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해음' 문화 외에도 숫자 자체에 의미부여한 마케팅 사례 많아
11월 11일 '군(光棍∙광곤)절', 12월 12일 독신 탈출 '탈광(脱光)절' 등

광대한 소비시장 중국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중국 소비자를 내수시장 분석 하듯이 알아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소비자와 시장이 쓰는 ‘말’과 ‘문화’는 시사점이 당연히 있다. 지난 글에서는 중국인들의 생활을 깊숙히 지배하는 ‘말 소리 맞춰 쓰기’, 즉 ‘해음(谐音)’의 문화를 ‘숫자’ 중심으로 찾아 보았다. 또 중국 소비자들이 ‘숫자’를 가지고 ‘말’을 어떻게 만들고 쓰는지, 또 이 ‘말’들이 중국 시장에서 마케팅에 어떻게 활용되는지 ‘520’의 예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5’와 함께 다른 ‘숫자’들의 중국시장 용례들을 골라 알아본다.

‘5’는 현대 중국인들에게 ‘나(我∙아)’ 대신에 사용된다고 했다. 이 경우는 ‘5’에 특별히 길상과 금기의 해음이 있다기 보다 두 글자의 발음이 서로 비슷해서 사람들이 두루 쓰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소셜미디어등 디지털 세상에서 대화할 때 이렇게 한다. ‘520’은 ‘나는 너를 사랑해(我爱你∙아애니)’이고, 그래서 5월 20일이 ‘인터넷(网络) 연인의 날(情人节∙정인절)’이 되었다. ‘521’은 상대방의 고백에 ‘나도 그렇게 할께(我愿意∙아원의)’라고 동의하는 어휘로 사용된다. 이 때문에 중국 시장에서 인터넷 연인의 날은 5월 20일부터 5월 21일까지 이틀이 되었다. 중국에는 ‘나도 그렇게 할께(我愿意)’ 제목의 노래와 영화가 젊은이들을 표적으로 많이 나와 있다.

‘525’는 ‘나는 나를 사랑해(我爱我∙아애아)’의 발음과 비슷하다. 그래서 5월 25일은 ‘자중 자애’하라는 의미의 ‘심리 건강의 날’로 중국 누리꾼들이 만들었다. ‘527’은 ‘나는 처를 사랑해(我爱妻∙아애처)’의 발음과 비슷하다. 그래서 5월 27일은 ‘애처일(爱妻日)’이다. ‘5260’은 ‘나는 너를 몰래사랑(暗恋∙암련∙짝사랑)해’ 뜻의 디지털 용어이다.

‘510’은 ‘나는 네가 필요해(我要你∙아요니)’이다. 숫자 ‘1’의 중국어 발음은 ‘이’이기도 하고 ‘야오'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要∙야오)’ 자리에 사용된다. ‘51396’는 ‘나는 자야겠어(我要睡觉了∙아요수교료)’이다. ‘517’은 ‘나는 먹어야겠어(我要吃∙아요끽)’이다. 그래서 5월 17일은 ‘먹어치우는 날(吃货节∙끽화절)’로 중국 마케팅에 활용된다. ‘1212’는 ‘사랑이 필요하다(要爱要爱∙요애요애)’고 두번 강조한 말인데, 이 때문에 기업들은 ‘12월 12일(双12∙쌍12)’을 ‘솔로(单身∙단신) 탈출(脱离∙탈리)의 날’로 삼아 마케팅을 한다. 유명한 ‘11월 11일(双11∙쌍11)’ 쇼핑시즌 ‘광군(光棍∙광곤)절 솔로의 날’을 놓친 소비자들에게 1212가 송년 최후의 쇼핑 기회라고 강조하여 매출을 올린다.

‘517’은 ‘나는 먹어야겠어(我要吃∙아요끽)’의 발음과 비슷하다. 그래서 5월 17일은 ‘먹어치우는 날(吃货节∙끽화절)’로 중국 마케팅에 활용된다. 위 사진은 식품회사 바이차오웨이(百草味)의 끽화절 전용 선물세트. 포장에 ‘계속 먹고(吃不停∙끽부정) 계속 즐기자(乐不停∙락부정)’고 적혀 있다.

‘53770’는 ‘나는 너와 뽀뽀(亲亲∙친친)하고 싶어’ 뜻의 신조어이다. ‘53880’는 ‘나는 너와 포옹(抱抱∙포포)하고 싶어’이다. ‘5366’은 ‘나는 수다(聊聊∙료료)떨고 싶어’이다. ‘54430’은 ‘나는 항상(时时∙시시) 너를 생각해’이다. ‘546’은 ‘내가 졌다(输了∙수료)’이다. ‘5776’은 ‘나는 나갔어(我出去了∙아출거료)’이다. ‘57386’은 ‘나는 출근(上班∙상반)했어’이다. ‘587’은 ‘내가 미안해(抱歉∙포겸)’이다. ‘53782’은 ‘내 마음이 안좋아(我心情不好∙아심정 불호)’이다. ‘515206’은 ‘나는 이미 너를 사랑하지 않아(我已不爱你了∙아이불애니료)’이다.

