 사회 변화 추세를 맞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2030 세대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반도체 관련 기업에 종사하는 김모씨는 최근 인사 관리부서에 "미혼 직원이라도 특정 연령이나 직급에 도달하면 기혼에 상응하는 혜택을 달라"고 문의했다. 김씨는 "‘비용 부담이 너무 커서 어렵다’는 답만 돌아왔다"며 "비혼을 결심했는데 그럼 복지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출산·결혼기념일 축하금, 사내 복지포인트, 배우자 건강검진 혜택 등을 다 받지 말라는 거냐. 억울하다"고 했다.

유통업계에서 일하는 정모씨는 "회사에서 주택자금을 대출해 주는데 기혼 또는 청첩장이 나온 결혼 예정자만 가능하다"며 "결혼하지 않는다고 회사에서 크게 불이익 주는 것은 없지만 결혼한 사람만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구시대적 발상 같다"고 했다.

일러스트=정다운

사내 복지가 자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이모씨는 "우리 부부는 아직 자녀 계획이 없는데 회사 복지를 보면 부부를 위한 것보다는 육아휴직, 학자금 지원 등 아이 양육과정에 맞춰진 제도가 많다"며 "남녀가 결혼하면 무조건 자녀가 있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핵가족 틀에 갇힌 발상 같다"고 꼬집었다.

우리나라 혼인 건수는 뚜렷한 감소 추세다.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과 인구 감소가 겹치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23만9159건으로 1970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래 가장 적었다. 젊은 층의 만혼과 비혼 증가로 혼자 사는 1인 가구도 증가하고 있다. 1인 가구 비율은 30%에 육박하고 있고 2030년에는 세 집 중 한 집이 1인 가구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불만이 커지자 미혼 복지 확대를 고려하는 기업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은행권이 선제적 도입 중이다. 신한은행은 올해부터 연초에 미혼 직원들에게 기혼 직원의 결혼기념일 축하금과 같은 액수인 ‘욜로(YOLO) 지원금’ 1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우리은행, KB국민은행 등도 미혼 직원 부모의 종합건강검진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해 5월 진행한 러쉬코리아의 비혼식에서 ‘비혼선언문’을 전달하고 있다.

화장품 업체인 러쉬코리아는 비혼을 선택한 임직원에게 결혼 축하 관련 사내 복지(축의금, 유급휴가)를 기혼 직원과 동일하게 지원한다. 지난 2017년부터 매년 비혼을 선언하는 날을 만들어 근속연수 만 5년 이상인 임직원은 누구나 신청할 수 있게 했다. 다만 비혼을 선택한 직원이 추후 결혼을 하게 되는 경우 축의금과 유급휴가가 생략되는 방식이다. 반려동물이 있는 비혼자에게는 월 5만원의 수당과 반려동물 사망 시 유급휴가를 지원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가정 구성이 과거에 비해 다양해지고 변하는 만큼 복지 체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사회는 아빠 엄마, 그리고 자녀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이 정상이라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맞춰져 있는데 앞으로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만약 회사의 경영 방침에 따라 1인 가구 등을 위한 복지를 새로 만들게 된다면 인력 유치 등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기혼이나 육아 중심의 복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다수의 기업은 기업 또한 정부의 저출산 해소 정책을 보조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만큼 당연한 조치라고 강조한다. 한 기업 관계자는 "이미 결혼한 선배 직장인들이 받는 복지에서 격차를 느끼는 미혼 세대의 억울함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면서도 "저출산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이고, 기업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출산 장려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