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동산 담보 P2P(peer to peer·개인간) 대출업체 ‘넥스리치펀딩’(넥펀)이 돌연 영업을 중단하면서 약 250억원의 투자금이 묶이는 일이 발생한 가운데, 최근 투자에 사용되지 않은 일부 금액을 투자자에게 반환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20일 경찰과 P2P업계 등에 따르면 넥펀은 대주주 넥스리치홀딩스 대표 A씨의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와 관련한 경찰 수사와 압수수색으로 지난 9일부터 영업 중단을 선언했다. 넥펀은 전 직원을 해고하고 현재 폐업 절차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금 반환 중단이 알려진 지 일주일 만인 지난 17일 개인 혹은 법인 예치 계좌에 보관 중인 미투자 금액의 반환 신청 접수가 시작됐다.

넥스리치펀딩 홈페이지에 올라온 ‘미투자 개인보유 예치금’ 관련 공지사항.

◇1500여명 대상 '취소 상품·미투자 예치금' 반환부터

넥펀에 묶인 투자금의 유형은 ▲모집이 완료되지 않은 취소 상품 ▲모집이 완료됐으나 대출이 실행되지 않은 상품 ▲모집 완료 후 대출까지 실행된 상품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예치 계좌 업체로 P2P 업체와 은행 사이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페이게이트’ 측은 최근 수사기관과 은행의 협조를 받아, 1807·1816·1818·1819·1820·1822·1823호 등 펀딩상품 7건에 대한 취소 금액과 대출이 실행되지 않은 예치금 보유금액을 반환하기로 했다.

관련 수사를 진행 중인 서울 방배경찰서는 지난 9일 페이게이트 측에 넥펀 압수수색에 대한 공문을 전달하고 입·출금 차단을 요청했다. 이어 지난 15일 "미투자 예치금에 대한 반환을 진행하고, 대표이사와 그의 특수관계인으로 예상되는 계좌를 막아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추가로 전달했다. 이어 사건 발생 일주일만인 지난 16일 약 1500명에 달하는 투자자들의 이메일로 반환 안내문을 발송했다. 20일 현재 1000통이 넘는 관련 이메일이 들어와 페이게이트는 넥펀 관련 업무 외 다른 업무는 거의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넥펀의 자체 공시에 따르면 누적 대출액은 610억2000여만원이고, 그 중 반환하지 못한 대출 잔액은 251억4500여만원이다. 페이게이트 관계자는 "취소 상품을 제외한 대출이 실행되지 않은 잔액에 대한 집계가 완료되지 않아 우선 반환 금액을 추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추후 고객이 신청서에 기입한 반환 대상 금액과 실제 예치금 잔액을 대조해 일치하는지 여부를 살펴본 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순차적으로 반환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집 완료 후 대출까지 실행된 상품의 반환 절차는 경찰 수사가 마무리된 후에야 구체화될 전망이다.

투자자들은 일부 금액이라도 우선 돌려받을 수 있게 돼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이지만 나머지 투자원금을 언제,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투자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채팅창 등에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일주일째 밥을 못 먹고 있다" "어떻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넋을 놨다" 등의 반응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 5월 법무법인 주원의 넥펀에 대한 법률실사 보고서. 넥펀의 자동차담보대출 상품이 근저당권 설정 없이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법무법인 주원’ ‘쓱페이’ 책임론도

일부 투자자 사이에서는 넥펀뿐만 아니라, 감사 업무제휴(MOU)를 맺고 수개월간 법률실사를 진행했던 법무법인 주원 측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법무법인 주원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5월까지 넥펀에 대해 실시한 법률실사 보고서에서 "자동차담보대출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상품의 경우, 대출 시 근저당권이 설정되지 않아 자동차담보대출로 볼 수 없고 신용대출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수차례 지적했다.

넥펀은 이 상황을 5개월 이상 방치하다가 6월이 돼서야 상품 분류를 신용대출로 바꿨다. 그러나 여전히 "자동차는 근저당 설정이 가능한 ‘등록자산’으로 신뢰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게재하는 등 자동차담보대출로 볼 수 있는 문구를 사용해 상품을 판매했다. 한 법률전문가는 "법무법인과 P2P업체가 ‘법무법인의 조언·자문에 따라 상품을 변경해야 할 의무가 있다’라는 등 구속력 있는 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면 주원 측에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다음달 27일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온투법) 시행에 따라 등록 P2P업체들이 제도권 안에 편입되면 상황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P2P 관련 법률전문가는 "이런 사례의 경우, 담보설정 여부 등에 대해 온투업자(P2P업자)가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고지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라면서 "허위고지가 됐다면 온투업자에 대해서, 상황에 따라 법무법인까지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넥펀의 광고를 게재해 투자자들을 유입시킨 플랫폼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넥스리치펀딩은 지난 2월 신세계가 운영하는 간편 결제 플랫폼 ‘쓱페이(SSGPAY)’ 앱에 입점했다. 한 투자자는 "쓱페이를 통해 넥펀을 알게 됐고 신세계를 믿고 투자했는데, 문제가 있는 업체를 버젓이 광고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플랫폼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P2P업계 관계자는 "업체가 제공한 정보를 그대로 게재한 단순 광고일뿐이어서 손실에 대한 책임까지 플랫폼에 묻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미국 백악관 청원 홈페이지에 등장한 한국 넥펀 피해 관련 게시글.

현재 투자자들은 집단 민·형사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한편, 금융감독원 등을 통해 꾸준히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을 비롯해 심지어 미국 백악관 청원에까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 17일 미 백악관 청원 홈페이지에는 ‘한국 P2P 넥스리치펀드 폰지사기로 인한 수천명의 투자자 피해’(Korean P2P Nex Rich Fund Ponzie scheme and thousnads of investor damage)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고, 투자자들은 P2P 카페 등에 해당 청원 링크를 공유하며 서명을 독려하고 있다.