‘5’가 ‘나(我)’ 자리에 사용된다면 ‘0’은 ‘너(你)' 대신에 쓰이는 디지털 어휘이다. ‘01925’는 ‘너는 여전히(依旧∙의구) 나를 사랑해'이다. ‘045617’은 ‘너는 나의 산소(氧气∙양기)야’이다. ‘0487’은 ‘너는 바보(白痴∙백치)야’이다. ‘07868’은 ‘너 배부르냐(你吃饱了吗∙니끽포료마)’이다. ‘078’은 ‘너 꺼져(去吧∙거파)’이다.

‘1’은 인터넷 채팅에서 주로 그냥 숫자 ‘1’의 의미로 쓰인다. ‘1314’는 ‘한평생(一生一世∙일생 일세)’의 뜻으로, 이 말 뒤에 ‘사랑해(520)’나 ‘정(情∙7)’ 등이 붙는다. ‘일생 일세’ 제목의 애정 영화도 있다. ‘1324’는 ‘일생(一生)’으로도 모자라 ‘내세(来世)’까지 뭔가 하겠다는 뜻이다. ‘1711’은 ‘오로지(一心一意∙일심 일의)’의 의미이다.

‘2’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랑(爱)’ 발음과 비슷해서 사랑 타령을 하는 신조어에 늘 나온다. ‘20184’ 는 ‘너를 한평생(一辈子∙일배자) 사랑해’이다. ‘2030999’는 ’너를 오래 오래 오래(久久久∙구구구) 사랑하고 생각해’이다. ‘20609’는 ‘너를 영구(永久)히 사랑해’이다.

‘1212’는 ‘사랑이 필요하다(要爱要爱∙요애요애)’고 두번 강조한 말인데, 이 때문에 기업들은 ‘12월 12일(双12∙쌍12)’을 ‘솔로(单身∙단신) 탈출(脱离∙탈리)의 날’로 삼아 마케팅을 한다. 유명한 ‘11월 11일(双11∙쌍11)’ 쇼핑시즌 ‘광군(光棍∙광곤)절 솔로의 날’을 놓친 소비자들에게 1212가 송년 최후의 쇼핑 기회라고 강조하여 매출을 올린다. 위 사진은 1212 맞이 50%할인(5折)라고 쓰여진 포스터.

‘3’은 ‘생각하다 또는 그리워하다(想∙상)’의 의미이다. ‘360’은 ‘네가 그리워(想念你∙상념니)’의 뜻이다. ‘32069’는 ‘너를 그리워한 지 매우 오래되었다’이다. ‘4’는 ‘감사(谢∙사)’를 표현할 자리에 들어가는 디지털 대화 어휘이다. ‘6’은 ‘오래된(老∙로), 즐거움(乐∙락), 피곤함(累∙루), 나태함(懒∙라)’등 비슷한 발음 글자의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7’은 ‘청하다(请∙청), 일어나다(起∙기), 화나다(气∙기), 가다(去∙거)’의 자리에 사용된다. ‘70885’는 ‘청컨대 나좀 도와줘(帮帮我∙방방아)’이다. ‘706’은 ‘일어나라(起来吧∙기래파)’이다. ‘740’는 ‘화나 죽겠지(气死你∙기사니)’이다. ‘729’는 ‘술 마시러 가자(去喝酒∙거합주)’이다.

‘8’은 중국어 해음으로 ‘돈을 벌다(发财∙발재)’의 발음이 연상되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무척 좋아하는 숫자라고 했다. ‘8’은 이 밖에 누리꾼들 사이의 대화용으로 ‘아니다(不∙불), 하지마라(别∙별), 헤어지다(分∙분)’를 말할때 사용된다. ‘860’는 ‘너를 말리지 않겠어(不留你∙불류니)’이다. ‘837’은 ‘화내지마(别生气∙별생기)’이다. ‘898’은 ‘헤어지자(分手吧∙분수파)’이다. 또 ‘88’은 영어 ‘바이 바이’ 발음을 중국어로 옮긴 ‘바이바이(拜拜)’이다. 한편 중국의 인터넷에서는 8월 18일을 ‘팔괘(八卦)의 날’이라고 하는데, 누리꾼들이 ‘남의 뒷얘기를 파헤치는 날’로 즐긴다. ‘팔괘’는 광동어로 ‘뒷말’이고, ‘818’의 발음이 ‘파내자(扒一扒)’와 같기 때문이다.

‘9’는 중국어 해음으로 ‘오래(久∙구)’의 발음이 연상되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무척 좋아하는 숫자라고 했다. ‘9’는 이 밖에 누리꾼들의 대화용으로 ‘간청하다(求∙구), 바로(就∙취)’등을 말할때 사용된다. ‘9089’는 ‘가지 말아줘(求你别走∙구니 별주)’라고 간청하는 말이다. ‘912’는 ‘바로 사랑이 필요해(就要爱∙취요애)’의 발음이라서 중국 기업들은 9월 12일을 ‘애정 표시(示爱∙시애)의 날’로 삼아 마케팅한다. ‘913’은 ‘바로 이별 해야겠다(就要散∙취요산)’의 발음이라서 중국 인터넷에서 9월 13일은 ‘헤어지는(分手∙분수) 날’이 되었다.

중국의 인터넷에서는 8월 18일을 ‘팔괘(八卦)의 날’이라고 하는데, 누리꾼들이 ‘남의 뒷얘기를 파헤치는 날’로 즐긴다. ‘팔괘’는 광동어로 ‘뒷말’이고, ‘818’의 발음이 ‘파내자(扒一扒)’와 같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8월 18일 역시 중국시장 마케팅의 기회로 삼는다. 위 사진은 전자제품 판매에 강점이 있는 수닝(苏宁)이 818을 계기로 프로모션에 나선 모습. 중국의 학교들이 9월에 학년을 시작하기 때문에 8월은 노트북, 태블릿, 휴대폰 등 학생용 전자제품 성수기이다. 위 광고 배너를 보면 ‘연인에게 금방 없어지는 소비를 하거나 명품백 같은 것을 사주지 말라'고 하면서 오래 남는 전자제품을 사주라고 돌려 말하고 있다.

‘해음’은 아니지만 숫자 자체에 의미부여를 해서 날짜를 정해 마케팅을 하는 사례를 보자. 11월 11일은 한국에서 ‘막대 과자의 날’인데, 중국에서는 유명한 ‘광군(光棍∙광곤)절’이다. 광곤은 ‘몽둥이’라는 뜻인데, ‘독신남이나 홀아비’의 의미도 가진다. 몽둥이를 닮은 ‘1’이 네개 있는 이날은 처음에 독신남이나 홀아비들에게 ‘쇼핑이나 하라'고 시작되었다가, 지금은 중국시장의 매출 연간기록을 갈아치우는 ‘쌍11절(双十一节)’의 대단한 날이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12월 12일(双12节∙쌍12절)’은 독신에서 탈출하는 ‘탈광(脱光)절’로 만들어져 또다른 마케팅이 펼쳐진다. 1월 1일은 몽둥이가 두개라서 ‘소광군(小光棍)절’이다. 한편 6월 18일은 인터넷 쇼핑 업종에서 열세였던 JD징둥(京东)이 시작해서 지금은 또다른 전국적 쇼핑시즌으로 만들어졌는데, 숫자에 특별한 뜻은 없고 단지 JD징둥의 창립기념일이다.

10월 10일은 중국 젊은이들이 ‘애니메이션(动漫∙동만) 애호가(迷∙미)의 날’로 만들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때문에 생긴 신조어에 ‘모에(萌え)’가 있다. ‘불타오름' 뜻의 ‘모에(燃え)’와 발음이 같은데, 신조어 ‘모에(萌え)’를 한국어로 해석하자면 ‘어떤 인물이 갖고있는 부차적 캐릭터에 대한 호의' 정도가 되겠다. 이 일본스러운 ‘말’을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한 중국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 많이 쓴다. 중국어로 ‘멍(萌∙맹)’의 사전적 의미는 ‘새싹’이지만, 중국 젊은이들은 인터넷에서 ‘귀여움, 끝내줌’ 의미의 어휘로 사용한다. ‘멍(萌∙맹)’을 파자(破字)하면 ‘10월 10일(十月十日)’이 되기 때문에 이 날을 ‘애니메이션 애호가의 날’로 정했다. 10월 11일은 중국 누리꾼들에 의해 ‘롤리타(萝莉)의 날’이 되어 소녀들이 화장품등 상품을 구매하는 날로 소비된다. ‘1011’이 영어 ‘loli’를 닮았다 하여 이렇게 되었다. 8월 3일은 ‘남성의 날’로 마케팅이 펼쳐진다. 3월 8일이 ‘여성의 날’이기 때문에 숫자를 거꾸로 하여 만들어졌다.

◆ 필자 오강돈은…

《중국시장과 소비자》(쌤앤파커스, 2013) 저자. (주)제일기획에 입사하여 하이트맥주∙GM∙CJ의 국내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등 다수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이후 디자인기업∙IT투자기업 경영을 거쳐 제일기획에 재입사하여 삼성휴대폰 글로벌 마케팅∙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 등을 집행했고, 상하이∙키예프 법인장을 지냈다. 화장품기업의 중국 생산 거점을 만들고 사업을 총괄했다. 한중마케팅(주)를 창립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졸업, 노스웨스턴대 연수, 상하이외대 매체전파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